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그마 Feb 29. 2024

마마보이 2

다시 생각하세요

당시에는 한동안 자기 계발을 하며 자존감이 솟구치던 시기였기에 ‘아,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가니까 이렇게 좋은 시어머니도 만날 기회가 오는 거구나?’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그쪽이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졌기에 더욱 더 의기양양했다. 내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그의 연락처. 내 선택과 판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말 연애의 시작이 어쩜 이렇게 다 가지각색인지!

그리고 멍청한 나는 왜 찍어먹어야 똥인 줄 아는 것인지!


하지만 이전의 실패와 상처들이 컸기에 무작정 생각없이 시작하고 싶지도 않았다. 부서가 바뀐 터라 새 업무에 적응하느라 정신도 없었기에 그의 연락처는 코트 주머니에서 한동안 까맣게 잊히고 있었다.


어느 주말, 드라이를 맡기려 근처 세탁소를 들렀다. 사장님은 익숙한 듯 무심하게 코트 좌우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혹시 빼지 않은 물건이 있는지 확인했다.


 “어 종이 있는데요?”


사장님이 부스럭 소리와 함께 나에게 구겨진 종이를 내보이며 쓰레기인 것 같으니 버려주겠다는 제스처를 취하셨다.

(이때 버렸어야 했는데!)


까맣게 잊고 있던 그의 연락처가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쪽지를 받았다. 얼핏 적힌 연락처를 보면서 사장님은 재밌다는 듯 웃었다.


순간 운명같이 느껴졌고 집으로 돌아간 즉시 무언가에 홀린 듯 그에게 연락을 했다.


한참을 있다가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제법 예의 바르고 유머러스한 사람인 듯했다.

그는 내가 자신의 번호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고 있었기에 조금은 의아했다. 늘 팀장님이 나만 보면 왜 그에게 연락을 하지 않느냐고 은근슬쩍 물어왔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의 엄마가 그를 감시하며(?) 팀장님에게 압박한 것 같았다.


카톡으로 몇 마디 주고받지도 않았는데 나는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어머, 남자랑 얘기하다가 웃은 게 얼마만이야? 이번엔 정말 괜찮을 것 같았다.


두근거리며 그를 만난 첫날. 서로 사진조차 공유하지 않았기에 내 상상 속에서만 마주하던 그를 드디어 만난다는 설레임이 무척 컸다. 7시 ㅇㅇ카페 주변에서 기다리겠다는 그를 찾기 위해 퇴근을 서둘렀다.


멀리서도 어둠 속에서 커다란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였다.

그는 어색한 미소로 나를 반겼는데, 한 눈에도 큰 키와 덩치가 나를 설레게 했다.


그러나 카페 안으로 들어온 순간 그의 얼굴이 다시 제대로 보였다.


첫눈에 반하기는커녕 내 스타일이 너무 아니었다. 카톡을 통해 나눈 대화의 정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나도 누군가에겐 지독히 못생긴 사람일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취향은 가지각색이니까.

내 브런치 글이니, 내 취향대로 말하겠다. 못생겼더라. 진짜.


당혹감을 가까스로 감추고 인사를 건넸다. 예의상 얼른 커피만 마시고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주문을 했다.


“아긍캬캬캬하햫ㅋㅋ컇하햫캭”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테이블을 때려가며 웃고 있었다. 카페에서 내가 제일 시끄러운 것 같아 뒤늦게 창피해졌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웃는 방식이 다양하다(고 나는 믿는다.).

- 웃어른과 있을 때: 호호

- 썸남 또는 남자친구와 있을 때: 하하, 헤헤, 꺄르륵 등

- 찐친이랑 있을 때: 아긍캬캬캬하햫 또는 너무 웃겨서 소리 낼 수 없음


내가 넋을 놓고 웃고 있던 그 때 문득 깨달았다. 그래서 개그맨들 와이프가 그렇게들 이쁘구나.

그리고 내 눈앞에 그가 아까와는 달라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망할 인연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내 적극적인 구애로.


이전 11화 마마보이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