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우중 Jan 02. 2019

마약왕부터 PMC까지, 한국 영화의 위기.

마약왕(2017), PMC:더 벙커(2018) 감상평

 괜찮게 본 영화들만 감상평을 쓰다 보니, "마약왕(THE DRUG KING, 2017)"을 본 지 시간이 꽤 되었음에도 글을 쓰지 않았다. 아예 안 쓰기에는 장점이 어느 정도 있는 애매한 영화. 하지만 애매한 호감으로 영화평을 쓰기에는 글 분량이 나오지 않아 보류해 두었다. 그러다 어제 "PMC:더 벙커(Take Point, 2018)"를 보니, 이제야 애매한 2편의 한국영화를 한데 묶어 영화평을 쓸 수 있게 되어 슬프면서도 기쁘다.


  결론부터 말하자. 요즘 한국영화, 때깔은 좋아졌으나 알맹이가 없다. 마약왕도,  PMC도, 송강호와 하정우 믿고 극장 갔다가 실망이 컸다. 돈을 많이 들이고 개런티 센 배우가 출연한 영화일수록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매년 "한국영화 위기다"는 소리는 많았지만, 지금이 진짜 위기가 아닌가 싶다.


  지난 2018년 개봉한 한국영화 중 고高자본 블록버스터 영화는 예외 없이 다 별로였다. 제작비 1위부터 5위를 꼽아보면 명확하다. 인랑(230억), 안시성(220억), 창궐(167억)까지... 하나같이 볼거리는 많으나 배우의 연기, 이야기 구조가 이상했다. 당연히 흥행도 참패, 손익분기점도 못 넘었다. 적어도 돈을 쏟아부었으면 그만한 값은 해야 하는데,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 때깔만 겨우 따라 했다.


  마약왕과 PMC는 그래도 저 3개 영화보다는 낫다. 하지만 송강호와 하정우, 160억과 165억의 제작비를 가지고도 이 정도 영화밖에 못 만든다면, 결국은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의 역량 부족일 것이다.


  마약왕부터 보자. 장점은 배우의 연기다. 먼저 송강호를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연기는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워낙 다양한 영화에서 다양한 시대/직업/나이/신분/역할을 연기했기 때문이다. (씨네 21에서는 이를 두고 "대한민국 사람"을 연기한 배우는 안성기와 송강호가 유일하다 말한다) 그나마 새로운 부분은 마약을 투약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마약에 잠식되어가는 연기였다. 훌륭한 연기였으나 영화가 제대로 받쳐주지 못했고, 이 영화의 유일한 장점으로 남았다. 유감스럽다.


  송강호의 열연에도 이 영화가 빛을 발하지 못한 것은, 영화 전체가 지나치게 송강호(이두삼 역)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두삼의 일대기를 그리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주변의 인물 군상들이 지나치게 짧은 분량에서 작은 역할만 하고 교체된다. 그러니 이야기 구조가 산만하다. 이두삼에게 시련을 주는 인물, 각성을 유도하는 인물, 분노를 유도하는 인물 등으로 여러 인물들이 주인공의 부속품으로만 쓰이고 버려진다. 그나마 가장 비중 있는 조연은 조정석이 연기한 김인구 검사인데, 왜 그렇게 집요하게 이두삼을 검거하려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감독은 아예 궁금하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조정석은 하나의 캐릭터라기보다, 그냥 여러 검사들의 집합체로 보인다.


  개인의 일대기를, 그것도 밀수업자에서 마약업자로 변하고, 마침내는 대한민국의 마약왕에 오르는 이두삼의 장중한 일대기를 한 편의 영화에 담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어려운 것을 해내야 명작이 탄생한다. 실제로 마약왕과 비슷한 시기에 만든, 장중한 이야기를 한편에 담는 어려운 작업을 해낸 명작이 있다. 장준환 감독의 "1987(When the Day Comes,2017)"이다.


   이렇듯 "마약왕"의 이야기는 엉성하다. 감독이 무슨 의도로 이두삼의 일대기를 일일이 보여주는지는 알겠다. 독재정권의 흥망성쇠와 대한민국 가장의 민낯이겠지. 그런데 이미 "범죄와의 전쟁(2011)"에서 봤다.



  이제 PMC로 넘어가자. 일단 예고편으로 관객을 속였다. 마치 하정우의 격하고 남성적인 총기 액션을 보여줄 거 같은 예고편에 기대한 관객들은, 무척 실망했다. 하정우는 한쪽 다리가 의족인 데다가, (여러 사건으로) 말로 팀원들을 지휘하는 역할만 한다. 이른바 "입 액션"이다. 그 점은 PMC를 만든 김병우 감독의 전작, "더 테러 라이브(2013)"과 똑같다. 김병우 하정우 콤비는,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 "더 테러 라이브"를 한번 더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많은 관객들이 호소하는 문제로, 너무 화면이 어지럽다는 단점이 있다. 현장감을 살리려고 1인칭 시점의 카메라를 주로 사용하였는데,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싶게 1인칭이 많다. 마치 게임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데, 게임에서도 1인칭 영상은 말 그대로 "한 장면"에서만 쓴다. 주로 튜토리얼에 쓰는데, 이렇게 2시간 내내 1인칭 영상을 틀어주면 누가 좋아할까. 어떤 관객들은 (심지어) 멀미도 했다. 불친절하고 고민 없는 촬영의 결과가 아닌가 한다.


  그럼에도 PMC의 장점은,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이야기 구성과 실감 나는 CG효과다. 근데 이건 감독의 전작 "더 테러 라이브"가 더 나았다. 이제 끝났나 싶으면 다시 위기, 위기를 극복하나 했는데 다시 위기, 이런 식으로 관객들은 빵빵 터지는 사건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그게 좋은지는 별론으로 하고) 역동적인 이야기 구조를 잘 짰다. (관객의 피로도와 별개로) CG효과와 1인칭 시점 영상으로 현장감도 주고, 특히 영화 후반의 공중 비행기 영상들은 완성도 높게 만들어서 "한국 영화가 이 정도로 잘 만드나?"라는 반문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게 다다. 배틀 그라운드 좋아하는 남자들이 신나게 자기 취향 영화를, 정확히는 게임 방송을 만든 것 같다. 그런데 배틀 그라운드 게임 방송이 나을 거 같다. 이야기는 여러 가지 면에서 비현실적으로 전개되고, 인물들은 단 한 명도 감정이입할 만한 대상이 없다. 심지어 주인공 하정우까지도.



  짧게 쓰려했으나 한국 영화에 애정이 많아 길어졌다. 앞으로는 쓰는 돈만큼, 늘어나는 투자자만큼 더 완성도 있는 작품을 기대해 본다. 앞서 말했듯 제작비가 큰 영화일수록 작품이 실망스러웠는데, 결국 투자자와 제작자가 감독의 뚝심을 지켜주어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한다. 언제까지 "막대한 제작비 투입 + 멀티플렉스 상영관 독점으로 흥행시켜서 돈 벌기" 스킬만 쓸 건가. 잔재주 부리는 동안 한국영화 망한다.


2019년에는 대작다운 대작 나왔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쿠아맨이 SKY캐슬을 만났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