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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May 20. 2019

불닭볶음면 같은 영화

영화 악인전(2019) 감상평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불닭볶음면 같은 영화다. 그리고 필자는 불닭볶음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불닭볶음면이 무엇인가. 일단 인스턴트 라면이다. 무지하게 맵다. 맛으로 먹는 음식이며, 영양소나 영양균형은 그다지 고려하지 않은 음식이다. 영화 '악인전(The Gangster, The Cop, The Devil , 2019)'도 그런 영화다. 화끈하고 통쾌한 액션과 권선징악 이야기를 주무기로 하지만,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온통 악과 깡으로 가득 차 있으며 영화적 균형이나 미감, 개연성 등은 고려하지 않고 철저히 피 튀기는 오락영화로 만들었다.

  일단 마동석과 그의 최고 히트작 '범죄도시(2017)'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추측컨대, '범죄도시'의 흥행이 없었다면 '악인전'도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악인전'은 '범죄도시'에 많은 빚을 지고 있는데, 마동석이 가진 이미지 때문이다. '범죄도시'의 경찰 마동석과 '악인전'의 조폭 마동석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엄청나게 강력하고, 악인을 때려잡는 점에서 같다. 마동석의 최대 장점은 우락부락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귀여움과 유머가 있다는 점인데, 이 때문인지 '악인전'의 조폭 마동석은 별다른 유머 없는 '순수 악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악역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마요미' 캐릭터의 영향력은 이제 마동석이 악역을 연기해도 그다지 악해 보이지 않는 경지까지 이르렀다.


 '악인전'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남녀노소 무차별적으로 아무나 손에 잡히면 죽이는 연쇄살인범이 있다. 경기도 남쪽 조폭들을 모두 휘어잡은 조폭 두목 마동석이 있다. 그 연쇄살인범과 마동석이 우연히 마주쳤고, (차별없이 살인하는) 연쇄살인범은 마동석도 죽이려다 실패하고 도망친다. 마동석은 졸지에 '조폭이 쪽팔리게 칼침 맞은' 피해자가 되었고, 조폭의 '가오(체면)'를 회복하기 위해 연쇄살인범을 잡으려 한다. 그리고 연쇄살인범 잡아서 승진하고 싶은 폭력경찰 김무열은 마동석과 협력해 연쇄살인범을 잡으려 한다. 조폭과 경찰, 전혀 협력할 수 없어 보이는 인물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는 이야기다.


  마동석과 함께 영화의 양대 축인 배우 김무열을 이야기해보자. 그간 김무열 배우는 영화 '활(2011)'의 조연으로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 뒤로 김지운 감독의 '인랑(2018)'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번 '악인전'에서는 폭력과 욕을 상시 장착한 경찰로 나오는데, 인랑과 캐릭터가 비슷하다.


  일단 김무열은 이 영화에서 주연배우를 맡아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배역에 맡게 몸도 좀 키운 것 같고, 캐릭터를 확고하게 잡아서인지 연기가 일관성 있다. 영화 내내 짜증내고 화내고 싸운다. 그러나 그 일관성 있는 연기가 영화에는 독이 되었다. 시종일관 거친 모습만 보여주고, 별다른 유머도 구사하지 않으니 주인공임에도 매력이 없다. 이는 영화 전반의 문제이기도 한데, 배우의 문제라기보다 감독의 연출 부족으로 보인다.

  이처럼 피 튀기고 사람 찔러 죽이는 영화를 만들 때에는, '범죄도시'처럼 적절히 유머와 드라마를 넣어, 관객이 감정적으로 적당히 쉬어갈 수 있는 지점이 필요했다. 그런데 쉬어갈 지점이 없다. 계속 부수고 찌르고 피나고 때린다. 이야기 전개는 적당히 흥미진진하면서 적당히 관객의 기대를 배신하지만, 권선징악이라는 큰 이야기는 뻔해서 아쉽다.


  앞서 이 영화를 불닭볶음면으로 비유했다. 감독과 제작자의 의도는 분명히 보인다. 누가 보아도 악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그를 잡기 위해 조폭과 경찰이 협력한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나쁜 조폭”과 “약간 나쁜 경찰”이 “엄청나게 나쁜 연쇄살인마”를 잡는다는 이야기에 관객이 몰입하기 위해, 연쇄살인마는 누가 봐도 미워할 만한 사이코패스로 나온다. 사이코패스 앞에서, 사람 이빨을 맨손으로 뽑는 마동석은 오히려 착해 보인다.


  이 지점에서, 감독과 제작자는 별로 고민 없이 영화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절대 악 앞에서 다른 악들은 모두 뭉개버리고 지나갈 수 있는 것인가? 절대 악 하나를 잡기 위해서 경찰이 악인과 영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도록, 연쇄살인마를 묘사하는 장면들은 과하게 '날 좀 미워해 주세요'를 외치는 것 같았다. 이 영화는 신선한 재료와 적당한 간으로 만든 요리라기보다 매운 소스를 가득 넣어 다른 재료나 부족한 요리실력을 매운맛 하나로 뭉개면서 '매운맛 하나만 기억해 주세요'라고 외치는 요리처럼 보인다. 그 알싸한 매운맛이 좋다면 이 영화를 보면서 즐거울 수 있지만, 극장을 나서면 휘발되는 오락성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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