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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Jan 23. 2019

우리는 모두 다르다

영화 "증인(innocent witness, 2018)" 감상평.

  정우성이 변호사로 나온다고 하니 두 가지 이유에서 색안경을 끼고 보기 시작했다. 일단 정우성이 나온 영화는 2008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후로 재미있는 영화가 없었다. 둘째로는 정우성이 변호사라니, 정말 안 어울리는 역할이다 싶었다. 필자는 변호사이므로, 나 자신과 주변 변호사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안다. 그런데 정우성이 변호사라니. 약간의 모욕감과 열등감을 느끼며, "어디 실제 변호사랑 얼마나 비슷한지 보자"라는 심보로 팔짱을 끼고 본 영화를 보기 시작했음을 고백한다. 영화 "증인(innocent witness, 2018)"이다.


  순호(정우성 분)는 40대 중반의 독신 변호사다. 아마 30대에 변호사를 시작한 것 같은데, 공익변호사 활동(영화에서는 '민변')을 하다 생활고에 공익변호사를 그만두고 돈 많이 버는 대형 법무법인에 취직한다. 이 법무법인 대표는 정우성에게 살인 사건의 국선변호를 맡기는데, 40대 가정부가 80대 노인을 살해한 사건이다.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지우(김향기 분). 순호는 가정부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지우를 증인으로 세우려 한다. 증언을 거부하는 지우와 그녀의 어머니를 설득시키기 위해 순호는 매일같이 하교하는 지우를 찾아가고, 둘 사이에 우정이 싹튼다. 여기까지가 간략한 이야기인데, 이렇게만 보면 뻔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영화를 보면 전형적이지 않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보다 복잡한 이야기가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증인"은  "잘 만들었지만, 전반적으로 재미가 부족"한 영화다. 예상외로 실제 변호사의 모습과 법정의 모습을 제대로 담았다. 게다가 배우들은 모두 제 몫을 하고, 이야기 구조는 탄탄해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복선들은 결말에 이르러 남김없이 회수된다. 캐릭터 하나하나 모두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있고 누구나 이해할 만한 동기를 가졌다. 자폐증을 앓는 소녀와 40대 변호사 아저씨의 우정, 은 예상과 달리 신파로 흘러가지 않고, 적당히 담백하고 산뜻한 감동을 준다. 그런데, 다 좋은데 영화가 좀 심심하다. 영화의 톤이 잔잔한 것은 좋으나 후반까지 잔잔해서 다소 지루하고, 후반부의 드라마틱한 전개는 좀 늦은 감이 있다. 떡밥들을 섬세하게 깔아 둔 것은 좋은데, 좀 더 빨리 터뜨렸으면 좋지 않았을까. 그래도 2018년 한국 영화들과 비교하면 완성도는 상위권이다.


  김향기의 자폐성 장애를 앓는 중학생 소녀 연기는 좋았다. 사실 자폐성 장애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고, 대중매체로 본 것이 전부지만 그동안 봐 온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줬다. 이 영화에서 김향기의 비중이 컸던 만큼, 그 책임도 무거웠으리라.


  앞서 말한 두 가지 색안경에 대해 말해야겠다. 정우성의 연기는 준수했다. 물론 외모가 더 준수해서, 리얼리티를 자꾸 깨 먹는다. 저렇게 생긴 변호사가 40대 중반이 되도록 솔로라고?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정우성 이외의 변호사, 판사, 검사 등 법조인의 모습은 실제에 가깝게 구현해서 놀랐다.

  특히 1심 재판장(판사) 역할을 한 배우가 누구인지 궁금한데, 실제 판사를 데려다 놓은 것이 아닌가 싶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 판사 그 자체였다. (출연 배우가 누구인지 네이버나 구글에서도 검색이 안되는데, 기자님들이 한번 알아봐 줬으면 한다) 실제 법정에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대부분의 판사들은 이 영화 속 판사처럼 다소 시니컬하고 무관심한 태도로 재판을 진행한다. 사실 판사도 공무원이다. 거기다 제삼자다. 양 주장 사이에서 냉정함도 유지해야 한다. 그러니 특별히 목소리를 높이거나 흥분할 일도 없다. 이처럼 무심한 듯 시크하게 재판을 이끌어가는 모습이 영락없이 실제 판사였다.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낸다.


  또 하나 감독을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검사 캐릭터다. 보통 주인공이 변호사면, 상대편 검사가 악독하게 나오는데 여기서는 그 틀을 깨고 검사가 착하고 어리숙하다. 관객들은 자기도 모르게 검사를 응원할지도 모르겠다. 검사 역할의 이규형 배우의 연기도 좋았지만,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구성한 감독이 대단하다 싶었다.


  또 하나 감독의 현실적인 연출은 '선과 악의 모호성'이다. 이 영화에서 순호(변호사)와 검사는 재판에서 서로를 공격하는 입장이나, 어느 한쪽도 악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지우를 하굣길에 항상 데려다주는 학교 친구는 그녀를 지켜주는 '수호자'또는 '변호사'처럼 보이나, 알고 보면 지우를 괴롭히기도 한다. 순호는 지우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지만, 사실 재판을 위해 지우를 이용하는 입장이다. 이처럼 영화에서 '선과 악'은 모호하게 보이고, 때때로 뭉개져서 어느 쪽이 좋은 사람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그 모호성이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만, 그 모호성을 지나치게 길게 끌면서 영화가 지루해지는 감이 있다.


  하지만 변호사로서, 그리고 한 명의 관객으로서 이 영화는 추천할 만하다. 영화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를 즈음, "인간은 모두 다르다"는 말이 나온다. 그 한마디가 영화의 메시지 같고, 감독이 하고자 하는 말로 들렸다. 이 단순한 문장이 울림을 줄 정도로, 영화는 자폐증을 앓는 사람과 비장애인 사이의 소통에 관하여 많은 공을 들였다. 맞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서로 의지하고, 서로 소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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