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여름

그리운 이모

by 은하

전 국민이 월드컵 열기에 흥분의 상태였던 2002년의 여름, 난 우리 이모의 장례식장에 있었다. 모두 이때를 '월드컵의 즐거움'으로 기억할 때 나는 '우리 이모를 하늘로 보냈던 슬픔'으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 이모는 어렸을 때부터 일을 하셨던 어머니를 대신해 나를 많이 돌봐주셨다. 어머니께서 처음 차린 미용실을 이모가 사는 동내로 선택한 것도 그 이유였다. 나는 우리 집 근처가 아닌 이모집 옆에 있는 어린이집을 다녔고 그때 대부분의 식사를 이모집에서 했다. 사촌 언니와 오빠는 나와 나이차는 많이 났지만 날 이뻐했다. 그래서 언니 오빠와 놀다가 혼자 집으로 오기 싫어해 이모집에서 잘 때도 많았다. 이모부도 친절했고 나를 좋아해 주셨다. 소풍 때나 학교 행사에는 이모가 따라왔다. 그래서 어머니가 오지 않았다고 실망하지 않았다. 어릴 때 이모는 어머니 대신이었다.


어머니와 이모는 자매지만 생김새도 성격도 달랐다. 어머니는 얼굴이 동글한 모습에 키가 작고, 이모는 살이 별로 없고 뾰족한 얼굴에 키가 컸다. 그리고 이모는 내가 볼 때 어머니와 달리 예민하고 무서웠다. 나는 별난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 화를 내시진 않았다. 하지만 동생이 태어나고 별난 행동을 많이 해서 혼나는 모습을 많이 봤다. 어떨 때는 화를 내실 일이 아닌 것 같은데도 화를 냈다. 이모가 어머니인 사촌 언니와 오빠가 조금 안쓰러웠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께서 조금 더 큰 미용실로 옮기면서 이모와는 자주 볼 수 없게 되었다.


이후 내가 고등학교 때 이모와 이모부가 이혼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모부가 바람이 나서 부인과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 바람난 여자와 아이도 낳았다는 것도 들었다. 그 아이는 사촌 언니와는 20살도 넘게 차이가 난다는 것에 소름이 끼쳤다. 이모는 가끔 우리 집에 와서 어머니께 신세한탄을 했다. 그래도 나와 동생 앞에서는 그 이야기를 하시지 않았다. 이모가 그때 받은 상처로 많이 힘들어했다고 어머니께 나중에야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마른 체형이었는데 더 말라갔다. 나는 속으로 처자식을 버린 이모부가 천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02년이 되어가는 겨울에 이모는 병원에 입원을 했다. 문병을 갔을 때 이모는 정말 몸에 지방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였다. 뼈에 가죽만 남아있는 듯한 퀭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날 보며 희미하게나마 웃어주셨다. 이모는 나에게 어떻게 누워 있어도 불편하다고 했다. 그래서 잠도 잘 못 자고 밥도 잘 못 드신다고 하셨다. 예민한 성격에 몸에 뼈밖에 안 남아있으니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이모는 갑자기 내 다리를 베개 삼아 누워보고 싶다고 하였다. 통통한 몸이었던 나는 침대 위에 앉아 허벅지를 내어주었다. 나의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누우시고는 내 다리에 살이 많아 편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한참 못 들었던 잠이 드셨다. 나는 병실에 누가 틀어놓은 드라마 한 편을 다 볼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이모가 편히 주무실 수 있도록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면서. 이모가 잠을 깨고는 나에게 오랜만에 편하게 잤다고 고마워하셨다. 나는 어릴 때 나를 봐주셨는데 이 정도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자주 병문안을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만 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이모 병문안에 대해 잊어버렸다.


그리고 2002년 여름 이모는 돌아가셨다. 아이러니하게도 장례식장에서 슬픔과 기쁨이 공존했다. 한쪽은 조문객들이 울고 있고 어느 한쪽에서는 월드컵 경기를 응원하느라 기쁨의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이모의 장례식은 남편의 부재로 조문객도 얼마 없었다. 대신 공허함이 식장을 가득 채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주 가서 이모 베개 노릇이나 더 해 드릴걸, 문병을 더 못 간 것이 후회가 되었다. 잠시나마 편하게 주무실 수 있게 해 드릴 수 있었는데. 그 한 번이 이모를 본 마지막이 되었을 줄은 몰랐다. 지금까지 살아 계셨더라면 내가 어머니와 함께 꽃구경을 시켜 드리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드릴 수 있는데 말이다.


아직도 여름이 다가오면 그때의 감정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마른 장작 같이 생기 없던 이모에 대한 안타까움, 누군가를 원망했던 마음, 더 잘해 드릴걸 하는 후회와 월드컵의 환희가 섞이면서 생긴 이상한 감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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