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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피차 Oct 14. 2019

몸을 보는 시선

<아워바디>(2019,한가람),‘러브세트’<페르소나>(2018,이경미)

최근 독립영화계에서 호불호의 정점을 달리고 있는 영화가 있다. 불호의 이유 중 하나는 여성의 몸을 지나치게 대상화했다는 점이었다. 객관적으로 심한 수준은 아니지만 포스터를 보고 본격 힐링 운동 영화인 줄 알고 간 관객은 실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호의를 보인 관객은 여성의 몸을 보는 여성(감독)의 시선을 그렸다는 점에서였다. 그리고 지난 해에도 비슷한 반응이 나온 영화가 있었다. <아워 바디>(2019, 한가람)와,<페르소나>의 ‘러브세트’(2018, 이경미)이다.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


<아워바디>는 8년차에 행정고시를 포기한 31살 자영이 우연히 조깅을 하는 현주를 만나 본인도 운동을 하게 되고 몸을 가꾸게 되는 이야기이다. 포스터나 예고편을 보면 운동을 하면서 몸도 마음도 자신감을 얻고 새 출발하는 이야기겠거니 싶지만 새 출발이 심상치 않은 게 문제다. 이 영화는 자영의 일상에 관한 부분과 운동에 관한 부분을 다루고 있다. 자영은 운동에 적합한 몸을 욕망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몸을 관찰하거나 관찰되어 진다. 그런 욕망을 가지게 만든, 여자가 봐도 반할만한 몸과 운동능력을 가진 현주, 이제 화장에 큰 관심을 가질 중학생 여동생 화영, 같이 조깅을 하는 남자들과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 그런데 아르바이트를 소개해 준, 그러니까 일로 엮인 대학친구 민지는 이런 시선에 얽히지 않는다.      

어쩌다 길 한복판에서 마주친 자영의 운동을 이끌어준 현주는 운동에도 일상에도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그렇지만 넓은 오피스텔에는 가구를 들여놓지 않고, 현재 직업에 만족하지 않고 도전하는 소설가 데뷔는 자꾸 실패한다. 자영과 술을 마시면서 하는 얘기에서도 현주는 자기 몸 자랑만 하는 젊은 남자보다 나이 많은 남자와 한 번 자보고 싶다고 한다. 이 때 자영은 호텔 스위트룸에서 룸서비스를 시켜보고 싶다고 한다.    

  

후반부에서 자영은 이 두 가지, 아니 세 가지를 다 해본다. 같이 조깅하는 젊은 남자와도 자보고 민지 회사 상사와도 자보고 호텔에서 룸서비스도 시켜먹는데, 자위도 한다. 그런데 이 행위들은 현주가 사고로 죽고 난 다음에 이루어진다. 자영에게 현주는 운동의 롤모델 이상으로 보여지는데 여기에 동의한다면 흥미로운 영화가 되는 것이고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영화가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런 관계는 그렇게 특이한 건 아닌데 <블랙스완>(2010, 대런 아로노프스키)에서 니나가 라이벌 관계인 릴리와 섹스하는 착각을 하는 신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전 해에 나온 <페르소나>의 ‘러브세트’도 예로 들 수 있다. 이경미 감독은 <미쓰 홍당무>(2008), <비밀은 없다>(2015)에서 전형적이지 않아서 숨기고 싶은 것이 많은 주인공들을 만들어 냈다. 이 세 작품에서는 딸-아빠-아빠애인이 나오는데 정작 이 관계의 중심에 있는 아빠는 크게 중요한 인물로 다뤄지지 않는다. <미쓰 홍당무>에서는 주인공인 아빠 짝사랑녀 미숙과 딸 종희의 연대, <비밀은 없다>에서는 주인공인 아내 연홍과 딸 친구 미옥의 관계가 주로 다뤄진다.      


‘러브세트’ 역시 주인공인 딸 아이유와 아빠 애인 두나가 주인공이다. 여기서 아이유의 행동이나 그에 대한 시선이 너무 소아성애적이거나 성적대상화됐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딸이 아빠(의 애인)를 질투하는 것으로 이해했을 것이고 카메라의 시선도 아빠나 테니스 코치(남자)의 시선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 점에서 불쾌했을 것이다(하지만 여자의 시선이라고 해서 그 불쾌함이 모두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두 주인공이 욕망한 건 아빠가 아니라 서로가 아닐까?      


테니스에서 러브게임은 이긴 편이 4점, 진 편이 0점인 게임을 말한다. 아이유가 다치면서까지 게임을 했어도 결국 득점 하나 없이 졌고 이것이 아빠를 빼앗긴 것으로 보이지만 거꾸로 보면 두나가 (아이유까지) 모두 가졌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경미 감독의 전작에서 아빠들은 그렇게 매력적인 인물로 나오지 않고 상대편에 있는 여자를 대하는 건 거의 그의 반대편에 있는 여자이다.      

이런 관계는 <기담>(2007, 정식·정범식), <킬링이브>(2018, 데이먼 토머스 등)에서도 나온다. <기담>에서 딸이 새아빠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하면 엄마의 관심을 끌고 싶어한 것이고, <킬링이브>에서도 이브가 빌라넬을 쫓는 게 남자동료에 대한 복수라고 보이기도 하지만 닮은 서로에 대한 관심인 것처럼. <아워바디>에서도 남자상사와 섹스한 자영에게 그것을 성상납으로 이해한 민지가 크게 실망했다고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건 현주가 나이 많은 남자와 자보고 싶다고 한 말을 기억하고 한 것이다. 여자들 사이에 낀 남자는 여자의 주요 관심사가 아닐 수 있다. 의외로 큰 확률로.      


이 두 영화는 (동성애 관계든 아니든) 여자가 여자에게 섹스어필하고, 또 느끼는 것에 대한 영화가 아닌가 싶다. 그 사이에 남자가 끼어있을 때, 혹은 성애의 대상이 있을 때 쉽게들 그 대상을 향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성적 긴장감은 여러 상황에서 생길 수 있다. 물론 모든 호감이나 텐션을 그렇게 해석하는 것도 단편적인 생각이겠지만. 얼마 전 여자들이 여자의 몸에 대해 흥분을 느끼는 비율이 남·남, 남·여에 비해 높아 여성애자 여성의 비중이 높다고 본 연구에 대한 기사가 난 적이 있는데 한편으로는 여성의 몸이 성적대상화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상쾌한 감상만 있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여자에 대한 여자의 여러 가지 시선이 등장한다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닐까. 


참고자료


아워 바디(Our Body) 30초 예고편

https://www.youtube.com/Xp_iDg8QIhw     

'아워 바디' 최희서 X 안지혜 X 한가람 감독 V라이브

https://www.vlive.tv/video/149138          


페르소나 | 공식 예고편 [HD] | Netflix

https://www.youtube.com/ITH6ttdXBq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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