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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소덕소덕" 17화 - 스칼렛 요한슨 특집: 블랙 위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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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는 스칼렛 요한슨 특집인데요, 저는 최신작 <블랙 위도우>를 골라봤습니다. 사실 스칼렛 특집을 선정한 이유도 블랙 위도우를 보고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액션도 훌륭하지만 배우들의 케미와 연기가 일품이어서 이야기를 안할 수 없겠더라구요.
스칼렛은 20대 초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3)>에서부터 연기력을 검증받았고 그 이후의 필모를 봤을 때 로맨스 장르에 특기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또 특이한 점은 SF장르 영화에도 많이 출연하였습니다. 특히 2014년 <그녀>, <언더 더 스킨>, <루시>, 2017년 <공각기동대> 등의 작품을 통해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고 액션 연기도 좋았기 때문에 2012년부터 시작된 '어벤져스' 시리즈(+아이언맨2(2010))와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안에서의 분량이나 중요도가 올라갈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그렇지 못해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스칼렛의 인기는 유일한 여성 히어로 때문이라던가 배우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인기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말하고 싶네요.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서야 솔로 무비가 확정되었는데 이마저도 코로나 때문에 1년이 미뤄져 어벤져스 이후 거의 10년 만에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기쁜 점과 슬픈 점이 있는데요, 기쁜 점은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이고, 슬픈 점은 스칼렛이 주인공인 시리즈는 여기서 끝이라는 점입니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 즈음이라 나타샤는 실드에 쫓기고 있는 신세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렸을 때 헤어졌던 여동생의 흔적을 발견하고 만나게 되는데요, 동생 역시 레드룸에서 훈련받은 특수요원입니다. 동생 옐레나(플로렌스 퓨)는 레드룸의 수장 드레이코프의 신체적, 정신적 조종을 받다가 풀려나 역시 도망치는 신세인데, 동료 위도우들도 풀어주기 위해 언니를 찾아간 것입니다. 드레이코프는 가난하고 기댈 곳 없는 어린 여자아이들을 데려다가 훈련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부상으로 임무수행이 불가능해 질 경우 신체 조종으로 자살하게 만들었습니다. 우선 레드룸을 찾기 위해 가짜 아빠인 '레드 가디언'을 찾아갔는데 웬걸, 죽은 줄 았았던 가짜 엄마가 살아있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가족은 찜찜하게 재회했는데 곧 레드룸으로 끌려갑니다.
영화같은 게임은 있어도 게임같은 영화가 없어서 게임 영상화가 실패하는 거라는 생각을 하는데요, 블랙 위도우는 그걸 해냅니다... 장르를 따지자면 잠입 액션인데요, 같은 장르 게임으로는 유비소프트의 <스플린터 셀> 시리즈와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가 유명하고 저도 좋아합니다. 잠입 액션 게임의 특징을 설명하자면 우선 처음에 잠입 지점이나 암살 대상이 목표로 주어지겠죠? 그 다음 요리조리 피해서 임무를 완성하는데 그냥 액션은 돌파하는 재미라면 잠입게임은 숨는 재미로 하는 장르인거죠. 그냥 액션게임은 액션영화로 바로 치환이 되는데 잠입이나 RPG같은 경우 숨거나 여기저기 살펴보는 재미로 하는 건데 영화는 바로 짜잔짜잔 해결이 되니까 재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블랙 위도우는 숨는 과정, 속고 속이는 과정 등을 적당한 타이밍으로 보여줘서 몰입감이 대단합니다. 그리고 게임에서 특화된 부분이 바로 1인칭, 3인칭, 전지적 시점 등 다양한 시점 변화로 인한 몰입감인데 이걸 블랙 위도우가 해냅니다... 너무 타이트하게 잡으면 멀미나고 너무 멀리 잡으면 몰입이 안되는데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촬영해서 최적의 간접경험감을 선사합니다. 그리고 설산 한가운데 있는 감옥이나 하늘에 떠있는 레드룸 장소 자체도 잘 설계되었는데 한바퀴 돌면서 비춰주는 그 순간 스케일에 한 번 압도되고 카메라 워킹에 또 한 번 압도됩니다. 액션 자체도 총기나 폭탄을 많이 안쓰고 몸을 직접 쓰는 것이 제일 많고 위에서 떨어지거나 비행체에서 튕겨나가는 장면도 실감나게 연출해서 특히 전반부는 근래 최고의 액션씬으로 손꼽히는 <007: 스카이폴> 오프닝 시퀀스를 보는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감독, 무술감독, 스턴트 배우의 공도 크지만 스칼렛 본인의 이해력과 소화력이 크기 때문에 잘 연출된 것 같습니다.
이 영화 자체의 단점이라기 보다는 (현실적인 배경을 가지고 헐리우드가 만드는 대부분의) 잠입물의 단점이긴 하지만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정치입니다. 레드룸은 소련의 여성 스파이를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요, 영화 안에서도 러시아어를 꽤 많이 쓰는 등 지역색으로 드러내기 위해 신경 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굳이 이랬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여러 형태의 스파이물에서 정작 현재 가장 큰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은 건들지 못하면서 북한, 무슬림 계열의 중앙아시아와 북아프리카 국가, 군사독재가 있거나 있었던 동남아시아나 남아메리카 국가들을 구하기 위해 미국인이 침투하는 스토리를 주로 채택하고 있는데 너무 속보이지 않나요? 이런 식으로 자국이 타자화당하면서 등장한다면 어느 누구도 유쾌하지 않을 거에요. 무기판매상으로 성장한 아이언맨의 스타크 인더스트리와 군국주의의 아이콘 캡틴 아메리카에 대한 고민없이 공산주의를 비아냥거리는 것도 참 우습습니다. 굳이 소련스파이를 여성으로 채택하여 어벤저스에 포함시킨 것도 뭐 대단한 이유가 아니라 성적 어필을 위한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캐릭터가 현 시점에 와서는 사상적 억압이 한 개개인의 신체까지 억압한다는 정치적 메시지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메시지까지 함유하게 됩니다. 물론 페미니즘도 일부분은 정치에 포함되긴 하지만요. 드레이코프는 고아에 가까운 아이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딸도 요원으로 훈련시키고 억압합니다. 드레이코프는 레드룸에서 장군이자 어른남성, 즉 아버지같은 두려운 존재로서 어린 여자아이들 위에 군림한 것이죠. 가부장제는 공산주의, 자본주의 할 것 없이 전체주의(에 가까운 제도들)을 유지하기 위해 쉽게 채택되는 사회제도이며 윤리나 종교 등의 이유로도 쉽게 유지되는 제도입니다. 이렇게 몇 겹으로 억압당하는 레드룸의 위도우(과부) 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이미 탈출한 나타샤와 옐레나는 지옥같은 그 곳을 다시 찾아갑니다.
블랙 위도우들을 선정하기 위해 꾸려진 프로젝트가 아마 가짜 엄마 멜리나와 가짜 아빠 알렉세이가 투입된 가짜 가정만들기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들이 나타샤와 옐레나에게 많이 미안해하는 장면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었어요. 그런데 버림받은 나타샤와 옐레나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동료 위도우를 구하는 데에 목숨을 겁니다. 갑자기 그리고 억지로 새로운 삶을 살아야 되는 위도우들이 앞으로 어떡하냐고 묻자 나타샤는 "이젠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하라고 대답합니다. 모든 것이 짜여져있던 19살을 벗어나 갑자기 20살에 내동댕이쳐짐을 당한 사람이라면 어떤 느낌일 지 감이 올 거에요. 준비되지 않은 자유는 쉽지 않죠. 하지만 그런 어려움들을 겪고 이겨낸 나타샤와 옐레나는 동료들에게 자유를 쥐어줍니다. 자기 목숨을 위협하면서까지요. 자유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믿음이나 미래에 대한 소망 같은 것들이 그들을 레드룸으로 이끌었겠죠. 초능력에 가까운 신체적 능력 뿐만 아니라 이러한 용기가 바로 "블랙 위도우"를 영웅으로 보이게 만드는 능력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