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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피차 Jan 05. 2022

23. 애거서 크리스티: 오리엔트 특급 살인(1934)

팟캐스트 "소덕소덕" 스크립트

뒤늦은 납량특집으로 '애거서 크리스티' 특집을 마련해 보았는데요, 그 중 저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골라보았습니다. 2017년에 나온 최근영화도 있으니 함께 즐겨도 좋겠습니다.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제목이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오리엔트 특급 살인(1934)>의 원제를 따르면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즉 '오리엔트 특급열차에서의 살인' 정도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특급 수준의 살인이 아니라요ㅋㅋㅋ 그렇다면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또 오리엔트(동쪽)는 지금 우리가 아는 동양,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 기준의 동쪽나라인 터키를 뜻합니다.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보통 파리에서 출발하여 주요 도시 몇 군데를 거쳐 2천km를 달려 이스탄불까지 가는 초호화 급행열차를 말하는데요, 1883년에 시작하여 1977년에 사실상 폐지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명칭을 유지하면서 일부 노선을 운행했는데 결국 2009년에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전국일주, 세계일주를 꿈꾸듯이 당시 상류층도 서유럽과 동유럽을 관통하는 호화열차여행을 꿈꿨습니다. 타이타닉호의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되겠죠? 저도 한창 서양사를 배우고 이 노선의 존재를 알았을 때 설레는 상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작가 소개

애거서 크리스티는 1890년 영국에서 태어난 '추리소설의 여왕'으로 일컬어지는 소설가입니다.  작가의 페르소나가 두 명이 있는데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는 '에르퀼 푸아로'라는 벨기에의 콧수염 신사가 나옵니다. 다른 한 명은 작가 자신과 비슷할 것으로 추정되는 영국인 중년여성 미스 마플입니다. 젊었을 때 프랑스에서 성악을 공부하다가 영국으로 돌아와 군인인 첫번째 남편을 따라 1차세계대전 때 간호사로 일했고 두번째 남편은 고고학자라고 하니 좀 특이한 이력이죠? 그래서 그런지 다양한 인물을 묘사하는데도 매우 자연스럽고, 또 섬세하면서도 박력있는 문체나 표현력이 매력적인 작가인 것 같습니다. 100권이 넘는 장편을 썼고 세계에서 제일 많이 번역된 개인작가라고도 하네요.


줄거리

오리엔트 특급 열차가 폭설로 갇히게 되는데 살인이 일어납니다. 용의자는 성별, 국적, 나이, 신분이 다양한 12명의 승객들. 여기서 푸아로는 범인을 찾을 수 있을까요?

고전적인 추리소설답게 폐쇄된 공간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용의자는 많은데 증거는 별로 없어서 탐정은 용의자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범인을 추리고 이것을 다함께 듣고 질문도 합니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이나 <완벽한 타인>을 보신 분이라면 단번에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한편 고전적인 소설답게 뭔가 메시지를 담으려는 시도도 있고 다들 상위층인 척 젠체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등장인물이 많은 외국소설은 옆에 이름과 설명을 하나씩 적어가면서 보는 것이 재미아닌 재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들과 함께 한겨울 오리엔탈 특급열차에 몸과 마음을 싣고 무시무시한 여행을 함께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사실 저는 기억력이 좋지 못해서 이런 종류의 고전추리소설은 항상 이해를 못하고 결말을 보게 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출력이 좋아서 재미있습니다.


[스포일러] 사회가 하지 못한 집행

"사회는 이미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우린 단지 그 선고를 집행했을 뿐이에요." (허바드 부인)

살인피해자는 사실 아이를 유괴, 살인한 죄로 미국에서 도망치고있던 범죄자였습니다. 유괴피해자 가족들은 모두 자의, 타의로 목숨을 잃었고 주변 지인들이 복수를 하고자 열차에 함께 탄 것이죠. 마치 배심원 12명처럼요.

사회가 제대로 하지 못한 처벌에 대해 개인적 복수가 용납이 되느냐 안되느냐는 유구한 논쟁거리이며 실제로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법은 최대한 보수적인 결론을 내려고 하지만 그렇다면 누가 법을 지키고 싶겠냐는 거죠. 특히 상위층은 빠져나가기 쉬울텐데요. 그래도 소설처럼 이웃들이 복수를 해주고 싶어할 정도로 정의감이 있는 사회라면 조금은 기대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래도 고전추리소설이기도 하고 담담한 문체라 마지막에 몰아서 나오는데 조금 더 분량이 많았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렇게되면 그 장르의 색을 벗어나게 되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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