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계피차 Sep 16. 2019

내 시간을 앞서 간 이름, 언니

<응답하라 1988>, <땐뽀걸즈>, <벌새>의 자매들

최근 미디어에서 자매는 어떻게 다뤄지고 있을까?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의 성보라-성덕선, 드라마 <땐뽀걸즈>(2018)의 김시라-김시은, 영화 <벌새>(2018)의 수희-은희를 골라 보았다.   

  

***결말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중간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성보라-성덕선 (<응답하라 1988>, 2015)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은 1988년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사는 이웃들을 다룬 드라마로 당시 많은 인기를 누렸다. 주인공인 성덕선은 쌍문여고 2학년으로 동갑인 같은 동네 남자아이들과 어렸을 때부터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들과의 관계가 드라마의 주요 내용을 이루고 있다. 각 가정마다 색다른 가정사를 가지고 있고 형제관계도 다르다. 


자기 옷을 입고 간 동생 덕선(왼쪽)을 노려보는 언니 보라(오른쪽)와 보라의 폭발이 두려운 엄마(가운데)


덕선의 가족은 은행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 서울대 수학교육과 2학년에 재학중인 언니(성보라), 한 살 어린 남동생(성노을)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위 딸·딸·아들로 구성된 가족이지만 장녀인 보라가 공부를 잘 하고 덕선이도 성격이 세고 노을이 공부를 잘 하는 편은 아닌데다 소심한 성격이기 때문에 전형적으로 막내아들이 굉장한 편애를 받는 집안은 아니다. 하지만 언니는 너무 공부를 잘하고 동생은 ‘막내’‘아들’이라고 관심을 받는 반면 둘째인 덕선이는 이름도 촌스럽고, 공부 못한다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놀림받고, 게다가 언니와 생일이 가까워 항상 생일잔치를 같이 하는 것이 너무 속상하다. 


아빠가 보증을 잘못서서 다섯식구가 방 2개의 반지하에서 사는데 보라·덕선이 안쪽 방을 쓰고 아빠·엄마·노을이 거실 겸 바깥쪽 방을 함께 쓴다. 자매사이는 주로 옷을 두고 다투는 에피소드가 다뤄지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보라는 지고는 못살기 때문에 덕선이 자신의 옷을 가져가는 날에는 피튀기는 싸움을 걸곤 한다. 


보통은 어렸을 때 싸우다가 어른이 되거나 결혼한 후에 (동생에게) 모성애를 보이는 언니의 모습이 다뤄지곤 했던 것 같다. 물론 동생들이나 주변 인물들을 챙기는 에피소드가 있긴 하지만 여기서는 조금 다르다. 보라는 원래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시원에 들어가게 된다. 덕선은 엄마의 반찬을 전해주러 보라의 방에 찾아가는데  방을 혼자 쓰게 돼서 좋아하고 있다가 마주친 언니의 고시원 방이 너무 좁아 충격을 받은 덕선은 보라를 안고 엉엉 운다. 



집안에서 특출나거나 꿈을 위해 배려받는 건 주로 오빠 혹은 장남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응팔에서는 유일하게 ‘언니’라고 불리는 보라가 동네에서 제일 먼저 출세한다. 덕선이는 대학진학이 어려울 정도로 공부를 못했다는 설정과 이어지지 않긴 하지만 어쨌든 전문직(스튜디어스)에 진출했다. 주인공이기 때문에 특별한 직업을 준 것 같기도 하지만 서울대에 다니는 언니와 비슷하게 격을 맞춘 것 같기도 하다. 


이전 응답하라 시리즈의 주인공들이 외동딸이었던 것에 반해 마지막 시리즈에서 딸·딸·아들 중 둘째딸을 주인공으로 한 건 어쨌든 많이 신경 쓴 것으로 보인다. 장녀에게 두 번째  커플 역할을 주어 로맨스 서사를 2배로 키우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보통 다른 드라마에서는 남동생이나 친구 혹은 남자주인공의 친구를 서브커플로 다루기 때문에 차별점이 있다. 언니는 언니대로 동생은 동생대로 이입해서 보는 재미가 컸을 것이다. 다만 운동권 ‘여학생’이 다뤄지는 건 거의 드문 일인데 불쌍하거나 오버하는 역할로만 다뤄진 것이 큰 한계점이라고 하겠다.   


김시라-김시은 (<땐뽀걸즈>, 2018)     


드라마 <땐뽀걸즈>는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2016)를 드라마화한 것으로 경남 거제의 거제여상 댄스스포츠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거제시민들은 주로 조선업이나 어업, 요식업, 숙박업을 주요 생계로 삼고 있다. 주인공인 시은은 거제여상 2학년으로 영화감독이 꿈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다. 아빠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조선업 관련 대기업 하청업체에서 근무중이며 언니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에 동네 칵테일바에서 일하고 있다. 


땐뽀‘걸즈’는 여학교를 배경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남자주인공을 굳이 넣었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었다. 대신 훌륭한 장점도 가지고 있는데 주인공 시은(가족)의 경제적·사회적 배경이 잘 드러난 부분일 것이다. 

우선 예체능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서울생활권이 필수적이다. 보통 지방에 사는 청소년들은 서울 상경을 많이들 꿈꾸기도 하고 시은의 경우 언니가 서울에서 대학에 나왔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보다 더 바라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언니 시라가 서울에서 취직하지 못하고 거제로 다시 내려온 이유는 취업의 어려움도 있겠지만 굳이 서울에서 지내야 하는 비용도 아깝고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가족들과 함께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에 그런 것이 아닐까. 물론 시라는 가족과 집안을 살뜰히 보살피는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공부를 잘했었다는 걸 보면 단순한 취업실패가 아닌 것 같다. 실제로 지방출신의 인서울 대학생들이 외로움을 못견디고 결국 지방의 집으로 다시 내려오는 경우가 많은 걸 생각하면 시라도 그런 경우가 아니었을까. 


아빠가 돌아갔을 뿐 아니라 엄마 역시 이전 직장에서 해고당해 더 낮은 월급으로 생활하는 바람에 시은은 본인 의지와는 다르게 상고에 다니게 되었다. 상고에 다닌다는 건 대학에 진학하지 않거나 전문대에 진학한다는 것. 시은도 별 목표없이 학교생활을 하다가 영화감독의 꿈을 위해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목표로 학생부 전형을 노리게 된다. 그저 자기소개서에 쓸 만큼 활동하고 나오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마침 신입부원을 구하고 있는 댄스스포츠 동아리에 들어갔지만 여러모로 상황이 심각해졌다. 입시준비는 둘째치고, 땐뽀반 존립·유지의 문제, 선생님·친구들과의 관계, 댄스스포츠에 대한 진심, 연애, 엄마와의 관계 등등 해결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서울로 가는 시은(오른쪽)을 배웅하는 엄마와 언니 시라


친구들 역시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나 가정사 때문에 떈뽀 연습·시합에 불참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시작도 그렇지만 끝에서도 땐뽀반 아이들에게 최우선은 아니었고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그렇지만 이 과정들을 통해 아이들은 조금씩 어른에 가까워져 갔다. 


시은이가 이러한 일을 겪는 동안 엄마는 남편의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해 이전 회사와 길고 외로움 싸움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시은의 들뜸에 윽박도 질러보고 위로도 해보다 결국 딸의 꿈을 응원한다. 언니도 별 말은 없지만 시은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모두들 자신보다 시은이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래서 였을까. 


예전 같았으면 과부가 된 엄마를 보필하는 착한 딸들의 모습으로 나왔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나나 시은이나 엄마나 자신의 불쌍함을 어필하기 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내보인다. 그리고 엄마는 직장동료들 사이에서 리더 격이었기에 (부모의 문제를 아이에게 부담지우면 안된다는 점에서) 딸들의 위로까지 받아야 할 형편까지는 아니었다. 나중에 시은이 다시 거제로 내려올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본인이나 가족들에게) 불행한 인생은 아닐 것이다. 시나가 패배감에 사로잡혀 살지 않았듯이. 땐뽀든 서울생활이든 잠깐이었더라도 그들의 인생을 넉넉하게 한 시간들이지 않았을까.      


수희-은희 (<벌새>, 2018)      


벌새는 가장 작은 새 중 하나로 1초에 많게는 99번까지 날개짓을 하여 공중에 정지한 (것처럼 보이는) 채로 꿀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벌새>는 1994년 중학교 2학년인 은희의 관계와 감정들을 다룬 영화이다. 은희는 집안에서 고등학생 언니, 중3 오빠를 둔 막내딸이지만 부모님이나 형제자매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는 처지는 아니다. 학교에서도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고 그 나이대의 청소년들답게 학원친구나 이성친구, X동생과의 관계도 갈팡질팡한다. 


은희와 방을 같이 쓰는 언니 수희는 소위 날라리다. 공부를 못해서 강북으로 학교를 다니고 밤마다 놀러다니고 가끔 남자친구를 집에 몰래 데려와 밤을 새기도 한다. 수희에 실망한 부모님은 오빠 대훈이 외고에 진학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부모님은 떡집을 운영하시기 때문에 집안일에 관심을 쏟지 못하는데 아빠는 소위 ‘춤바람’이 난 상태이다. 오빠는 가끔 은희를 죽도로 때리는데 아마 본인에게 쏠린 관심을 등에 업고 폭력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아 보인다. 다섯 식구가 모두 모인 식탁에서 은희가 오빠에게 맞았다고 하자 엄마는 둘이 싸우지 말라고 할 뿐이다. 



은희는 공부에 관심이 없고 만화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한문학원에 계속 다니는 것은 단짝인 지숙이 있기 때문인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학교가 다르다. 은희는 남자친구도 있고 먼저 친해지고 싶다고 하는 X동생도 생겼다. 하지만 이 모든 관계들은 쉽게 밀리기도 하고 어렵사리 당겨지기도 하는 것 같다. 


사랑을 갈구하는 은희는 새로 온 한문학원 선생님 영지를 통해 위로를 받는다. 영지는 휴학한 대학생으로 소위 ‘운동권’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문을 가르칠 정도면 아마 인문대 계열 전공자일 것이다. 영지는 은희에게 벌어진 틈이 보일 때마다 다가가 관심을 보여준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은희는 본인이 불쌍해 보여서 잘 해주는 거냐고도 물어본다. 하지만 (다른 장면에서) 영지는 남을 함부로 동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벌새>는 은희와 영지의 관계를 제일 크게 다루고 있는데 원래는 수희의 이야기도 많았다고 한다. 은희가 오빠에게 맞았다고 말한 후에 은희와 수희는 서로를 보고 있었다. 오빠는 부모님의 체면을 핑계로 은희를 때리기까지 하지만 수희는 은희를 타박하지 않고 은희 역시 수희를 참견하지 않는다. 


은희는 그래도 막내니까 부모님이 주는 부담을 좋은 싫든 받지 않을 수 있는데 수희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첫째이고 딸이니까 많은 걸 기대했을 거고 그만큼 안되니까 많이 실망했을 것이다. 수희는 은희까지 살펴줄 여력은 없지만 그 스트레스를 은희에게 쏟지 않는다. 은희도 수희가 남자친구를 몰래 데려오는 걸 이르지 않는다. 살가운 것도 아니고 치고 받고 싸우는 것도 아니지만 은연중에 수희도 같은 벌새임을 은희는 알지 않았을까




기존 컨텐츠에서 자매들은 오늘 입을 옷을 누가 입을지 싸우는 관계나 한쪽이 먼저 결혼해서 애틋한 관계로 양분되어 그려졌지만 실제로는 당연히 여러 가지 관계가 있다. 특히 딸이 엄마를 한 세대 앞선 여성으로서 동정하는 부분이 있는 반면 동생에게 언니는 몇 해 더 먼저 비슷한 삶을 산 가장 가까운 동료이며 믿을만한 인생선배가 아닐까. 상대적으로 남성이 인생에 있어 극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반면 여성들의 삶은 (체력, 임신·출산, 치안, 사회적인 시선 등등의 문제로)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그렇기에 주변 여성들의 경험담은 더더욱 필요하기 마련인데 비슷한 경험을 한 가장 의지할만한 존재인 언니에 대해서는 가볍게만 다루어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컸다. 있더라도 결혼이나 임신·출산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앞에서 다룬 컨텐츠의 여성들은 청소년이었는데 자매 관계가 세밀하게 다루어졌다면 생리나 몸에 대한 이야기, 진로에 대한 이야기가 더 나왔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사실 잘 등장하지도 않았던 언니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다루어 졌다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크게 반가웠다. 특히 <벌새>는 여성 감독/각본이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 


나중에는 중년의 자매들이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에 대해서 다룬 컨텐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남편·자식 얘기가 아니라 본인들의 커리어와 삶을 이야기하는 자매들 말이다.  




참고자료


응답하라 1988  


류혜영, 혜리에 '돌대가리' 독설 작렬

https://tv.naver.com/v/611264     

혜리, 언니 류혜영의 '고시원방' 보고 눈물폭발!

https://tv.naver.com/v/687418          


땐뽀걸즈  

    

니 대학나와가 뭐할낀데? 영화감독! 음지탈출을 꿈꾸는 박세완

https://tv.naver.com/v/4693822     

오늘도 엄마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박세완☆

https://tv.naver.com/v/4693829     

[눙물ㅠㅠ] 딸래미 서울 보내는 세완 엄마

https://tv.naver.com/v/4870630          


벌새  

   

메인 예고편

https://tv.naver.com/v/9353475     

'벌새' V앱 스팟라이브 FULL 영상

https://tv.naver.com/v/9530075     

작가의 이전글 자신을노래한가수들(2) 전소연(여자아이들)<Uh-Oh>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