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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Mar 10. 2019

초심을 지키는 초능력

영화, 캡틴 마블(Captain Marvel, 2019) 감상평

  마블 영화 팬이라면 보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다. 이제 마블 영화의 세계(Marvel Cinematic Universe, MCU)는 그 정도 수준이 되었다. 개별 영화의 호불호를 떠나서 마블 영화의 팬이라면 안 보고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달까. 개봉 전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극장으로 가게 만든 영화, "캡틴 마블(Captain Marvel, 2019)"이다.


영화의 초반, 크리 종족의 전사가 된 캡틴 마블.


  별다른 기대 없이 "어벤저스:엔드게임(2019)"을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보았는데, 예상외로 괜찮다. 히어로가 단독으로 나온 마블 영화 중에서 '아이언맨(2008)'을 가장 좋아하는데, 그 정도에는 못 미치지만 DC의 아쿠아맨(2018)이나 원더우먼(2017) 보다는 재미있다. 거대 자본을 투입하여 볼거리를 살리면서도 스토리 구성도 준수하고, 사회적 메시지도 있으며 캐릭터도 살아있는 균형감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마블 영화의 장점인데, 그 장점이 그대로 살아있다. 주인공 자체의 매력은 아이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보다는 덜해서 재관람하고 싶을 정도는 아니지만, 여성 관객에게는 좀 다를 수 있겠다.


  영화는 미국 만화식 히어로물의 보편적인 공식을 따랐다. 영웅(Hero)이란 무엇인가. 초능력이 있으면 히어로인가? 빌런(villian, 악당)도 초능력은 있다. 힘없는 사람들을 지키는 힘 있는 사람. 그걸 영웅이라 한다. 한마디로 약육강식(弱肉强食)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사람들이다.

  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까. 정의(Justice)라는 인류 문명의 보편적 법칙에 따라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각자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는 법칙이다(롤스의 정의론 참조). 결국 히어로물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인간 문명의 분투기(奮鬪記) 되겠다. 미국 만화에서 '히어로'는 곧 인간 문명의 상징이다. 인간 문명의 고된 여정을 초능력자 한 명의 분투기로 치환하면, 그게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거든.


  마블 영화 세계(MCU)에서 캡틴(Captain)은 특별한 칭호다. 오직 캡틴 아메리카만이 '캡틴'이라는 칭호를 받았고, 어벤저스의 리더로서 '캡틴'이라고 부르면 그건 곧 캡틴 아메리카를 의미했다. 실제로도 마블 만화를 좋아하는 미국 사람들에게 캡틴 아메리카는 미국의 정신과 신념을 상징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마블에게 '캡틴'이 붙은 이유를 알 수 있다. 캡틴 아메리카(스티브 로저스)도 처음에는 선천적으로 신체가 부실한 약골이었다. 그에게서 봐줄 건 오직 '선한 의지(Good Will)' 뿐이었다.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눈여겨본 어스킨 박사가 그에게 슈퍼 솔저 혈청을 주입하고, 그렇게 스티브 로저스는 캡틴 아메리카가 된다. 신체적 능력이 매우 뛰어난 초능력자가 되었음에도, 스티브 로저스는 초심을 잃지 않았다. 그렇기에 '캡틴'이 될 자격이 있었다.

  캡틴 마블에서 캡틴 마블(브리 라슨 분)은 어떤가. 조종사를 꿈꾸었던 그녀는 근력, 순발력 등 군인이 되기 위한 신체적 능력이 남자들보다 못하다는 이유로 조롱받고 배척받았던 과거를 갖고 있다. 그녀가 좋아하는 야구, 카 레이싱 등의 스포츠도 마찬가지. 여자는 노력해도 안된다는 사회적 편견도 심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조종사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항상 주변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고 약자를 지키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던 그녀가 조종기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하지만, (좀 뜬금없이) 외계인의 도움으로 초능력을 얻는다.


  캡틴 마블은 캡틴 아메리카와 마찬가지로 후천적으로 초능력을 얻었지만, 인격은 그대로다. 어쩌면 그게 진짜 초능력이 아닌가 싶다. (신체적, 경제적으로)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착하기는 쉽다. 하지만 권세가 생기면 누구든 그에 맞춰 거만해지기 마련이다. 환경이 변하면 사람도 변한다. 드라마 송곳에서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라고 말했다. 가난할 때는 부자 증세가 당연하다가도, 막상 부자가 되면 세금을 줄이는 정부를 원한다. 그게 당연한 사람의 심리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 약육강식의 당연한 법칙을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처지가 바뀌면서) 그 생각이 바뀌는 것이 당연한데도 초심을 유지하는 것. 그러면서 그 초심대로 행동하는 것. 게다가 그 행동에 자기 희생이 따르는데도 헌신하는 것. 이 모든것은 말 그대로 초인超人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육사의 시 '광야'에 나오는 '백마타고 오는 초인'같은 사람. 그런 초인을 미국 만화에서는 Hero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캡틴 마블은 히어로 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것이 뻔하여 새로울 것 없지만, 뻔하게도 감동을 주는 부분이 있다. 비유하자면, 캡틴 마블은 '대기업 신입사원' 같은 존재다. 마블이라는 '대기업'에 들어갔으니 일단 개봉하면 봐주는 관객들이 많다. 하지만 이미 선배들이 닦아놓은 시스템(마블 영화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심지어 기존에 개봉한 10여 편의 마블 영화보다 '이전 시대'를 다룬다. 과거에 이미 한 설정들을 지금에 와서 바꿀 수는 없다. 이처럼 여러 가지 제약을 딛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니, 참신하기 어렵다. 그 제약을 딛고 만든 것 치고는 봐줄 만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캡틴 마블을 연기한 브리 라슨의 매력이다. 페미니즘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이 영화 자체로만 보아도 그녀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섹시하며, 멋지고, 강력하다. 아마 사각턱이라 동아시아 관객들에게는 어필하는 부분이 적지 않나 싶은데, 영화에서 직접 보는 실물이 더 낫더라. 앞으로 개봉할 '어벤저스:엔드게임'에서도 그녀의 매력이 충분히 발산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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