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교무수첩은 어떤 장르인가요?
선생님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지 않은가?
한 손에는 볼펜을 들고 옆구리에는 항상 책을 끼고 있다. 그 옆구리에 끼고 있는 것이 바로 ‘교무수첩’이다.
새해 교무수첩을 받으면 비밀 책을 선물 받은 기분이다. 하지만 펼치면 내용은 없다.
내용을 한 번에 쓸 수도 없다. 1년 동안 천천히 써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다.
교사의 비밀 노트다.
이 책의 제목은 ‘교무수첩’!
장르는 교사의 성향, 가치관, 생활에 따라 무궁무진하다.
내 교무수첩은 아래와 같은 장르로 구성된다.
첫 장은 ‘역사서’다.
학생과 학부모와 상담하며 학생의 성격,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성적, 진로 계획들이 담겨있다.
1년 동안 수시로 상담하면서 처음 내용들을 바꾸기도 하고 더 추가하기도, 삭제하기도 한다.
두 번째장은 ‘에세이’다.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해야 할 업무들에 대한 고민과 감정이 담겨있다. 정제되어있지 않은 거의 끄적거림과도 같다.
세 번째장은 ‘판타지소설’이다.
‘4월이 되면 아이들과 나가서 벚꽃 사진을 찍어야지’
‘5월이 되면 마니토를 해볼까?’
‘독도지킴이학교 신청해 봐야겠다. 그리고 학생들이랑 릴스도 찍고 캠페인도 해야지!‘
등등 앞으로 하고 싶은 활동들을 상상하며 마음껏 적는다.
네 번째장은 ‘플래너’다.
오늘 할 중요한 일들, 다음 주 계획, 처리해야 할 공문, 오늘 전체메시지 보낼 내용, 이번주 우리 반 중요한 일들을 적고 빨간색으로 별표까지 표시해 놓는다.
그리 두껍지도 않은 이 한 권의 책에 신기하게도 모든 장르의 이야기가 담긴다.
학년이 끝나면 1년 동안 쌓인 자료를 정리한다.
소중한 비밀 노트였던 ‘교무수첩’을 정리할 때 마음이 제일 찌릿하다.
아이들의 이름이 곳곳에 적혀있고,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던 체육행사, 수련회에 관한 글도 있다. 아이들이 힘내라고 적어준 포스트잇도 붙여있다. 월별로 적힌 주요 행사와 계획을 보며 일 년 동안의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워낙 많은 정보가 들어있는 교무수첩이다. 그냥 분리수거함에 휙 버릴 수 없다. 추억이지만 그렇다고 품에 간직할 수도 없다.
파쇄기 앞에 앉아 한 장 한 장 찢어 넣는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그동안의 아쉬움과 미련, 후련함도 같이 천천히 보낼 수 있다.
요즘은 노션, 굿노트, 구글시트등으로 만든 디지털 교무수첩도 많이 쓰신다. 속지도 예쁘고 기능상 더 편리해 보인다.
아직 나는 아날로그의 종이 교무수첩을 들고 다닌다.
하나하나 펜으로 흩날려 기록하는 게 좋다. 기록하면 한 번의 클릭으로 쉽게 지울 수 없는 무게감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