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세계를 엿보다
교직생활 8년 정도 되다 보니 가지고 있는 usb가 5개다. 이 안에는 2017년도부터 2024년도의 폴더가 있다. 그 안에는 백개 이상의 파일들이 저장되어 있다.
그동안 맡았던 업무 자료와 담임할 때 썼던 학급 자료, 각 학년 별 수업 자료들이다.
백개라는 큰 숫자뒤에 나도 모르게 오만과 편견이 따라온다. “이 정도면 됐다”.
당신은 반드시 다른 사람의 세계에 들어가서 자신의 세계에 무엇이 부족한지 발견해야 한다.
아무리 믿는 도끼가 백개라 해도 발등은 찍힌다.
그러므로 늘 반성해야 한다. 가지고 있는 것만큼 부족한 것이 무엇일지, 무엇을 채워야 할지. 늘 말이다.
스스로 부족한 것을 객관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세계를 기웃거리면 된다. 그래서 우리 교무실 선생님들을 엿보기로 했다.
내 짝꿍 국어 선생님은 정말 꼼꼼하다. 학기 초 학년별 인덱스를 만드는 모습을 보았다. 라벨지에 1학년 5반을 인쇄하고 예쁜 색지에 붙인다. 색지를 양쪽 너비가 맞게 자를 대고 칼로 자른다. 집중해서 하나하나 만드는 그 눈빛이 대단해 보였다. 작은 자료 하나에도 정성을 쏟는 그 눈빛!
내 앞 국어 선생님은 정말 열정적이다.
그가 준비한 학급 활동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들에게 미니 수첩을 사주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수첩에 질문지를 붙여준다. 아이들은 그 질문에 자신들의 대답을 쓴다. 선생님은 그 옆면에 답신을 적어준다. 거의 편지 수준이며 정성이 있다. 22명 학생에게 손으로 답신을 써주는 게 보통일이 아닐 텐데. 바쁜 3월 와중에도 아이들과 그렇게 소통하고 있다. 선생님과 아이들의 비밀일기장. 서로 은밀하게 소통하는 느낌과 경험은 특히 학생들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재밌을까.
우리 부장님은.. 그냥 최고다. 능력도 인품도!
얼마 전 정보공시 자료를 정리해서 만들었다. 하루 뒤 부장님이 다시 정리해서 보내주신 자료는 전날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와.. 이렇게 하는 거구나’ 늘 감탄하며 배우고 있다.
학급 일로 힘들어하던 어느 날이었다. 급식을 안 먹고 도시락을 싸 오기 때문에 그날도 교무실에서 싸 온 과일을 먹고 있었다. 점심을 드시고 온 부장님이 내 뒤로 쓱 오셔서 급식에 나온 미니 핫도그를 주셨다. 그날 먹은 핫도그가 어찌나 짜고 달고 맛있던지!
얼마 전 학교 옆 벚꽃길에 다 같이 나가 사진을 찍었다.
내 부족함을 알게 해주는 동료 교사분들이 곁에 많이 계신다. 오만과 편견이 나를 잡아먹을 때마다 그들을 보며 스스로를 다잡고 채워나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