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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Nov 26. 2018

혁신의 끝을 잡고

나이 30이 넘어 처음 간 애플 공식매장 방문기

  아이폰을 새로 샀다. 전부터 스마트폰을 바꾸면 가죽 케이스를 사리라 벼르고 있었다. 마침 애플 정품 케이스 중에 그런 게 있었다. 심플하고 튼튼하면서 내가 원하는 갈색이었다. 당장 사서 끼우고 싶었는데, 처음 살때 받았던 케이스가 너무 얇아 보였던 탓이다.

  애플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배송과 픽업 두가지가 있었다. 픽업은 말 그대로 애플 매장에서 직접 수령하는 것이니 다음날 바로 받는게 가능했다. 애플 매장은 신사동 가로수길. 집에서 멀지 않았다. 다음날도 마침 주말이니 바로 결재했다.


  토요일에 가로수길을, 그것도 애플 공식 매장을 가다니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선택이었는데, 이때만 해도 가죽 케이스에 대한 물욕이 앞서 알지 못했다.


  드디어 토요일, 결혼식에 들렀다 신사역으로 갔다. 이미 지하철역부터 사람이 많았고, 애플 매장에 다가갈수록 사람은 점점 많아졌다. 얼른 케이스만 수령하고 올 계획이었으나, 벌써부터 계획이 틀어짐을 느꼈다.
  신사역에서 내려 한참을 걸었다. 애플 매장은 가로수길 가운데쯤 있었다. 층고가 높은 단층짜리 건물. 심플하게 사과마크 하나가 전부였고, 전면 유리로 보이는 내부는 별다른 표지판 없이 단촐했다. 나름 단순의 미학을 살린 건물이겠으나, 사람이 무지하게 많아 나아게는 짓다 만 모델하우스처럼 느껴졌다. 한마디로 시장바닥이었다.


  공식 애플 매장은 가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어디서 계산하는지, 점원이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자세히 보니 유니폼처럼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이 여러명 보였다. 개중 한명에게 다가가 제품을 픽업하러 왔다고 했다. 점원은 쾌활하게 “그럼 저기 제일 왼쪽 화분 앞으로 가서 직원 안내 받으세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예?” 점원은 다시 천천히 알려주었다.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입구쪽에 서 있는 거대 화분 4개를 보았다. 사람 키를 넘어 천장에 닿을 듯한 식물이었다.


  제일 왼쪽 화분. 가라니까 가야지 별 수가 없었다. 인파를 해치며 가까이 가보니 과연 화분 주변을 빙 둘러 몇명이 서성이고 있었다. 나는 내가 혁신적인 미국 기업의 공식 매장에 온 것인지 북한 암시장에 온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뭐가 됐든 나는 케이스를 받아 여기를 빠져나가야 했다. 과연 그들 중 빨간 옷이 있었다. 당황하지 않고 점원에게 다가가 픽업 문의를 하자 그 점원은 “여기서 순서대로 기다리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두번째로 당황했다.
  원을 그리며 서있는 그들 중 누가 첫번째인지 어떻게 아는가. 나는 흔들리는 눈동자를 다잡고 물었다. “여기..어디에 서야 하죠?” 점원은 화분의 한 지점을 가리키며 여기 서라고 했다. 침착을 되찾고 시키는 대로 섰다. 다행히 화분은 매우 크고 앉아있을 수 있게 테두리를 만들어 두었다. 하지만 언제 나를 찾을지 몰라 서서 기다렸다.


  점원들은 계산대나 자리가 따로 없이 서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아이폰으로 주문을 확인하고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많고 혼잡하자 임기응변으로 “제일 왼쪽 화분”과 같이 지점을 정해둔 거 같았다.


  얼마 안되어 빨간 옷을 입은 남자 점원이 웃으며 다가왔다. 나는 세번째로 여기에 온 목적을 말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담당자였다. 받은 메일을 보여달라 하더니, 자기 아이폰으로 내 아이폰의 qr코드를 스캔했다. 곧 케이스를 가져올테니 기다리란다. 점원은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가, 사과 마크가 찍힌 흰 비닐봉지를 건네주었다. 열어보니 그토록 찾던 가죽 케이스였다.

  나는 밀수꾼이라도 된 심정으로 흰 비닐봉지를 쥐고 황급히 매장을 빠져나왔다. 혁신은 과연 어려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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