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핑, 사려니 숲, 그리고 이중섭(2018.8.)
살면서 제주도에 온 게 여섯 번인가. 제대로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자주 왔다.
그렇게 많이 왔는데도 제주도는 올 때마다 새로웠다. 4박 5일 동안 주로 산과 숲, 바다를 다녔다. 방문한 인공물(?)은 이중섭 미술관이 전부였다.
제주도는 여름에도 갈 곳이 많았다. 더우면 물놀이를 했다. 날씨는 적당히 흐려 좋았고, 우거진 숲은 시원하고 상쾌했다.
중문 색달 해수욕장은 서핑의 성지라고들 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핑을 배웠다. 파도의 힘으로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처음 느껴보는 청량감과 해방감이었다.
서핑을 가르치는 서퍼들은 왠지 모르게 바다를 닮아 있었다. 자유롭고, 가르치면서도 얽매이지 않았다. 안전 및 생명에 관한 지침에는 엄격했지만 나머지 부분에선 유연했다. "그냥 빠지세요. 안 빠지려고 애쓰면 오히려 다칩니다. 초보가 안 빠질 수 있나요." 맞는 말이었다. 어차피 실패할 테니까 일단 도전해보라는 말로 들렸다.
1시간의 서핑 강습 중 이론 설명은 20분 남짓. 그 짧은 설명 중에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서핑보드는 여러분이 바라보는 곳으로 갑니다. 앞에 사람이 있어서 피하고 싶죠? 어, 어 이러면서 그 사람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그쪽으로 가요. 그러니까 누구랑 부딪힐 거 같으면 다른 쪽을 바라보세요."
맥락상 그런 뜻이 아닌데도, "서핑은 당신이 바라보는 곳으로 간다"는 말이 계속 박혀있다. 인생이라는 파도에서, 우리는 여기 쓸리고 저리 휩쓸려 가지만 길게 보면 바라는 방향으로 가지 않던가. 하루하루 갈팡질팡 하는 듯 보이지만 넓게 보면 한 방향으로 뻗는 길처럼.
사려니 숲은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아서 좋았다. 무질서한 듯 보이나 이끼와 덩굴, 나무들이 서로 의지하고 있었다. 삼나무 숲은 높고 빽빽이 수직의 공간감을 만들고, 그 사이를 사선으로 덩굴이 휘감고, 바닥과 사이사이를 이끼가 채우고 있었다. 그 푸름이 공백 없이 꽉꽉 채워진, 생기 넘치는 숲이 좋았다. 이 숲이 앞으로도 건강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조심히 걸었다.
그러나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이중섭 미술관, 정확히는 그 옆의 이중섭 생가였다. 약 3, 4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이중섭과 그의 아내, 두 아들이 잠시나마 살았다고 했다. 성인 남자 2명이 누우면 꽉 차는 그 공간에서, 4인 가족이 기거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중섭의 생계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그가 가족을 그리워하면서도 왜 함께 살지 못했는지, 한눈에 설명이 되는 공간이었다.
생가 방문 이후, 미술관에서 이중섭의 그림을 보면서도 내내 그 좁은 방이 눈에 밟혔다. 이중섭은 일본으로 건너간 아내와 두 아들에게, 애교와 걱정과 그리움을 담은 편지를 자주 썼더랬다. 그는 황소 그림으로 유명해졌지만, 나에겐 일본어로 된 그의 편지와 3평 남짓한 쪽방과 온 가족이 함께한 순간을 그린 그림들이 더 마음에 남았다. 이중섭은 돈이 없어 담뱃갑에 들어있던 은박지에 아이와 여인 그림을 그렸고, 그리고 또 그렸다. 그리워서 그릴 수밖에 없었던 그의 그림들이 담배 포장지에 남아 있었다.
이중섭 미술관에 온 사람들이 그의 황소 그림에 머물러 있을 때, 나는 그가 쓴 편지들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