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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쿄킴 May 24. 2018

알아서 잘 해주세요.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위한 첫 번째 조건.

제주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바로, ‘알아서 잘 해주세요’였습니다. 처음에는 큰 의심 없이 클라이언트가 작업자의 의견을 많이 존중해 주는구나 라는 생각에 열심히 시안을 작성해서 보여주곤 했는데, 대개 그때부터 대대적인 수정이 시작되거나 프로젝트가 리셋되고는 했습니다.  

  

클라이언트는 그때부터 프로젝트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데, 전문가 이시니까 더 잘 아시지 않냐던 말은 온데간데없이, 나름의 목적과 질서가 있었던 시안들을 여기저기 헤집어놓기 시작합니다. 그제야 넣어야 할 내용과 빼야 할 내용을 생각하기 시작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관계자와 통화를 하면서 정보를 수집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물론 클라이언트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 의도에 알맞은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디자이너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클라이언트가 프로젝트의 정확한 목적이나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 잘못된 혹은 좋지 못한 결과물을 생산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대개 이런 문제는, 기획 담당자 없이 클라이언트가 디자이너와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발생하기 쉽습니다. 

  

  

기획자와 디자이너  


프로젝트의 목적이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디자인은 기획과 생산의 중간단계에 있습니다.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낼 것인가, 혹은 어떤 결과물이 필요한가에 대한 계획(기획)이 수립되면 그 계획에 알맞은 디자인 시안을 작성하고 수차례의 수정과 수렴 과정을 거쳐 생산에 필요한 디자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전체 비용이 크지 않을 경우 중간 과정들이 생략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디자인과 생산의 경우에는 물리적인 작업이 포함되기 때문에 비용이 줄어들기는 해도 과정이 없어지지는 않는데, 기획의 경우 결과물이 문서 형태인 경우가 대부분 이어서 그런지 그 중요성이 간과되거나, 단계 자체가 생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획이 없는 상태에서 디자인을 하는 것은 지도 없이 길을 찾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정확한 방향성도, 고려해야 할 것들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목적지를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일일이 경우의 수를 대입해봐야 합니다. 좋은 방향을 찾는 일과 함께 그렇지 않은 방향을 제외하는 일을 병행해야 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게 되고, 반대로 보면 같은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었을 때, 완성도 있고 집중된 결과물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물론 기획업무를 병행하는 디자이너들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할 때도, 오랫동안 디자인을 하려면 기획력 있는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디자이너에게 기획적인 마인드가 있는 것과, 디자이너가 기획을 한다는 의미는 엄연히 다릅니다. 전자가 기획자와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과 전체 프로세스의 효과적인 진행에 도움이 된다면, 후자는 저렴한 비용으로 신속한 진행을 가능하게 하지만 전문성은 다소 떨어지게 됩니다. 

  

규모가 작은 프로젝트의 경우 디자이너가 기획업무를 병행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당연히 전체적인 사고의 폭과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고, 전체 비용이 조금 줄어들 수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둘이 하는 것과 비슷한 양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게 됩니다.

  

  

효과적인 프로젝트를 위해서   


일반적인 프로젝트의 경우 충분한 자원(비용, 시간, 인력 등)을 할애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지방의 영세업체들의 경우 기획이나 디자인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까요? 

  

클라이언트는 디자인이 필요한 목적과 이유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클라이언트가 이에 대한 확실한 지침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 프로젝트는 나침반이 없는 배처럼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표류하기 쉽습니다. 클라이언트는 본인 혹은 본인이 속한 기업의 중요한 프로젝트에 대한 사항들을 결정을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디자이너는 디자인 영역에서의 전문가이고, 결정에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결국 결정을 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클라이언트의 몫입니다.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에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클라이언트도 디자이너의 요청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함은 물론이고, 디자이너에게 프로젝트의 목적과 원하는 방향을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알아서 잘 해주세요.”같은 막연한 표현보다는, “이런 목적을 성취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은 방법인가요?” 같이 함께 의사결정을 해나가는 과정을 거치거나, 참고가 될 이미지나 지향하는 디자인의 샘플을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이 과정은 프로젝트의 성패를 결정하는 가장 기초적이고도 중요한 작업입니다.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는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프로젝트의 방향을 결정하는 건 클라이언트이지만, 일반적인 경우 디자인의 영역에서 클라이언트가 디자이너보다 더 전문적인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프로젝트의 목적과 방향이 정확히 정해지고 난 이후에는 결과물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런 작업이 충분히 이루어졌다면, 클라이언트는 디자이너를 신뢰하고 작업 방식과 스타일을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디자이너 혹은 디자인 회사에 작업을 의뢰할 때, 클라이언트는 이미 포트폴리오를 통해 해당 디자이너나 회사의 역량을 확인한 상태입니다. 합리적인 결정을 하는 클라이언트라면, 본인의 프로젝트가 가장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작업자를 배려하고, 필요한 자원을 제공해줘야 합니다. 지나치게 많은 간섭이나 전문성이 결여된 상태에서의 무리한 요구 등은 결과적으로 소문난 잔치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많습니다. 


어떤 관계나 비슷하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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