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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 Mar 31. 2024

우리 반이 제일 치열할 때?

3월의 마지막 날


어느덧 3월의 마지막 주.

이번주는 학부모상담으로 일주일 내내 야근이었다.

집에서 싸 온 점심 도시락을 열지도 못하고 그대로 집에 갖고 가기를 며칠이었다.


목요일 밤 침대에 누웠다.

‘내일이 3월 마지막 날이네.. 금요일이다! 조회시간에 전달할게 뭐가 있지?’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맞다, 자리 바꿔야 하는구나!!


자리 바꾸기 준비를 전혀 해놓지 않았다.


망했다.


담임선생님들은 알 것이다.

‘자리 바꾸기’는 아이들에게 정말 진심이라는 것을!

잊어버렸다고 하면 폭동이 일어날 것이 뻔하다.


결국 아침 6시로 알람을 바꿨다.


‘자리 바꾸기… 흠.. 뭔가 재밌는 아이디어가 없을까?‘

‘조회시간 10분 안에 해야 하니 복잡한 건 안돼!’


흠..

….


… 테마를 넣어볼까?


4월은 따뜻해지는 봄이니 달다구리 과자를 주제로.

5월은 포켓몬고가 다시 유행이라고 하니 귀여운 포켓몬 캐릭터로.

6월은 학교 하면 떠오르는 단어로.

7월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축구선수로!


아이디어가 생각나는 대로 핸드폰 메모장에 적었다.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해서 자리배치도와 뽑기를 어떻게 준비할 건지 생각하고 그제야 잠들었다.


사실 자리 뽑기를 간단하게 하려면 1번부터 22번까지 숫자만 적고 뽑게 하면 된다.

그래도 이왕 하는 거 같은 뽑기라도 아이들이 조금 더 재밌어하고 웃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대망의 다음날.

부랴부랴 출근해 재빨리 컴퓨터를 켰다.

머리를 짜내 22개의 과자 이름을 생각해 내 뽑기와 자리배치도를 만들었다.


색지에 인쇄하고 가위로 오리고 손으로 접어 종이컵에 넣었다. 이 모든 건 조회 시작 30분 만에 이루어졌다.


휴 다행이다. 8시 30분 아침 종이 울린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교실로 당당하게 올라갔다!



교실에 들어가 오늘 자리를 바꾼다고 말했다.

조용하고 차분하던 아이들 눈빛이 갑자기 바뀐다.

아, 이렇게 치열했던 적이 있었나!

“자리 바꾸기가 이렇게 진지할 일이야..?”라고 물었더니 우리 반에 아주 조용하고 착한 여학생이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 4월의 테마는 ‘과자’다.

‘꼬북칩’을 뽑고 ‘꼬북칩’이 어느 자리일까 눈알이 빠르게 굴러가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웃기는지 모른다.


친한 친구들과 떨어진 아이들은 탄식을 내지르기도 하고, 원하던 뒷자리에 앉은 아이는 신나서 소리 지른다.


아이들은 자리 뽑기 하나에 ‘인생은 뜻대로 되는 게 없다’는 큰 진리를 배운다.


A학생은 자리 뽑기에 실패했다고 우울해하면서 그저 그렇게 한 달을 보낼 것이며 B학생은 원하던 자리에 되진 않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주변 친구들과 친해지고 즐거운 한 달을 보낼 것이다.


아이들에게 그저 말해주고 싶은 건,


일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그냥 오늘은 이런 날인가 보다 하는 것도 지혜다.

아, 인생이 오늘은 나를 이쪽으로 가라고 하나보다 하고 힘을 빼고 가보자.

그러면 금세 또 하하 호호 웃고 있을 거다.




아이들과 있을 때 제일 기분 좋은 순간이 있다.


아이들이 아이들 다운 모습을 보여줄 때다.

열여섯, 그 나이에만 보이는 감성과 표정 말투 행동 말이다.


자리 바꾸기 하나에도 치열하고 신나는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깔깔 웃으며 3월의 아침을 보내본다.


4월엔 아이들이 새로운 자리에서 한 움큼 더 성장하는 한 달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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