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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Mar 17. 2019

코드 쿤스트, "향수(feat 넉살)" 감상평

2017년 가장 많이 들었던 이 노래에 대해서

  '멜론에서 5년간 가장 많이 들은 노래' 시리즈를 쓰다 보니 이 글을 쓰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들은 횟수로만 따지만 충분히 많이 들은 순위 TOP 15위 안에 들 것이나, 실수로 이 노래를 삭제하는 바람에 멜론 AI가 인식하지 못한 비운의 노래, 코드 쿤스트가 만들고 넉살이 피처링한 '향수'다. 이 노래 전에는 넉살과 코드 쿤스트가 누군지도 몰랐다. 처음에는 비트와 랩이 너무 좋아서 듣기 시작했는데 듣다 보니 가사가 감정이입이 무척 잘 되어 계속 들었다. 이 노래를 처음 들은 17년 상반기,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가사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넉살의 자전적 이야기로, 무명 래퍼에서 유명 래퍼가 되는 과정과 원하던 인기를 얻은 뒤의 자기 성찰을 담았다. (가사는 글씨체 바꿈)


  노래는 순댓국에 소주 먹는 것도 금전적으로 부담스러웠던 무명 시절부터 시작한다. 무명 래퍼 넉살은 심지어 랩을 그만두고 '빵집을 차릴 생각을 진심으로' 고민하기도 했다. 그는 실의에 빠졌다. 자기 스스로가 한심했을 것이다. 집에 틀여 박혀 씻지도 않는다('내 몸에선 그때쯤 그때쯤 숨도 못 쉬게 냄새가 났어 안 씻은 지 열흘쯤'). 가족들은, 특히 부모님은 대학도 안 가고 30이 다 되도록 랩이라는 것에 빠진 백수를 얼마나 구박했을까('난 나잇값 못하고 할 일을 안 해. 좀 시끄러우니까 내 알아서 할 게. 난 취해서 웃고 엄마는 눈물을 틀고'). 자신을 몰라봐주는 세상에 화도 났겠지. 그는 미치도록 성공을 원했을 것이다('다 됐고 난 필요했어. 날 비웃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향수 내 몸에서').

  여기서 말하는 향수香水는 '숨도 못 쉬게 냄새'가 나는 자신을 꾸며줄, 자신의 냄새를 숨겨줄 향기로운 향수 perfume를 말한다. 영화 '향수'에서 나온 그런 향수와도 같다. 한번 뿌리면 사람들이 정신 못 차리고 뿌린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그런 향수 말이다('제일가는 향수 내 몸에서. 그루누이 단두대 앞에서 -영화 향수의 주인공 이름이 그루누이다-)' 향수는 못난 자신을 꾸며줄 겉모습이자, 사회적 성공이고, 명성과 명예이기도 하다.


  간주 뒤, 2절에 와서 비트는 갑자기 바뀐다. 시간이 훌쩍 지난 것이다. 그는 피나는 노력 끝에 인기와 실력을 갖춘 래퍼가 되었다. 그는 '꿈을 꽤 비싼 값에 샀어'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비싼 값'은 꿈을 이루기 위해 지불한 대가, 그가 랩에 바친 세월과 고생과 가족들이 준 상처를 말한다. 정규 1집 발매 이후 넉살의 삶은 변했다. 유명세를 얻고, 상도 타고(한국 힙합 어워즈 2017 올해의 앨범) 공연도 많은 힙합 뮤지션이 된 것이다('삶의 변화를 봤지. 이다음은 과연 어딜까.', '이젠 내게서 좋은 향이 나는지 나를 맛보려고 해.') 공연장에서 자신을 찍는 수없이 많은 플래시와 스마트폰을 그는 이렇게 묘사한다. '주변엔 화사한 불빛 이 순간을 오려두려고 해.' 아마 무대에서 손을 뻗으면 바로 앞에 있는 관객들이 어떻게든 넉살을 잡아보려고 손을 뻗었을 것이다('내 맥박이 뛸 때마다 사람들이 향에 취해. 내 혈관 그 안쪽에서부터 냄새가 진해. 자 나눠 줄게 날 안아봐.') 이제 그는 자신감이 넘친다. 과거에 순댓국도 주머니 사정 생각하면서 먹던 넉살이 아니다. 과거에는 자기 몸에서 악취가 났던거 같은데, 이제는 좋은 향기가 나는지 사람들이 다가온다. 공연만 나가면 관객들이 스마트폰으로 자신을 찍고, 손만 뻗으면 팬들이 어떻게든 자신과 닿으려고 달려든다.   


  노래의 말미, 이제 넉살은 헷갈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날 왜 이렇게 좋아하지? 내 향이 그렇게나 좋은가? 그럼 이 향은 나의 것인가? 이 향, 이 인기는 얼마나 오래갈 것인가? ('가끔은 궁금해 우리가 원래 향기로웠는지. 아니면 저 벌떼가 떠나면 다시 외로워질지.')

  이 노래에서 나오는 향수의 두 번째 의미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鄕愁)이다. 성공한 래퍼 넉살은 고생하던 과거를 회상한다. 지금의 내가 좋지만, 문득 그때의 나를 그리워한다. 힘든 시절에도 나름의 행복이 있지 않나. 가끔은 궁금하기도 하다. 내가 원래 향기로웠던 녀석이었나, 과거의 나도 사실은 향기가 있는 사람이었나?


 넉살과 코드 쿤스트를 처음 알게 된, 딩고 뮤직의 '향수' 유튜브 라이브 영상. 심지어 음원보다 라이브가 더 좋다.

  필자도 로스쿨 때는 평범하고 돈 없는 학생이었는데, 변호사가 되니 여러 가지로 형편이 바뀌었다. 그럴 때 드는 의문이 있었다. 내가 변호사인 건 맞는데, 변호사는 나의 것인가? 주변 사람들이 나를 좋게 보는 이유는, 내가 변호사이기 때문인가? 변호사가 아닌 나는 아무것도 아닌가? 사람들이 날 좋아하는 것은 내가 변호사라는 것 때문이 아니라 다른 것에 있지 않을까, 뭐 그런 것들.

  

  이 노래가 좋은 이유는 -넉살의 뚜렷한 발음, 파워풀한 랩 때문도 있지만- 이처럼 상징적인 단어를 넣어, 자기의 삶을 짧은 노래 안에 함축적으로 넣은 노랫말 때문이다. 무명의 래퍼에서 성공한 래퍼가 된 나 자신(이 노래 이후 넉살은 쇼미더미니6 준우승으로 더 유명해진다). 유명해지길 그토록 바랬지만 많은 대가를 치른 나 자신. 대가를 치르기 전, 무명의 래퍼를 그리워하는 나 자신. 그토록 원했던 인기가 대체 무슨 의미인가 고민하는 나 자신. 이 모두를 극적이고 시적으로 서술한 그의 가사가 많은 것을 성찰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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