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큰 한 아이에 대하여
여동생은 나와 5살 차이가 난다. 처음 동생이 태어났을 때에는 작고 귀여운 동생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유치원에 가서도 동생 이야기만 했다고 한다. 점심만 먹고 나면 집에 빨리 가서 동생을 돌보아야 한다고 하원시간이 되기 전에 집에 왔다고 한다. 동생이 어느 정도 크고 말문을 트고부터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동생은 욕심이 많았고 까탈스러웠다. 자신이 정한 기준에서 벗어나면 바로 소리를 지르고 짜증을 냈다. 나에게 가장 심하게 굴었지만 부모님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동생이 한 다섯 살쯤 되던 해였다. 몸이 안 좋아 입원을 했다. 장에 구멍이 나서 큰 수술을 했고 작은 여자아이 배에는 명치부터 배꼽 아래까지 긴 수술자국이 남았다. 장 밖으로 음식이 빠지니 영양분 흡수가 안 돼서 살이 빠지고 예민했던 것이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생을 보는데 너무 슬프고 안쓰러웠다. 입원 중에 먹는 걸 잘 먹지 못해 동생은 뭐든지 다 먹고 싶어 했다. 과자가 먹고 싶다는 동생에게 다 나으면 먹으라고 새우깡 한 봉지를 사 주었다. 먹지도 못하는 과자 봉지를 얼마나 만지고 만졌는지 봉지가 쭈글쭈글해지고 글자가 다 닳아 없어졌다. 동생이 빨리 낮기를 바라며 믿지도 않는 하느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동생은 퇴원 후부터 잘 먹고 살이 조금씩 찌더니 별난 성격이 조금 순해졌다.
어릴 때를 제외하면 동생은 착한 것 같다. 아버지께서 음력 4월 생이시고 동생 생일은 양력 5월이다. 5월에 아버지 생신과 동생 생일이 겹치거나 비슷하였다. 그럼 우리 집에서는 아버지 생신 기준으로 생일잔치를 하고 하나의 케이크에 두 사람의 축하를 같이 하였다. 나였다면 한 번씩 혼자만의 생일축하를 바랐을 것도 같은데 동생은 40살이 다 되어가도록 그런 내색 한번 없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몇 년을 사셨던 적이 있다. 그때 할머니께 동생방을 내어주고 동생은 내방 침대 아래에 사람하나 누우면 딱 맞는 공간에서 잠을 잤다. 그래도 이 상황이 싫다고 하거나 부모님께 반항 한번 한적 없이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