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단상

파리 3박 4일 여행 후기

by 김우중

파리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첫날 잡은 숙소는 중저가형 주택이 많은 지구라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길가에 거지들이 많았다. 보도블록은 곳곳이 파헤쳐져 방치되어 있고, 탁한 물기가 간간히 고여 있었다. 더군다나 차들과 오토바이는 왜 그렇게 많은지. 매연이 심해서 남프랑스 여행 중에 나은 비염이 다시 악화되었다. 이렇게 "더럽고, 붐비고, 불편한" 도시에서 굳이 이렇게 모여사는 이유는 무언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오죽하면 "파리 신드롬"이라는 정신질환도 있다. "외지인이 파리에 대한 환상과 실상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해 겪는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라고 한다. 파리에 대해 아무런 환상도 기대도 없는 나도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니 파리가 다시 보였다. 여행 며칠 전, 한 친구가 술자리에서 '서울은 품격이 없는 도시다. 거지와 빈민들이 안 보이는 곳에 격리되어 있으니까.'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게 왜 '품격’과 연결되는지 몰랐는데, 파리에 와보니 알 거 같았다. 원래 세상은 더럽고, 거지나 노숙자는 어느 사회에나 있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외면하고, 서울이 외면하고 있었을 뿐.

그런 의미에서 파리는 지구의 축소판 같았다.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 에펠탑 근처 광장 계단에 앉아 있었던 적이 있다. 약속시간에 늦은 그에게 화가 났으나, 이내 화가 멎어 들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다양해서 앉아서 구경만 해도 흥미진진했다. 아프리카 전통 복장을 한 흑인, 알제리계 프랑스인, 일본인 모녀, 러시아 소녀들, 미국인 남자들, 중국인 단체 관광객, 동유럽 가족, 터키 또는 아랍 사람까지... 망명의 나라 프랑스라더니 정말 그러했다. 전 세계 인종과 국가 비율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 IS 테러 때문인지 아랍 사람들의 비중이 다소 적었을 뿐, 정말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에펠탑은 실물이 훨씬 웅장하고 멋있다. 실제로 보면 거대한 철골 구조물이 18세기 옛 건물과 이상하게 잘 어울린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하면 그 자체로 그림이 되고, 밤에는 그 자체로 파리를 빛낸다. 하지만 더 좋아했던 건 개선문이다. 특히 개선문 전망대에서 보는 방사형 도로와 사방으로 펼쳐진 파리 시내가 장관이다. 그다음으로 간 곳은 군사 박물관과 함께 붙어있는 나폴레옹의 묘다. 군사 박물관은 한때 유럽을 제패했던 프랑스 군의 위용을 뽐내고, 그 위용은 나폴레옹의 묘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거대하고 둔중한 석관이 나폴레옹을 감싸고 있으나 유럽 제패고 뭐고 부질없다는 것을, 관람객은 모두 알고 있다.

시간이 부족해서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은 가지 못했다. 하지만 거리만 거닐어도 파리 건물 자체가 박물관이요 미술관이었다. 현지인에게 들으니 외관 리모델링은 엄격히 제한되어 있고, 실외기 설치도 금지여서 파리 주택에는 에어컨이 없다고 한다. 그들은 그 불편을 감수하면서 살고 있었다.

삼일이 지나자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더러운 것은 관용의 증거였고, 붐비는 것은 서로의 관용을 사랑하기 때문에 모여사는 것이었다. 불편한 것쯤은 참아줄 수 있다는, 인내와 여유가 파리 사람들에게 있었다. 그것을 하나로 포괄하자면 자유, 관용, 박애 정도일 것이다. 서로 자유로울 수 있는 자유를 위해 그들은 "사소한" 더러움과 불편함 정도는 참고 견디며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사실 파리는 아내가 가자고 해서 신혼여행으로 온 도시다. 그런데 떠나는 날이 되자, 내가 먼저 다시 오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그만큼 이 도시는 매력이 있다. 더럽지만 예술적이고 불편하지만 낭만적이며, 너무 붐비지만 서로 친해지기에 좋은 도시. 이틀만 지나면 거리의 노숙자와 거지들이 그저 이 도시의 일부이며, 나도 이 도시의 일부라는 생각에 스스럼 없어지는 도시. 어쩌면 지구 상에서 가장 품위 있고 문명화된 도시, 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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