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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Jan 20. 2019

혐오에 맞서는 존엄

영화, 그린 북(Green Book, 2018) 감상평.

  로드무비를 좋아한다.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 "파리로 가는 길(Paris can wait, 2017)"처럼, 분위기가 무겁지 않고, 훌쩍 떠나는 여행 같은 영화가 좋다. "그린 북(Green Book, 2018)"도 로드무비로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소재를 적당한 무게감으로 흠잡을 곳 없이 풀어냈다. 거기에 비고 모텐슨, 마허샬라 알리의 연기가 더해져 최근 1년 동안 본 영화 중 가장 좋았다. 명작이라 하기엔 부족하지만 수작이라 하겠다.


  1962년 미국, 영화는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 분)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토니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클럽에서 경비를 맡아 소란을 일으키는 손님을 내쫓고 패는 일을 업으로 하는 서민이다. 그 시대 백인답게 흑인을 매우 싫어하고, 흑인 배관공이 마시고 간 유리컵을 아내 몰래 쓰레기통에 넣는 사람이다. 그러던 그가 일자리를 찾던 중,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분)의 보디가드 겸 운전기사 자리를 제안받는다. 셜리는 흑인이지만 백악관에서 2번이나 연주했고, 5개 국어에 능하고 2개 박사학위까지 겸비한, 말 그대로 천재 뮤지션이다. 셜리는 딥 싸우스(deep south; 미 최남부 지방, 인종차별이 가장 심함)로 콘서트 투어를 가려는데, 흑인에게 위험한 동네인 만큼 주먹도 쓸 줄 아는 토니를 데려가려 하고, 토니는 높은 보수에 마지못해 승낙한다. 단, 약속된 임금의 절반은 여행 시작 전에 받고, 예정된 투어를 모두 마쳐야 임금의 반을 마저 받는다.


  토니는 넉살 좋고, 말투도 험하고 이탈리아 억양의 영어를 구사하며, 뚱뚱하고 고칼로리 음식을 즐겨먹는다. 반면 셜리는 예의 바르고, 정확한 발음과 억양의 영어를 구사하며, 군살 없는 몸매에 깔끔하고 고급진 옷을 입는다. 대비된 두 인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우러지며 좋은 케미를 만들어낸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알 것이다. 흑인 차별이 심한 딥 싸우스에서 셜리를 중심으로 사건사고가 있을 것이고, 흑인을 혐오하던 토니는 점차 마음을 열고 토니와 셜리 사이에 우정이 깊어지면서 인종간 장벽이 허물어질 것이다. 뭐, 대체적으로 맞다.



  하지만 이 영화의 미덕은 균형감이다. 뛰어난 실력과 지위를 가졌음에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멸시받는 셜리를, 영화는 동정하지 않는다. 영화는 신파에 빠지지 않으면서, 필요한 때에만 적당히 슬픔을 내어 보인다. 그것도 오랫동안 참다가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기침 같은, 슬픔이다. 그 절제된 슬픔이 관객으로 하여금 돈 셜리가 오랜 세월 겪었던 차별과 슬픔을 폭넓게 상상하게 한다. 이는 카메라가 보여주지 못한 것까지 보여주는 감독의 연출과 마허샬라 알리의 열연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마허샬라의 연기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야겠다. 영화 초반에 그는 매우 도도하게 토니를 대한다. 토니를 무시하는 도도함이 아니라, 자신의 지위와 품위를 내세우는 도도함이며, 그렇다고 지나치게 뽐내지도 않는다. 어찌 보면 적당한 고고함이고 우아함인데, 흑인에 대한 차별과 스스로 가지는 열등감에도 불구하고 절제된 고고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가 괜찮은 인격을 가졌으며, 많은 인내를 거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허샬라는 이러한 캐릭터를 자연스러운 말투와 제스처로 전달한다. 빼어난 연기였다.


  영화가 중반에 접어들면서, 셜리는 항상 스스로를 절제하고 인내하며, 그래서 무척이나 고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토니가 우연히 건너편 베란다 의자에 앉아 술을 마시는 셜리를 보는데, 셜리는 숙소 앞에서 즐겁게 대화하는 남녀 커플들을 부러워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셜리는 그들에게 다가가지는 못하고, 그저 베란다에서 그들을 쳐다보며 혼자 위스키만 홀짝이다 잠이 든다. 이런 식이다.


  당연히, 딥 싸우스에서 셜리는 많은 멸시를 받는다. 심지어 어떤 주(州)는 흑인 전용 통금이 있다. 밤에 흑인은 집 밖으로 나가면 안되는 것이다. 흑인 통금을 단속하는 경찰 앞에서 셜리는 분노하지 않고, 그를 대신해 분노하는 토니에게 Dignity를 외친다. Dignity는 영화에서 '품위'로 번역되나, 나는 '존엄'으로 말하고 싶다. 피부색으로 혐오하는 그들에게, 토니는 인간의 "존엄"을 외친다. 자신도 너희들과 같은 인간이므로, 인간의 방식대로 투쟁하며 인간의 존엄을 내세우는 것이다. 혐오에 맞서는 존엄. 그것이 이 영화의 진정한 미덕이 아닌가 싶다.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영화의 중후반, 셜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울부짖는 장면이다. 흑인이지만 백인 상류층을 위한 연주를 하고, 연주회에서는 박수받지만 연주가 끝나면 멸시받는 셜리는 외친다. "So if I’m not black enough, and if I’m not white enough, and if I’m not man enough, then tell me Tony, what am I?!(내가 충분히 하얗지도 않고, 내가 충분히 까맣지도 않고, 제대로 된 남자도 아니라면, 말해봐 토니 대체 내가 뭔지?!)"



  이 영화는 토니와 셜리의 성장담 일 수도 있다. 돈 셜리의 유족들은 실제 내용과 다른 부분이 많다고 비난하고, 일부 관객과 평론가들은 너무 백인(토니) 중심으로 영화가 짜였으며, 백인이 흑인을 성장시키는 할리우드의 뻔한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비난한다. 일부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멸시받고 고독하지만 품위를 지키려는 셜리의 모습은, 야만의 시대에 어떻게든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한 인간의 끈질긴 투쟁처럼 보여서, 나는 좋았다.


  정의와 존엄을 세우려는 한 인간의 외롭고 끈질긴 투쟁은, 어떻게든 감동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세상의 정의를 세우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나와 내 주변의 정의를 지키는 삶이라도 살고 싶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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