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그마 Mar 05. 2024

마마보이 3

잘 가, 너네 엄마한테

간단하게 커피 한 잔으로 마무리하려던 그와의 만남이 못내 아쉬워져서 바로 식사를 제안했다.

너무 웃느라 배가 고파졌기 때문이기도 했고 조금 더 이야기하고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해서였다.


그가 자신이 자주 간다는 국밥집을 추천했다.

각자 차를 가져왔기에 나는 앞서 출발한 그의 안내를 따라 무사히 식당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그는 편히 주차할 수 있는 자리를 지나 구석 자리로 끼여 들어갔다.

카페에서 얼핏 이야기한 허접한 내 주차 실력을 기억한 모양이었다.


"주말에 뭐 하세요?"

"아 제가 주말에는 일을 해서요..."


알고 보니 그는 가까운 인근 도시에서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었고, 휴무일에만 본가에 내려와서 지낸다고 했다. 부모님은 외지에서 혼자 사는 그가 안쓰러웠기에 하루빨리 누구라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었으리라.


이런 이야기에 그간 여자들에게 거절을 많이 당했는지 그의 얼굴에 살짝 풀 죽은 표정이 스쳤다.


그때는 내가 뭐가 씌었는지 뭐라도 된 듯 오만했기에 상대의 외로움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주말에 못 보면 뭐 어떻고 못 생기면 뭐 어떤가? 이렇게 나를 즐겁게 해 주는데'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던 나를 졸라 때려주고 싶다.


그와의 만남이 참 즐거웠기에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에프터를 신청했고, 그는 웃으며 다음을 약속했다.


어느 날 저녁, 함께 공원을 산책하는 내내 그의 커다란 덩치에 숨겨져 있던 장미꽃 한 송이로 나의 제대로 된 연애가 시작되었다.


못 생긴 거에 빠지면 답도 없다더니 그 말이 정말이었다. 그는 자상하고 배려심 많고 재미있었다. 나는 그에게 푹 빠져들었다.


혹시나 불안하긴 했지만 역시나 착하고 배려심 많았던 그는 모두에게 그런 사람이었고 참 효자였다.


집으로 내려와서도 쉬지 못하고 그는 어머니의 가게를 도왔다. 분리수거나 설거지를 하고서야 만날 수 있었고 동생 학원 픽업이나 술 드신 아버지를 태우러 가야 한다며 데이트 도중 나를 집 근처에 던지고 갔다.


적어도 주 1회는 볼 수 있겠지 싶었던 그는 가족의 일로 몇 번이나 데이트를 미뤘다. 그래도 그런 날이면 다음 날이라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와서 맛있는 저녁을 사주며 나를 달래곤 했다.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 당시는 코로나 기세도 꺾이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사라질 시기라 식당 출입이 자유로웠으나 혹시나 이 동네에 환자가 생겼다는 소문이 돌면 그는 외출 금지를 당했다. 본인이나 부모님 장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아주 그럴듯한 핑계였다.


만나다 보니 어떤 때는 한 달에 한 번 겨우 만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소개팅 첫날의 날짜는 어찌 그리 빨리 잡았는지 내참 어이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계속해서 만났던 것은 그가 내 아픔을 진지한 얼굴로 들어주었고 나를 변함없이 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발 쓴 나를 이해해 주는 만큼 나도 그의 상황을 이해해 주면 그는 날 떠나지 못할 것이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었던 거다.


그러나 나도 억지로 참고 지나가는 부분이 많았기에 점차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고 그에게 날 선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는 늘 사과했다.


착한 아들, 부지런한 사장, 자상한 남자친구 이 모든 게 하고 싶었던 그는 소진되고 있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나는 불안했다.


그와 이렇게 외줄 타듯 불안한 시기를 함께하고 있던 무렵, 팀장님을 통해서 그의 어머님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비교적 일방적이었다. 이번주 토요일 12시 ㅇㅇ보리밥집.


그에게 그 이야기를 전달하자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살짝 초조해하는 듯했다.

나에 대해서 자세히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해는 가지만 서운함에 짜증을 확 냈다.


그는 어머니 부탁으로 옷장을 싣고 나와 당근에 팔기까지 하고 나온 터라 조금은 지친 상태였고 나 또한 한 달에 몇 번 만나지도 못하는데 하필이면 그날에 맞춰 아들에게 부탁하는 그의 가족에게 인내심이 바닥난 상태였다.


그간 쌓인 서운함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우리는 크게 싸웠다.


무작정 그는 헤어지자고 했다.

내 가발 때문이냐고 재차 물어도 바윗돌 마냥 입을 꽉 닫고 있었다.


눈물이 났다.

그에게서 (가끔이지만) 받았던 애정, 헌신 그리고 위로로 나도 모르게 안정감을 많이 느끼고 있었나 보다.


어두운 그의 차에서 한참을 울다가 보니 그가 입을 뗀다.


“널 만나기 전에 오래 만나던,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가 있었어. 우리 엄마는 그 친구의 학력, 직업 등 모든 것을 대놓고 무시했고  아주 미세한 사시(사팔눈)인걸 보고는 계속 만날 거면 집에서 나가라고 하셨어... “


처음 듣는 이야기에 나는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또 만난다는 여자가 가발을 쓴다고 하면 뭐라고 하실지 뻔해.... 부모님인데... 인연을 끊을 수 없잖아 그리고 너는 우리 엄마한테 그런 얘기 듣게 하기 싫어.. “


결국 도망가겠다는 거다.


그의 말이 아직 다 아물지 않은 내 상처에 닿는 독한 소독약처럼 따갑게 느껴졌다.


시작도 그의 엄마.

훼방도 그의 엄마.

끝도 그의 엄마.


나도 알고 있다. 그의 엄마 잘못이 100%는 아니다. 엄마 핑계로 도망가는 그의 잘못이 더 크다.

덩치만 컸지, 본인의 의견은 없는 놈.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던데 그는 그럴 의지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 잘 가, 너네 엄마한테.


그 말을 듣고 힘 없이 그의 차에서 내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향해 걸었다.

가슴이 후벼 파지는 것 같았다.








이전 12화 마마보이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