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방살이

나의 청소년기 이야기

by 은하

집의 물건들을 정리하던 중 예전에 받았던 편지들을 발견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교 시절까지 받은 편지들과 크리스마스 카드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다 버렸다고 생각했었는데 신랑의 물건 속에 섞여 있어 정리할 때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상당히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나의 추억들이 다시 살아났다. 편지들 중 가장 많이 받은 것은 P양에게서 받은 것이다. 지금 결혼은 했는지 안 했는지 몰라서 P 양이라고 하겠다. P양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이사를 하면서 만난 내 기억에 있는 첫 친구이다.


처음 우리 집은 작은 방이 달린 미용실이었다. 부모님께서 열심히 일하시고 자금을 더 모으셔서 더 큰 공간의 미용실과 방이 두 개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안쪽 방 하나는 침대와 장롱을 놓으니 꽉 찼다. 그 방과 미용실과 연결된 다른 중간방은 나의 책상과 텔레비전 하나가 있었다. 부엌과 화장실은 처음 집과 마찬가지로 바깥에 있었다. 겨울과 밤에 화장실 가기가 너무 싫었다. 그래도 방이 더 넓어진 것과 드디어 나의 책상이 생겼다는 것에 너무나 기뻤었다. 이 기쁨이 오래가지 않은 건 바로 P양 때문이다.


P양은 말하자면 나와 나이가 같은 우리 집주인의 딸이다. 나는 그때 셋방살이에 대해 부끄러움 이라던지 집주인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고 우리 가족은 서로 사랑하고 부모님께서 열심히 살고 계신데 그걸 왜 신경 써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P양은 나와 학교를 같이 가고 태권도 도장도 같이 다니면서 친해졌다. 친해졌다고 말하는 것도 이상한 것이 나는 P양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냥 나의 일상생활에서 P양과 동선이 같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P양은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나를 불쌍하게 볼 때도 있고 자신이 우월하다는 뜻으로 말을 할 때도 있었다. P양 자신의 부모는 4 가구가 사는 주택의 주인이고 우리는 셋방살이하는 집 중 하나라는 것이었다. 부모님께 듣고 본 것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자신의 위치가 나보다 위라고 생각하게 만든 것 같았다.


어머니께서는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 치욕적이라고 하셨다. P양의 어머니께서는 틈만 나면 미용실을 찾아와 주인행세를 하면서 월세를 올려야겠다고 어머니께 부담을 주셨다고 했다. 우리가 맛있는 것을 먹으면 그래서 돈을 못 모아서 남의 집에서 산다거나, 하루 종일 일하시는 어머니께 이렇게 일해서 언제 집을 장만하냐며 비아냥 거리셨다고 한다. 사실 부모님께서도 다른 곳에 집을 장만하셨다. 그 집을 세를 주고 미용실을 해서 돈을 더 벌고자 말을 안 하고 일을 하셨다고 하셨다. 집을 샀다는 사실을 알면 월세를 더 올릴 것 같아 말씀을 안 하셨다고 하셨다. 이사를 할 때 우리가 집을 샀다는 걸 알고는 당황해하는 주인아줌마의 표정을 어머니는 잊을 수 없다고 하셨다. 이런 일로도 P양을 곱게 볼 수 없지만 사실 어른들의 문제가 아닌 P양 인성 자체가 나와 친해지기 어려웠다.


내가 P양보다 공부는 잘해서 P양이 자격지심이 생겼는지 내 물건을 많이 탐냈다. P양의 어머니는 시험을 칠 때마다 나의 성적을 확인하셨다. 내가 본인의 비교의 대상이었고 그것 때문에 혼이 났다고 가끔 P양이 말해주었다. 이후 뻔히 내 것인데도 자기가 가져가고는 본인 것이라고 했다. 그것들이 금전적으로 큰 것들이 아니었다. 같이 놀 때 사용하던 종이 인형 옷 이라던가, 학교에서 지우개 따먹기를 해서 내가 따왔던 대왕 지우개라던가, 내가 어디서 주워왔던 예쁜 작은 돌멩이, 그런 소소한 것들이었다. P양은 그래도 내가 따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철이 일찍 들었기에 나의 다툼이 어머니께 큰 걱정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P양을 좋게 볼 수 없는 이유는 내 동생을 대할 때 너무 상처 주는 말을 많이 해서였다. 나보다 5살이 어린 동생은 P양이 나와 놀 때 같이 따라오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P양은 "넌 너희 집이 없잖아! 집 없는 아이랑은 안 놀아!" 꼭 이런 식으로 동생을 밀어냈다. '나는 그럼 왜 노는 거야?' 그때 가만히 있었던 내가 후회스럽다. P양과 같이 놀기가 썩 재미있지 않았지만 동생을 버리고까지 갔어야 하는지 말이다. 하지만 동생이 같이 놀다가 P양의 못된 말들을 듣게 되는 것이 싫어서 오히려 내가 동생을 데리고 가지 않았다. P양과는 중학교가 달라지면서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P양은 날 찾았지만 난 의도적으로 피했다. 그런데 P양은 그 이유를 잘 모르는 듯했다. 내가 고등학교에 갈 때쯤 어머니께서 미용실을 그만두시고 이사를 갔는데 그때까지 나에게 편지를 한 걸 보면 말이다.


P양의 편지에는 '우리가 학교가 달라져서 많이 못 봐서 멀어진 것이 아쉽다. 누구와 사귀었는데 헤어졌다. 내가 대학에 가서 부럽다. 대학에 가서도 가끔 만나자.' 그런 이야기들이 있었다. 내가 답장을 했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P양과 내가 서로 생각하는 온도가 다르다. 나의 소중한 시절, 나의 청소년기에 누구보다 나와 같이 한 시간이 많지만 나의 기억에 잘 남지 않은 이 아이를 생각하니 조금 안타깝다. 좀 더 좋은 친구였다면 나와 제일 친하고 오래 만난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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