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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Mar 24. 2019

'곡성'의 둘째 자식, 아버지보다 못하다.

영화 '우상(Idol, 2019)' 감상평

  결론부터 말하면 실망스럽다. 영화의 초반은 흥미롭고, 중반은 변화무쌍하게 이야기가 움직이는 듯 보였다. 그런데 후반에 와서는 이게 다 무얼 위한 것이었던가 혼란스럽고 허무하다. 추측컨대 나홍진 감독의 '곡성(The Wailing, 2016)'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곡성'의 가장 큰 특징은 종교적 색채와 악惡에 대한 탐구 그리고 모호함이었고, 그 모호한 안개를 걷어보려 많은 평론가와 관객들이 수많은 리뷰를 썼다. 이 영화도 종교와 악惡을 바탕에 깔고 모호함을 곳곳에 배치해서 관객의 적극적인 해석을 유도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감독도 관객 나름대로 해석하길 바라고, 영화 속 메시지가 관객에게 '은근하게' 다가가길 원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해석의 여지가 많은 상징적인 이야기, 은근한 메시지는 필자도 선호하나 이런 식은 아니다. 일단 대사가 잘 안 들린다. 연변 사투리의 천우희는 대사의 절반이 안 들리고, 설경구도 대사의 30% 이상이 안 들린다.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대사는 잘 들려야 관객이 해석을 하든 말든 한다. 중간중간 '맥거핀'도 등장해서 관객을 헷갈리게 한다-맥거핀은 영화에서 중요한 것처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줄거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극적 장치를 뜻한다. 한마디로 속임수다-. 곡성도 많은 맥거핀을 사용했지만 최소한 모든 대사와 이야기가 분명히 관객에게 전달되었다. 다만 전달된 장면에 대한 해석이 분분했다. 또한 이렇게 해석해도 정답이고, 저렇게 해석해도 정답인 영화였다. 그런데 '우상'은 장면 자체가 무엇이었는지 관객이 먼저 해석해야 한다. 장면 자체에 대한 해석이 끝나면, 그것이 상징하는 바는 분명하게 나온다. '감독이 의도한 정답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정답이 없다 하더라도,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종교적 색채와 믿음에 대한 탐구, 악인의 이야기는 그런대로 잘 구현했으나 너무 늦었다. "곡성"에서 이미 충분히 보았고, '사바하(2019)'에서도 많이 보았다. 그런데 '우상'을 세 번째로 보니, 이제는 이 영화가 곡성의 둘째 자식쯤으로 보인다. 물론 첫째(사바하)와 아버지(곡성)만 못하다.


  이야기는 한석규, 설경구, 천우희 세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한석규와 설경구의 대결로 흘러가는 듯하다가, 천우희가 끼어들며 삼파전으로 치닫는다. 1:1의 대결로 영화를 끌고 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천우희가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영화는 비틀리고 산만해진다. 물론 그 삼파전의 소용돌이를 잘 마무리했으면 정말 훌륭한 영화가 될 수 있었다. 심지어 감독은 별다른 외부의 간섭 없이 뚝심 있게 연출을 해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야기는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위 셋 중 연기를 못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담 감독의 잘못이다. 세명의 폭발적인 연기가 감독의 고집스런 손길에 불발탄으로 끝나는 영화였다.


  세 인물의 우상에 대한 해석은 이미 많은 리뷰가 있다. 한석규는 권력, 설경구는 핏줄, 천우희는 삶(또는 한국 국적)을 우상으로 삼고 살아가는 자들이다. 세 인물의 상호작용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빠졌다. 영화 이전에는 어떤 범죄도 저지른 적이 없어 보이는 한석규가 영화 이후에 그토록 악행을 저지르는지 설명이 부족하다. 한석규가 사이코패스라면 영화 초반에 그렇게 고뇌하고 놀랄 이유가 없었다. 천우희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막판에 너무도 쉽게 내던진다는 점에서 이해 가기 어려웠다. 설경구는, 그냥 처음부터 일관된 캐릭터여서 궁금할 것도 없었다.


  한석규의 연기는 훌륭했다. 선량한 보통 사람에서 악인으로 변하는 과정이 현실감 있었다. 설경구는 여전히 열연을 펼치나 그동안 봐왔던 모습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20년 전 영화 '박하사탕(1999)'에서 보았던, 야수처럼 노려보고 울부짖는 연기였다. 천우희는 이 영화에서도 제 몫을 한다. 처음에는 한석규에 빠져서 보다가, 영화를 보고 나면 천우희만 기억에 남는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기대할 만한 것은 천우희의 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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