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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Nov 12. 2018

누구나 타인이 된다.

영화, 완벽한 타인(2018) 감상평

오랜만에 짜임새 있는 영화를 보았다. 이재규 감독의 "완벽한 타인(Intimate Strangers , 2018)"이다. 2016년 개봉한 동명의 이탈리아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데, 원작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감독의 공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현실적인 대사와 인물 간의 호흡이 좋고, 완급을 조절하는 편집이 관객을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가끔은 숨 막히게 무섭다가도, 픽 하고 실소하게 만들고, 어쩌다 한 번은 폭소하게 만든다. 그동안 스케일만 있고 만듦새는 엉망이었던 한국산 블록버스터만 보다가, 눈과 귀가 정화되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인물들 간의 대화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은 마치 연극 무대를 연상케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연극화할 계획도 있단다. 연극 무대처럼, 영화는 인물 각각의 개성과 연기를 보는 맛이 있고, 카메라는 7명의 인물을 이리 엮고 저리 엮으며 다양한 케미를 만들어 낸다. 인물들 간의 궁합에서 나오는 분위기와 이야기 전개로 관객은 지루할 틈이 없다.


  극을 이끄는 부부는 조진웅(석호 역)과 김지수(예진 역)인데, 둘의 연기가 가장 안정적이었다. 극 중 캐릭터와 연기 스타일이 잘 맞아떨어졌달까. 유해진은 다소 시니컬하고 무뚝뚝한 변호사 태수를 맡았는데, 준수한 연기였지만 유해진의 평소 장점을 다 담아내지 못한 캐릭터 같아 아쉽다. 염정아는 역시나 어느 역을 맡아도 그 역에 그대로 녹아드는, 믿고 보는 배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남편의 기에 눌려 일상이 억압되어 있지만 나름 기죽지 않고 자신의 삶을 꾸려가려는, 복합적이면서 미묘한 심리를 가진 수현을 잘 연기했다. 이서진은 TV에서 하도 보아서 그런지 그가 나올 때마다 스피킹맥스 CF를 보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데, 연기 자체는 그냥 그랬다. 오히려 놀랐던 건 개중 인지도가 가장 적었던 윤경호인데,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이름만 들어서는 어떤 배우인지도 모를 것이다. 주로 못나고 못된 단역을 맡은 배우인데, 이 많은 유명 배우들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의 캐릭터를 잘 구축했다. 아니나 다를까 찾아보니 연극배우 출신이다.


  이야기는 결국 캐릭터가 이끌어나간다는 것을 잘 보여준 영화다. 물론 영화가 후반부로 가면서 이야기의 힘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서로의 비밀이 탄로 난 뒤, 더 터질 것이 없자 관객은 인물들과 함께 지쳐서 멍하니 앉아있게 된다. 마지막 반전도 뭔가 아쉽다. 권선징악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꺼림칙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요즘 같은 "한국 영화의 위기"에 괜찮은 영화 하나가 나온 것 같아 권하고 싶다.


  누구나 비밀은 있고, 그 비밀 앞에서 우리는 타인이 된다는 것, 때문에 생은 결국 외롭다는 것, 모두 누구나 살면서 느끼는 것들이고 구태여 강조할 메시지도 아닌 듯싶다. 그저 이 영화처럼 웃고 즐기다가, 영화관을 나서면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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