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단상

1박 2일 순천 여행(2018.9.)

by 김우중

숙소는 여행의 무드를 결정한다. 순천에서 잔 이틀 모두 "바구니 호스텔"에서 잤다. 주인이 건물 설계부터 운영까지 담당하는 이곳은, 구석구석 정성이 느껴졌다. 5년 전에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묵었던 호스텔들과 구조, 운영방식이 같았다.


게스트하우스라고도 부르는 호스텔의 특징은 다인실이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적게는 4인실부터, 많게는 15인실까지 가 보았는데, 2층 침대로 가득 차 있는 커다란 방이다. 혼성 다인실이 가장 저렴한데, 유럽에서 평점 높고 인기 많은 호스텔도 1박에 3만 원 안팎이었다.

저렴한 숙박비는 호스텔의 최대 장점이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 주로 돈 없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그러니 젊음의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싸니까 별로 기대도 없다. 기대가 없으니 얽매이지 않는다. 1박만 예약해서 한번 자보고, 별로면 다른 호스텔로 가면 된다. 체크인하면 카운터에서 베개 커버에 수건 하나 안겨주고 그만인 곳이 대부분이다. 그마저도 안주는 곳이 있지만, 기대하지 않으므로 실망하지 않는다. 큰 수건이라도 주면 기분이 좋았다.


"바구니 호스텔"도 다인실이 1박에 3만 원이었다. 하지만 유럽 호스텔과는 다르게 서비스가 다양했다. 1박당 5개의 플라스틱 코인을 주고, 조식 3 코인, 세탁과 건조에 3 코인, 자전거 대여 한 번에 1 코인, 이런 식이었다. 철제 바구니에는 수건과 베개 커버를 담아 주었는데, 괜스레 유럽 여행이 생각났다. 이 호스텔 덕분에, 출장을 겸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배낭여행 온 기분으로 여행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었다.


순천 여행의 백미는 당연하지만 순천만 습지였다. 정확히는 거기에서 보는 노을이었다. 노을을 보기 위해서는 야트막한 동산 위에 있는 "용산 전망대"에 가야 했는데, 가려면 순천만 습지를 가로질러 가야 했다. 30분은 족히 걸었다. 노을을 보기 위해서 늦은 오후에 순천만에 방문했는데, 낮의 습지와 밤의 습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낮의 습지는 평온하고 포근했으며, 황금빛 노을에 싸인 습지는 아늑하고 따뜻했다. 하지만 돌아가는 길, 해지고 난 뒤의 습지는 야성(野性)이 느껴졌다. 갈대밭 어딘가에서 날아오르는 새들은 그악스럽게 울었고, 풀벌레 소리가 요란했다. 습지의 야성은 산, 들판, 바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였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이토록 아름답고 날 것이었다.


순천 사람들은 외지인인 우리에게 종종 말을 걸었다. 그것이 가장 특이했다. 서울에서는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 자체가 이례 또는 무례로 느껴졌다. 그런데 여기서는 아주 자연스러웠다.

좁은 골목길에서 내 차가 전진하지 못하고 미적거린 때가 있었다. 뒤차는 적잖이 답답했으리라. 차 번호판만 봐도 렌터카인 것을, 외지인인 것을 알았을 것이다. 내가 힘겹게 길을 비켜주고 나자, 그 뒤차는 지나가면서 창문을 내리고 한마디 했다. 나는 당연히 좋지 않은 말이, 틀림없이 욕설이 나오겠구나 싶었다. 뒤차 아저씨는 넉살 좋게 웃으면서 "운전을 왜 이렇게 못허요~"하고 지나갔다. 같이 웃었다. 순천만 노을 보러 가는 길에서는 "아따 지금 가면 노을이 딱 이쁘겄다" 하면서 올라가는 나를 응원해주던 아주머니도 있었다.


순천에는 하천이 많았다. 지리산에서 흘러내려온 여러 갈래 물이 순천에서 합쳐졌다가, 순천만에 이르러 다시 흩어졌다. 물이 훑고 간 평탄한 땅에 순천이 있었다. 평탄한 땅에서는 하늘도 넓다. 날씨도 온화해서 마치 남부 스페인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해외여행만 못했다. 하지만 순천의 단점은 대한민국의 단점이었고, 순천의 장점은 순천 땅과 순천 사람들이 가진 장점이었다. 순천順天은 친절한 사람들, 온화한 하늘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직접 찍은 순천만. 부지런히 걸어 다행히 노을을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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