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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피차 Dec 24. 2020

2020년에 보는 <원더우먼 1984>

왜 80년대일까?

미뤄지고 미뤄졌던 <원더우먼1984>가 드디어 개봉했습니다! 전작과 동일한 감독(페티 젠킨스), 주인공(갤 가돗, 크리스 파인)들과 더불어 새로운 빌런 '치타(크리스틴 위그)'와 '맥스 로드(페드로 파스칼)'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 1984년일까요? 구체적으로 언급되진 않지만 요즘 유행하는 '뉴트로' 이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몇 가지 키워드와 함께 시대배경을 살펴보고 <원더우먼1984>의 주제를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크고 작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84 #조지오웰

티비를 보고 있는 원더 우먼 다이애나. 왼쪽 화면은 레이건 대통령으로 추청.

우선은 1984와 동명(?)인 소설, 조지 오웰의 <1984>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미디어를 통한 정부의 폭력적인 감시를 비판, 예견하는 내용입니다. 1948년에 쓰여져(84년은 48년을 거꾸로 쓴 것이라고 합니다) 1949년에 출판된 책인데, 지금 2020년에 1984년을 그리는 데에도 사용될 정도의 대단한 예지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거대정부에 대한 비판이 나오지는 않지만 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시대상을 그리고 있고 그 주인공이 바로 TV맨 '맥스 로드'입니다. 


#MTV #MTV세대

화려한 쇼핑몰 가운데 있는 옛날사람 스티브.

석유 회사 '블랙 골드(검은 금 즉 석유)'의 대표인 맥스 로드는 TV에서 크게 웃으며 원하는 것을 가지라는 광고로 유명합니다. 외모도 그렇고 미디어를 잘 사용한 사업가이자 정치가인 트럼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해 많은 곳에서 이미 언급되고 있습니다. 당시 문화적 배경을 잘 설명하는 주제로는 MTV를 잡아보았습니다. 미국에서는 컬러 TV 송출이 된지 꽤 오래됐지만 본격적으로 영상시대를 연 것은 MTV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1년 MTV 출현 이후로 음악을 영상(뮤직비디오)으로 즐기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영상이 더 중요한 시대가 왔고 그에 따라 이 주류가 되었습니다. 80년대 주요 팝스타로 마돈나마이클 잭슨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과장된 실루엣/ 색상의 의상, 길거리에서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청년들 등 당시의 화려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패션과 문화, 분위기를 잘 그려냈습니다. 이러한 문화를 즐기면서 자란 세대를 MTV 세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지금 8090년대 유행이 다시 돌고 있기 때문에 보는 재미가 큽니다.


#레이건 #석유

블랙 골드 대표 맥스(맥스웰) 로드

80년대는 미국 경제도 호황이었는데 이는 레이건 대통령의 규제완화 정책에 의한 일시적인 우연이었습니다. 바로 1984년에 레이건이 재선됐는데 영화의 대통령도 생김새가 닮았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적책은 '레이거노믹스'라고도 하는데 세금을 줄이고 기업규제를 완화하여 경제를 호황으로 올려놓았습니다. 그러나 정부지출을 줄여 저소득층에게 큰 타격을 주었고 국방비를 과도하게 지출해 정부부채가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80년대 후반 우리나라는 3저호황을 겪고 있었는데 바로 저달러, 저유가, 저금리입니다. 미국은 석유생산량의 지분도 커서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죠. 

맥스는 '석유왕'이 되고 싶어 하는데 이 설정은 이집트와 연관시키려는 것도 있겠지만 록펠러를 떠오르게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19세기 후반의 유명 정유사업가 록펠러는 자선사업가로도 유명하지만 노동착취로도 유명합니다. 맥스는 남의 소원을 들어주면서 자신의 소원도 이루고 이러한 능력을 가지게 되면서 건강을 잃는데 아무도 희생시키지 않는 부/권력의 축적은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이 부분이 바로 원더우먼 1984의 주제인 것이죠. 

요즘은 원자력의 비중이 높아졌고 전기, 수소 등의 대체제도 많이 연구되고 있지만 그 이전까지 거의 유일한 자원은 석유였고 (지금도 중요한 자원이긴 합니다) 특히 70년대 석유파동 이후로 자원경쟁이 심각했습니다.석유의 주요 생산국은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석유는 아무래도 지역으로 치면 서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많이 생산되고 특히 주요 생산국에 미국과 러시아가 포함되다 보니 냉전시대에는 물론 지금도 자원경쟁 때문에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분쟁이 잦습니다. 


#냉전

80년대 미국은 국내경제와 문화 면에서 밝은 분위기이지만 한편 소련과의 경쟁에 많은 돈과 인력을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냉전 즉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전쟁이 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1991년 소련이 해체된 즈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주로 군사비/우주 진출 경쟁, 첩보전, 핵위기 등을 말하지만 베트남전쟁 등의 크고 작은 무력행사가 적지 않았습니다. 1984년과 가장 가까운 사건으로는 소련이 우리나라 비행기를 격추한 'KAL기피격사건'이 있었고 서구권 국가들은 소련을 크게 비난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상도 못할 사건인데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영화에서는 맥스가 소원을 이뤄줄 방송을 전세계에 송출하기 위해 인공위성 전파를 사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금 인공위성을 생각하면 보통 방송이나 GPS 등을 떠올리지만 처음에는 우주 진출과 군사목적 용도가 컸기 때문에 러시아가 제일 처음으로 띄운 후에 곧바로 미국이 띄웠습니다. 


정직하게 성취하기

훌륭한 오프닝 시퀀스를 뽑아내고 그 뒤로 언급도 안되어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이 부분만 봐도 영화값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체 주제도 잘 담아내고 있구요. 꼬마 다이애나는 어른들과 함께 장애물 달리기(?) 대회에 참가합니다. 중간에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순서도 뒤쳐지고 체크포인트를 표시하는 활도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기지를 발휘해서 1등으로 들어오려는 찰나에 이모인 안티오페 장군에 의해 저지됩니다. 사랑스러운 꼬마 다이애나는 울면서 불합리하다고 떼를 쓰지만 안티오페는 정해진 규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인정받을 수 없다고 가르쳐줍니다.  

소원을 들어주는 돌은 다이애나에게 소중한 연인 스티브를, 바바라에게는 힘과 인기를, 맥스에게는 부를 가져다 주었지만 힘과 따스함, 아들과의 관계를 잃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원래 바랬던 한 가지만 얻는다고 욕심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원하게 되고 이것은 스스로를 망칠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과 커뮤니티를 망치게 됩니다. 물론 세상 돌아가는 이치 자체가 불공평한 구석이 많기는 하지만 대가를 치루지 않고 얻는 것은 언젠가 꼬이기 마련입니다. 

꽁으로 얻은 돈은 꽁으로(혹은 그 자리에서) 쓰라는 말도 있습니다. 바닥에서 줍거나 한 돈은 두었다가 나중에 자신에게 쓰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밥을 사거나 하는 식으로 쓰라는 뜻입니다. 자기가 번 돈이 아니면 쓸데없는 일로 쓰게 될테니 차라리 좋은 용도로 쓰라는 의미입니다. 약간 미신적인 경험이 들어가있기는 하지만 그 돈을 잃어버려 서운한 사람이 있을테니 그 슬픔을 기쁨으로 베풀고 그런 일이 게속 되면 잃어버린 사람도 언젠가는 꽁으로 얻어먹는 경우가 생겨 보상받게 되는 것을 생각한 것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남의 것을 공짜로 얻지 말라는 교훈과 함께. 

맥스는 허세로 회사를 불리다가 욕심이 지나치게 된 것이지만 바바라는 자신의 몸과 정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 욕심의 시작이었습니다. 바바라가 왜 욕심을 갖게 되고 다이애나처럼 되고 싶어했는지 연출이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최종 빌런 맥스를 저지하면서 원더우먼이 말했던 긴 대사와 평화롭게 마무리한 결론도 마음에 들구요.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지 말자는 내용입니다. 비록 세상은 난장판이 되었지만요. 뻔한 영웅물이라고 하지만 가끔 순수하고 일차원적인 메시지가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바바라의 캐릭터 빌드업, 의상과 건물을 포함한 미술 부분, 70년대 원더우먼 티비시리즈를 오마주한 긴 비행씬, 오프닝과 결말 서사 등 영화 안의 내용에 대해서는 새로운 글로 더 자세하게 써 보려고 합니다. 그 동안 다이애나의 의상과 집이 나온 스틸컷이 새로 공개되면 좋겠군요. 영화를 보기 전후로 사운드트랙을 감상하면 감동이 두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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