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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Feb 07. 2019

왜 지금까지 이런 코미디 영화가 없었을까

영화, 극한직업(Extreme Job, 2018) 감상평

  2월 6일 '극한직업'의 관객수가 천만을 넘었다. 일단 운이 좋다고 하겠다. 이렇다 할 경쟁 작품이 없었다. 하지만 영화 자체로도 만듦새가 좋다. 코미디 영화로서 코미디에 충실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적절하며, 쓸데없는 신파나 감동 코드 없이 일관되게 '웃기는 것에 집중'한 연출도 좋다.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영화. 관객들은 이런 영화를 원했다. 필자도 이런 한국 영화를 기다려왔는데, 이렇게 기본에 충실한 영화가 너무 오랜만에 나왔다. 위의 두 가지가 빠르게 천만을 넘은 이유가 아닐까.


  이 영화의 장점은 웃기다는 것이고, 단점은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것. 그러나 그 부족한 현실성도 배우들의 리얼한 연기로 상당 부분 상쇄된다. 그러다 보니 별다른 단점 없이 준수한 영화가 나왔다. 그러니 영화의 장점만 몇 가지 언급하고 영화평을 맺으려 한다.


  일단 예고편을 상당히 잘 만들었다. 잠복근무를 위해 치킨집을 하는 형사들, 그런데 치킨집이 잘되니 곤란한 형사들이라니. 요즘 유행하는 쿡방 같기도 하고, EBS 프로그램 '극한직업'을 차용한 듯한 제목도 웃기다. 예고편만 봐도 재미있고 영화가 기대된다. 관객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영화의 중반을 지나가면, 예고편에 나온 장면들은 거의 없다.

  잘 만든 예고편은 이런 것이다. 영화의 일부분을 뽑아내서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하되,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이 "예고편이 전부인 영화" 소리를 하지 않게 하는 것. 즉, 예고편은 어느 정도의 '절제'가 필요한데, 그렇다고 너무 절제하다 보면 예고편 자체가 재미 없어지기 쉽다. 흥미와 절제. '극한직업'의 예고편은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두 번째는 류승룡의 연기다. 왜 하필 류승룡인가. 이쁜 척 모두 버리고 온몸을 던져 연기한 이하늬, 범죄도시에서 인정받은 연기력을 활짝 펼치는 진선규, 어느 영화에서든 적당히 오버스러운 연기를 펼치는 오정세, 표독스러운 악역이 참 잘 어울리는 신하균, 이제는 그냥 말만 해도 웃기는 이동휘, 신경질 내는 감초 역할이 적절했던 김의성까지 주/조연 모두 좋은 연기였다.

  그런데도 왜 류승룡인가. 이 연기자들 속에서도 오직 류승룡만이 페이소스(Pathos)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어로 파토스라고도 발음하는 이것은, 연민/동정/슬픔을 관객에게 불러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코미디에 충실한 영화의 특성상 류승룡의 페이소스는 아주 살짝살짝만 보였는데, 가장의 슬픔, 마약반 팀장으로서의 책임감, 승진하지 못하는 공무원의 설움 등이 그의 눈가에 설핏 비췄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했다.

  류승룡이 누구인가. 공포(킹덤, 2019), 판타지(손님, 2015), 스릴러(7년의 밤, 2018), 사극(명랑, 도리화가, 광해), 코미디 멜로(내 아내의 모든 것), 신파 코미디(7번 방의 선물), 액션(최종병기 활, 표적)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주/조연으로서 자기 역할을 발휘하는 사람이 아니던가. 영화가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할 때, 그의 작은 제스처와 눈빛 몇 가지 만으로도 페이소스가 느껴지고, 영화가 마냥 가볍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류승룡이 중심을 잡은 가운데, 끊임없는 코미디가 빛을 발한다. 이병헌 감독은 큰 욕심 없이, 무거운 메시지 없이 크고 작은 웃음들을 배치해둔 뒤,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앞으로 밀고 간다. 스물(2014), 위대한 소원(2016), 레슬러(2017)를 거치며 꾸준히 코미디 영화를 찍어왔던 감독의 뚝심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는 것. 단순해 보이지만 거대 자본과 수많은 스태프가 얽힌 영화 산업에서 감독이 뚝심을 지키기란 진실로 어렵다. 영화 "극한직업"처럼, 앞으로도 "본분"에 충실한 한국 영화를 만나고 싶다. 흥행이야 밤이 낮을 따르듯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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