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즈오카 단상

시즈오카 1박 2일 여행 (2019년 2월)

by 김우중

시즈오카 현(静岡県)은 한국인에게 생소한 여행지다. 인구 1000만의 수도 도쿄와 인구 230만의 대도시 나고야가 모두 180km 이내에 있는, 나고야와 도쿄 사이에 끼어 매년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현이기 때문이다. 과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본거지였던 슨푸(駿府)라는 지역으로서 영화를 누렸으나, 메이지 유신 이후 현대 일본에 와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필자도 시즈오카 현에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 도쿄 근교에 위치한 지역 중 한적하고 온천이 있는 곳을 찾다 시즈오카를 발견했다. 물론 '나 혼자 산다'의 이시언이 방문해서 유명해지기도 했고, 인천공항에서 시즈오카로 가는 직항 노선(에어 서울)이 있어 가기에 좋은 이유도 있다.

3박 4일 일본 여행, 그것도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여행이다 보니 도쿄에서 4일 전부를 보내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60대를 넘긴 부모님의 체력을 고려하고 4인 단위 여행객이 도쿄의 혼잡한 지하철을 뚫고 지나다닐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그래서 고민하다 결정한 것이 시즈오카 in - 도쿄 out 일정이다. 시즈오카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 이동하고, 도중에 이즈 반도의 온천 료칸에서 1박을 하고, 도쿄까지 렌터카로 이동하는 일정.


시즈오카 시에서는 로컬 장어집에서 장어 덮밥으로 점심을 먹고 주변의 "시즈오카 센겐신사静岡浅間神社"를 들른 것이 전부였다. 별 기대 없이 밥 먹고 산책할 겸 들른 신사인데,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건물 면면이 화려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 최대의 목조 신사 건물이 있다고. 시즈오카 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본성(本城)이었으므로, 조선시대 전주-이성계가 전주 이씨여서 전주는 조선왕조의 발상지 대우를 받았다-와도 같은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이 큰 규모의 신사도 에도 시대에 지어진 것이겠지.

시즈오카 센겐 신사. 금박 장식이 화려하다

이 센겐신사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신사 뒷산으로 올라가면 후지산이 잘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구글 맵의 리뷰를 통해서 알아냈다(여행 중에 구글맵을 정말 요긴하게 사용했다).

센겐 신사 뒷산에 올라가면 후지산이 이렇게 보인다

그동안 일본 여행을 9번이나 했고, 도쿄에도 와봤지만. 후지산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시즈오카에 온 이유 중 절반은 후지산 때문이었는데, 일본의 상징이고 다양한 매스컴을 통해 접해본 만큼 실제로 후지산을 보고 싶었다. 과연 후지산은 컸다. 시즈오카 어디를 다니든 후지산이 불쑥 나타나 위용을 자랑했다. 다른 주변 산등성이가 평지로 보일 정도로 혼자서 높이 솟아 거대한 산. 일본 사람도 아니고 일본의 식민지 지배 역사에 분노하는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후지산은 어딘지 모르게 신성해 보였다. 일본 사람들, 특히 과거 일본인들에게 후지산은 성산(聖山)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에도 시대에는 후지산을 신으로 모시는 종교단체가 있었고, 이날 갔던 센겐 신사도 후지산신山神을 주신主神으로 모신다고 한다.


렌터카로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조수석에서 한 장. 육안으로 보면 '헉' 소리 나오게 크다.


시즈오카 현에 렌터카를 타고 온 중요한 이유 중 하나, 이즈 반도의 이즈노쿠니 시에 위치한 료칸 '산요소三養荘'를 방문하기 위함이다. 가족여행으로 일본에 오면 비싸더라도 료칸에서 1박은 꼭 하려고 한다. 가장 일본다운 문화 체험을 하려면 전통 료칸에서 노천 온천과 함께 1박 하는 것 만한 것이 없기 때문(같은 이유에서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템플 스테이를 꼭 하려 한다고).


산요소 료칸은 규모가 엄청 컸는데, 료칸 입구에서 객실까지 족히 7~8분은 걸어갔던 것 같다. 산요소는 1929년 미쓰비시 재벌가의 별장으로 지어졌으나 1947년부터 료칸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1929년이면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군국주의를 한창 펼치던 때. 전범기업 미쓰비시는 일본 정부에 협력하여 세를 불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 미쓰비시의 부富를 보여주는 규모였다. 아마도 1945년 일본제국 패망 이후 미쓰비시가 해체되면서 1947년 료칸으로 용도가 바뀐 것으로 추측된다(이후 도쿄 여행에서 미쓰비시 가문이 또 등장한다).


산요소 객실. 이 방 이외에 침실이 따로 있고, 일본의 가옥 치고는 객실이 큰 고급 료칸이다.

료칸에서 주는 가이세키 요리는 역시나 한국인의 입맛에는 별로였지만, 고급 료칸에서 대접받는 느낌을 받았다. 다음날에는 도쿄까지 130km를 달려야 하는 일정. 중간에 가마쿠라 또는 하코네를 들를까 고민했지만, 부모님을 위해 아울렛에 가기로 했다. 마침 가는 길에 일본 최대의 아울렛, '고텐바 프리미엄 아울렛'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렛에서도 후지산이 잘 보였는데, 매장들 사이로 보이는 후지산을 보고 있으니 뭔가 비현실적이었다. '포켓몬스터 게임' 도중에 어느 마을에 온 것 같은,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이었는데, 일본인의 만화적인 상상력이 이런 자연경관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결국 시즈오카는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후지산'이었다. 어디서든 보이는 후지산이 강렬하게 여기가 외국이다, 그것도 일본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애초에 시즈오카에 큰 기대가 없었으므로, 그걸로 충분했다.


(도쿄 단상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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