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우중 Jul 13. 2018

웃음과 눈물의 농담濃淡.

영화 '빅식(The Bick Sick, 2017)' 감상평

  이 영화는 한 마디로 '농담' 같은 영화다. 농담은 "a) 장난으로 하는 말(표준국어대사전)"이기도 하고, "b) 우스갯소리"와 비슷한 뜻이기도 하다. 영화 '빅식(The Big Sick, 2017)'이다.


  a) 농담은 거짓말이다. 농담은 진실을 거짓으로 포장하여 슬쩍 건네는 말이고, 자기의 진심을 숨기기 위해 또는 은연중에 드러내기 위해 건네는 말이다. 진심을 농담으로 포장하는 이유는 솔직히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리라.

  b) 농담은 웃음이다. 농담은 상대방을 웃기기 위한 말이기도 하다. 상대를 웃겨서 환심을 사기 위해, 심각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난처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주로 쓴다.

 a) 영화에는 다양한 진심과 거짓말이 교차한다. 줄거리는 어느 남녀의 러브스토리이고, 기승전결이 분명한 로맨틱 코미디다. 이런 영화가 으레 보여주듯 남녀의 첫 만남과 이별 모두에 진실된 말과 거짓된 말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이며 다양한 갈등과 화해를 만들어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한다.

 b) 웃음과 코미디는 이 영화의 큰 축이다. 당장 주인공의 직업부터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현재 한국에는 드문-하지만 점점 커지고 있는- 직업인데, 말 그대로 무대에 혼자 서서 단순히 말로만 웃기는 직업이다. (과거에는 주병진, 이주일 등이, 지금은 김제동, 유병재 등이 있다) 주인공 쿠마일은 파키스탄 출신의 코미디언으로, 곳곳에 재치 있는 대사로 관객을 웃긴다.

 a) 주인공이 코미디언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영화 내내 등장인물들은 자주 농담을 한다. 쿠마일이 여주인공 에밀리와 첫 대화를 하는 순간도 농담으로 점철되어 있고, 연애하는 동안에도 그러하며, 에밀리가 중환자실에 혼수상태로 누워있는 동안 에밀리의 부모와 쿠마일도 다양한 농담을 한다. 그러면서 자기 진심을 자기 스스로에게 또는 상대에게 보이지 않으려 노력한다.

 b) 웃음은 기본적으로 '반전'에서 온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뜻밖의 웃음을 주는 경우가 많다. 각 인물들은 전형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내는가 싶더니 반전을 만든다. 전형이 비전형으로 방향을 트는 순간, 관객은 웃거나 운다. 이 영화를 보다 웃었다면 이윽고 울게 될 것이고, 울었다면 곧이어 웃게 될 것이다.

 

 a+b) 곳곳에 산재한 농담은 때로 유머로 작용하지만, 때로는 인물의 진심을 숨기는 역할을 한다. 정확히 말하면, 연극의 방백과 같다. 방백은 무대 위 배우가 혼잣말을 하는데, 관객은 듣고 있지만 다른 인물들은 못 듣는 척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등장인물들은 다양한 농담으로 자신의 진심을 숨기는데, 관객에게만 그 진심을 말해준다. 그러니 관객은 답답할 수밖에. "어서 사랑한다고 솔직하게 말해!"... 같은 식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이야기 전개는 자세히 말할 수 없다. 남녀가 원나잇 비슷한 가벼운 사랑에 빠지고, 그것이 깊은 사랑이 되고, 파키스탄 남자와 백인 여자는 그들의 인종, 종교, 문화 차이 때문에 이별을 맞이한다. 이별 이후 여주인공이 질병으로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뻔했던 스토리 라인은 예측이 불가능해진다. 

  

  어찌 보면 심각한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영화는 적절한 농담(joke)으로 감정의 농담(濃淡;짙음과 옅음)을 조절한다. 너무 깊이 신파에 빠지지 않으면서 웃을 수 있게, 인물들은 서로의 마음을 오해하지만 관객들에게는 인물의 진심이 전해지게 만드는 감독의 실력이 놀랍다. 농담은 인종적, 종교적으로 민감한 내용과 가슴 아픈 신파를 부담 없이 받아들이는 완충작용을 한다.


  좋은 영화일수록 감상평이 길어진다. 그만큼 이 영화는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여운이 있다. 어느 면에서든 안 볼 이유가 없다. 웃기면서도 가슴 절절하고, 그 격차가 농담濃淡으로 부드럽게 이어진다. 만 1년 동안 본 영화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수작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이 매력적인 영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