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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Aug 11. 2019

류준열이 다했다.

영화 '봉오동 전투(戰鬪 2019)' 감상평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국뽕'끼를 덜어내지 못했다. 과거 '명량'이 잘 나가다가 마지막 즈음 (노 젓는) 격군들의 바로 그 대사 '우리가 이렇게 고생한걸 후손들은 알까~?' 때문에 엄청난 욕을 먹은 것처럼, '봉오동 전투'도 쓸데없이 자주 비분강개하며 긴 대사를 늘어놓는 황해철(유해진 분) 때문에 몰입을 방해한다.


 이해는 한다. 천만 영화가 되려면 40~50대 중년 관객들이 극장에 찾아와야 하고, 그러려면 민족주의(국뽕)와 신파가 필수다. 명량, 암살, 광해, 7번 방의 선물, 해운대, 국제시장이 그랬다. 흥행과 투자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장치였으리라. (하지만 ‘암살’은 국뽕을 자제하고도 흥행에 성공했다)


 과거 영화들과 비교할 때 국뽕이 과하지는 않으나, 모두 덜어내고 만들었어도 영화 자체로 민족주의(국뽕)를 내세우는 이야기인데 굳이 한민족을 강조하는 장면(전투가 끝난 현장에 피로 여러 번 대한독립만세를 쓰는 장면, 전국 각지의 사투리로 감자를 말하는 장면 등)들을 넣어야 했나 싶다. 영화 전체를 이끌어간 유해진은 여러 번 '대한독립만세'를 쓰거나 외치지만 그중 어느 한 장면에서도 가슴이 뜨거워진 적 없었다. 다만 유해진의 연기는 적절하게 뜨겁고 현실적이었다. 좋은 연기가 관객에게 와 닿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감독의 연출 부족 탓이다.



 이분법적 연출도 고리타분하다. 영화에서 나오는 일본군은 잔인하게 조선 양민들을 학살한다. 자른 목을 들고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임산부를 잔인하게 죽인 일 등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시청각 자료까지 남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다시 한 번, 스크린 한 가득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일제의 만행을 모르고 극장을 찾는 관객은 거의 없을 것이며, '봉오동 전투'는 국사교육을 위한 시청각 자료가 아니다. 영화는 영화 그 자체로 완성도가 있어야 한다.


 필요 이상으로 일본군의 만행과 악마성을 보여주는 나머지, 상대방인 독립군들의 개연성도 떨어진다. 독립군이 왜 싸우는지, 왜 그렇게 처절하게 후퇴해가면서까지 싸웠는지, 질게 뻔한 싸움에서 왜 물러서지 않았는지 등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어야 했다. 그런데 감독은 유해진의 대사 몇 번으로 이 모든 것을 퉁치려고 한다. 악당이 그럴싸해야 영웅도 그럴싸하다.


항일대도를 휘두르는 황해철(유해진 분)


 사실 '봉오동 전투'에 관한 객관적 자료가 매우 부족하다. 역사학자들은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의 사상자는 10~20명 정도에 불과했으리라 추정한다. 분명 봉오동에서 독립군이 승리한 것은 맞는데, 일본군은 축소하려 했고, 독립군은 확대하려 했다. 모든 것을 감안해도 영화에서처럼 큰 규모의 승리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적 상상력으로 허용할 수 있는 부분 이리라.


 관객들은 알고 있다. 조선은 일제에 국권을 피탈당했고, 조선군은 일본군에 수없이 패배했다. 독립군의 작은 두 승리(봉오동, 청산리)도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파멸(자유시 참변)로 이어진다. 조선은 무력으로 일본제국을 결코 이기지 못했다. 그렇기에 역사교과서도 '저항'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일본의 만행에 대한 저항. 강력한 총칼에 맞서 패배했지만 정신만은 지지 않았음을 나타내려는 저항. 과거는 처참했지만 미래에는 이런 일이 절대 반복되지 않게 하리라는 저항 말이다.


 물론 이 사실을 감독도 알았다. 그렇기에 영화 '봉오동 전투'는 그저 봉오동 전투의 승리 만을 다룬 영화가 되어서는 안 됐다. 그래서 굳이 유해진의 입을 빌려 우리가 왜 싸우는지, 일제의 만행이 어떠했는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그 방법이 투박하고 이야기 흐름에 녹아들지 않아 내내 거슬린다. 시간을 이런 데에 할애하니 정작 봉오동으로 일본군을 유인하여 후퇴하는 이유나 과정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마적 출신 독립군 마병석을 연기한 조우진

 '봉오동 전투'에서 칭찬할 부분은 두 가지. 첫째는 전투 장면 자체의 완성도다. 드론을 이용한 부감 장면으로 병력의 이동상황 및 추격의 압박감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 능선과 계곡을 아우르는 추격전의 속도감도 좋았다. '체력적으로 가장 힘든 영화였다'는 유해진, 류준열, 조우진 배우의 말처럼 배우들은 정말 쉴 새 없이 달리고, 많이 숨이 차 보였다.


 두 번째는 역시 배우의 연기. 마적 출신 독립군인 마병구를 연기한 조우진은 늘 그랬듯 좋은 연기를 펼쳤다. 분량은 적었지만 영화의 완급을 조절하고 유해진과 류준열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는 어려운 역할을 맡았는데, 자기 몫을 충분히 해주었다. 특히 영화 중간, 일본 포로에게 '넌 자유다. 집에 가서 학교나 다니'라고 일본어로 외치는 장면은 카리스마 넘쳤다.


실제 독립군 사진 아님

 류준열. 그는 한마디로 독립군 자체였다. 영화의 초중반, 일본군이 마을 전체의 조선인들 학살한 뒤, 하나 남은 조선인 소녀마저 죽이려 한다. 이 소녀를 독립군이 구출하는 장면에서 류준열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 장면에서 그는 눈물이 날 만큼 믿음직한 독립군 그 자체였다. 지나치게 동양적이어서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튀어나온 듯한 얼굴과 호리호리한 몸은 몇 년 이상 만주와 간도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독립군이라는 긍지를 갖고 절도를 잃지 않은 청년처럼 보였다. 암울했던 당시의 시국을 고려할 때, 그의 딱딱한 표정, 다소 침체되고 낮은 톤의 대사도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카메라가 류준열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을 때, 그의 눈코입은 독립군을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필자는 독립군을 영상으로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류준열은 '진실로' 독립군 같다. 이는 감독의 연출에 맞추어 그가 독립군을 상상하며 연기했는데, 그 연기가 관객인 필자를 충분히 만족시켰다는 의미이다. 류준열의 상상력과 연기력이 그만큼 관객을 감동시켰다는 것이다. 그의 연기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낸다. 그는 영화 내용과 비슷하게,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이 영화를 '국뽕 프로파간다'에서 '리얼리즘 다큐'로 전환하며 마침내 '볼만 한 영화'의 수준으로 살려냈다. 류준열이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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