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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Jun 11. 2019

피자 한 조각

2019년 6월 11일

  어머니는 26년째 보험설계사를 하고 있다. 내가 초등학교에 가기 전부터 지금까지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보험설계사는 철저히 실적 중심의 영업직이다.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로 인정받지도 못하며, 가입시키는 보험만큼만 월급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어떤 설계사가 그 달 영업이 잘되면 사무실의 다른 설계사들에게 '한턱 쏘는' 관행이 있는 듯하다. 아마도 피자를 주로 사는지,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퇴근길에 피자를 한두 개 싸오셨다. 어머니는 실제로 피자를 싫어하시고, 나는 매우 좋아한다. 한 명 당 한 조각씩 먹는가 본데, 아들이 좋아한다는 핑계로 한 조각 더 얻어오실 때도 있었다. 당시 중학생이던 나에게, 그렇게 피자 두 조각이면 충분히 즐거운 아침식사가 되었다. 냉동고에 얼려 두었다가 간식처럼 주기도 하셨다. 그때마다 나는 잘 먹었다.


  결혼한 뒤에는 본가(本家)에 갈 일이 별로 없었다. 2주 전인가, 회사 일 때문에 혼자서 본가에서 자고 출근할 일이 있었다. 어머니는 신나서 저녁식사로 이것저것 해주셨다. 나는 잘 먹었다. 어머니는 피자 한 조각 사무실에서 가져온 게 있다고, 줄까? 물었다. 나는 손사래 치며 배부르다고 사양했다. 이제 어린아이도 아닌데, 이제 돈도 버는 직장인인데, 사무실에서 얻어온 피자 몇 조각 먹는 게 내키지 않았다. 실제로 배가 차기도 했다. 거절당한 어머니의 표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오늘 저녁에 혼자 운동을 다녀오니, 아내는 피곤하다고 먼저 자고 있었다. 식탁에는 아내가 회사에서 가져온 샌드위치 한 조각이 놓여 있었다. 샌드위치 포장을 보아하니, 원래 두 조각이었는데 한 조각만 남겨온 듯했다. 아내가 다니는 회사는 아침식사를 주는데, 가끔 양이 많으면 남겨서 집에 가져왔다. 그때마다 내가 잘 먹으니, 곧잘 가져왔다. 샌드위치도 그런 것이리라. 큰 마음은 아닐 테지만 고마웠다.


  이제 날이 덥다. 밤새 샌드위치를 밖에 두면 상하리라. 샌드위치 한 조각을 냉장고에 넣는데, 문득 어머니의 그 피자 한 조각이 생각이 났다. 이상하다. '아들 줘야지' 하며 비닐봉지에 피자를 주섬주섬 담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상하다. 나는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없다.


  2주가 지나서야, 그때 어머니가 권하는 피자를 먹을걸, 하고 밤늦게 냉장고 앞에서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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