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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Oct 26. 2018

지렁이 구하기

2018. 10. 26.


 비가 많이 온 다음날, 보도블록에서 방황하는 지렁이를 보곤 한다. 흙에 물이 스며들면 피부호흡을 하는 지렁이들은 숨을 쉬기 힘들어서, 숨 쉬려 흙 밖으로 나온단다.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다. 왔던 자리로 돌아가면 좋겠건만, 눈 없는 지렁이가 그럴 수 있을 리 없다. 게다가 도시는 온통 아스팔트와 보도블록 투성이다. 


  흙을 먹고 토한다는, 그 토한 흙이 어떤 비료보다 더 토양을 비옥하게 한다는, 그 지렁이는 어떻게든 흙으로 돌아가려 보도블록에 온 몸을 비빈다. 하지만 지렁이가 들어갈 틈 없다. 이윽고 비추는 햇볕에 지렁이는 말라붙어 죽는다. 이 미련하고 가련한 지렁이가 보일 때마다 나뭇가지로 집어 흙바닥에 던져주곤 했다. 그래도 세상의 모든 지렁이를 구할 수는 없었다. 한 여름 아스팔트 위에서 말라죽은 지렁이를 보는 일은 언제나 불편하다. 


  회사 근처 자주 산책하는 아파트 단지가 있다. 조경이 좋아 가끔 가서 무상히 앉아있다 온다. 작은 연못과 얕은 물길이 있는데, 그 속에서 헤엄치는 작은 금붕어들을 보고 온다. 어느 날은 그 얕은 물길에 지렁이가 빠져 있었다. 또 지렁이! 이번엔 어떻게 들어갔는지 물속에 있다. 작은 조약돌이 지렁이의 꼬리를 누르고 있었다. 그래서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온 몸을 꿈틀거리고 있다. 잠시 지렁이가 물에서도 숨을 쉴 수 있나 생각해 보았으나, 그냥 두면 죽겠구나 싶었다. 나뭇가지로 건져내어 나무 밑 흙바닥에 두었다. 멍청하고 귀찮은 지렁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조약돌에 눌려있던 꼬리 부분은 색깔이 달랐다. 조직이 괴사한 것인지, 꼬리 부분은 움직이지 않는다. 다행히 머리와 몸통은 잘 움직인다. 잘 살 수 있을지 잠시 걱정했지만, 지렁이일 뿐이었다. 걱정할 일은 그것 말고도 많았다.


  이틀 뒤인가, 잠시 머리를 식히러 그 주변을 걸었다. 그때 건져냈던 지렁이가 생각났다. 그 나무 밑으로 가보니 지렁이는 없었다. 혹시 또 물속에 빠진 멍청한 지렁이가 있나 살펴보았다. 거기에도 지렁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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