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가들
산후 조리원에서 나는 이상한 산모였다. 모두가 아기에게 수유하는 시간에 혼자 유축을 하고 모유를 냉동시켰다. 그리고 매일 산모들이 쉬는 오전 시간에 외출을 했다. 몸에 바람 든다고 따뜻한 방에서만 있는 산모들은 하루에 한 번씩 외출하는 내가 신기했을 것 같다. 내가 응급으로 출산을 한 날은 늦더위로 무척 더운 날이라 난 얇은 임부복을 입고 있었다. 그 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지만 갑자기 날이 쌀쌀해졌다. 조리원에 들어갈 때 외출 시 입을 겉옷을 챙기지 못했다. 몸이 으슬으슬해도 외출을 해야 하는 이유는 냉동시킨 모유를 병원에 있는 아이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이다.
아이들이 있는 병원과 조리원은 차로 20분 정도가 걸린다. 작은 아이스박스에 얼린 모유를 신생아중환자실의 간호사들에게 드리면 간호사들이 중탕을 해서 아이들에게 준다. 우리 아이들은 태어나서 바로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서 직접 수유를 못했다. 그리고 나는 모유양이 많지 않아서 분유를 먹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적은 양이라도 모유를 주면 좋을 것 같아 하루동안 겨우 모은 모유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리고 오전 10시에 20분간 아이들을 볼 수 있는 면회 시간이 주어진다.
신생아중환자실 유리안의 커튼이 열리면 인큐베이터들이 모여있고 산모 이름을 말하면 유리 쪽으로 아이들의 인큐베이터를 가지고 온다. 투명하지만 방해물들이 너무 많아 아이들과의 거리가 멀게만 느껴진다. 오늘 태어난 아이보다도 아직 작은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려왔다. 간호사가 아이의 몸무게를 매일 적어 두지만 눈대중으로 하루밤사이 얼마나 큰 건지 보고 건강 한건지도 살핀다. 아이들 얼굴과 손을 만지고 꼭 안아보고 싶었다. 그렇게 짧은 만남을 하고 돌아오면 혼자 조리원 방에서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멍하게 있었다. 조리원 생활 일주일이 되던 날 콩콩이는 황달 증세가 없어져서 퇴원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조리원을 2주 계약을 했지만 아이들이 없이 여기 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껴 일주일 만에 나왔다. 나에게 용기를 준 고마웠던 산모의 이름과 연락처라도 알아둘걸 그랬다. 정신없이 일주일이 지났고 그 산모도 어느새 조리원을 나가고 없었다. 조리원을 나가면서 병원에 들러 우리 콩콩이를 데리고 친정 집으로 갔다.
살이 조금 더 오르고 나의 아기 때 얼굴과 똑같은 콩콩이의 얼굴이 볼 때마다 신기하였다. 마음껏 이뻐해 주고 싶었지만 아직 병원에 있는 용용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는 모유를 더 적은 몸무게로 태어난 용용이에게 몰아주었었다. 콩콩이는 나의 모유를 거의 먹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는 또 콩콩이에게 미안했다. 쌍둥이 엄마들은 어떻게 사랑을 나누어 주는 거지? 한 아이에게 잘해주면 다른 아이에게 미안함이 따라온다. 무엇이든 정확하게 나누어 줄 수가 없을 것 같은 상황이 계속될 것만 같았다. 우리 아이들은 크면서 부모님에게 온전한 사랑을 못 받은 것에 속상해하겠지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며칠 후 용용이도 퇴원해서 집으로 데리고 왔다. 두 아이를 동시에 안고 사진을 찍었다. 이제 정말 둘 다 내 품에 왔구나 하며 안심이 되었다. 부모님은 작게 낳아 크게 키우면 된다고 한 번 더 나에게 힘을 주셨고 난 그저 아이들이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확실히 적은 양이라도 모유를 먹은 용용이는 잔병이 걸리지 않았다. 같이 있어도 콩콩이만 감기가 걸릴 때마다 미안한 맘에 조금 더 관심을 주었다. 비록 사랑을 줄 때 상황에 따라 비율 조절을 하는 이상한 엄마이지만 둘 다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느낄 만큼 충분히 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너희를 낳은 것이 내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의미 있고 잘한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한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