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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유니버스 Feb 22. 2024

지하철에서 숙취해소...

역시 규칙적인 것이 좋다

오랜만의 팀 전체 회식이었다. 새로 부서로 온 사람들 환영회 겸 작년 실적을 자축하는 자리였다.

와인, 고량주, 그리고 맥주로 이어지는 안 어울리면서도 숙취까지 주는 조합의 술을 마셔버렸다.

(회식 장소로 가면서 '오늘은 조금만 마셔야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ㅠㅠ)


12시가 다 되어 집에 와서는... 우선 아침 5시 알람부터 껐다. '이런 꽐라 상태로 수영은 무리다.'

6시반 알람을 맞추고서 7시가 되어서야 겨우 일어났다. 지하철로 가는 길이 내린 눈에 질퍽하다.

살금살금 피해가며 지하철역에 도착했는데, 왠일인지 승강장에 줄이 길다.


지하철에 무슨 문제가 생겨서, 지하철이 연착한다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지하철은 이미 만원 of 만원이다. 회사까지 거의 40분을 타고 가야 하는데... ... 지하철 안은 이미 살벌한 농구코트와 비슷해 보인다.

검은 패딩을 입은 센터급의 거구들은 박스아웃을 한 채로 자기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고, 나를 포함한 새로 타는 사람들은 그 자리를 비집고 또 자리를 잡아야 한다. 내릴 것 같은 사람을 잽싸게 파악하고 그 공간을 확보하며 겨우 겨우 자리를 잡는다. "저 내려요. 비켜주세요." 라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리며, 밀고 미치는 모습도 많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다.


겨우 자리를 잡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지하철이 이동을 하질 않는다. 이 페이스라면 무조건 지각이다.

승객이 가득한 지하철을 정말 오랜만에 보니 문득 런던에서 일하던 때가 생각났다. 런던의 남서쪽 한인타운 근처에 살았기 때문에 출근길은 기차를 타고 워털루역에 와서, 다시 좁은 런던시내 지하철로 갈아타는 일상이었다. 기차와 지하철은 늘 만원이었다. 대영제국이라 불리웠던 곳인데, 카드를 찍고 기차나 지하철을 타는 게 아니라, 종이로 인쇄된 '통행권'을 지갑에 넣고 다니며 그걸 찍고 다녀야 했고, 심지어 기차에는 에어컨도 없었으며, 기차나 지하철에서 인터넷은 터지지도 않았다. 물론 전화도..


너무 그게 당연한건지 어느날 미팅에 한 명이 안 왔는데, 그 동료가 전화를 해보더니

"전화도 안 터지는 거 보니, 지금 지하철인가 보네요. 일단 시작하시죠." 라고 하기도 했고,

미팅에 못 온 동료가 한참 이따 메일로 "오늘 기차가 연착해서 미팅에 못 갔습니다." 라고 하는 걸

서로 당연히 관대하게 용인하고 excuse 해주는 문화였다.


하지만 여기는 IT 강국 한국이 아닌가. 겨우 스마트폰을 몸앞으로 꺼내고, 캘린더부터 확인한다. 다행히 아침 시간에는 미팅이 없다. 얼른 회사 메신저로 연락한다. "지하철이 고장이라, 지연 운행중입니다. 지각할 거 같아요 ㅠ" 라는 무미건조한 말에 "엠제이, 술마셔서 힘들텐데 고생이네. 걱정하지 말고 조심히 오셈." 이라고 답장해주는 보스. 지각이라는 마음의 굴레를 벗어서 그런지, 여전히 치열한 자리잡기와 몸싸움의 전장인 지하철이지만 마음은 한결 여유롭다.


지하철이 그래도 꾸역꾸역 역 하나씩 이동하자 타는 사람들만 늘었고, 여기저기 메신저하는 모습, 전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팀장님, 저 지하철 고장나서 15분 정도 늦을 거 같아요." 등등의 모습. 온도는 낮지 않지만 눈이 온데다 바람이 불어서 셔츠에 니트에 패딩에 잔뜩 껴입고 있는 나, 전날 마신 술이 아직 몸에 남아 있는 나.. 서서히 체온이 올라가고 땀이 나기 시작한다. 한 번 땀이 나면 멈추지 않는 체질이라 갑자기 땀이 비오듯 난다. 손수건으로 얼굴의 땀은 닦아내지만 한 번 데펴져서 열린 등판의 땀샘은 쉽사리 닫히지 않는다. 마스크와 얼굴이 닿는 면은 이미 축축해져 가지만, 좋은 점은 서서히 술이 깨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비록 땀으로 셔츠 안에 입은 면티가 다 젖었지만, 지하철을 내리는 기분은 오히려 상쾌했다. 차가웠던 바람도 시원스럽게 느껴지고... 지각은 했지만 사무실에 오니 잠도 깨고 술도 깨서 오히려 약간 기분좋은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아침부터 지하철에서 박스아웃을 하고 몸싸움을 해서인지 매우 졸리고 피곤한 하루다. 평소처럼 5시에 일어나서 수영을 하고, 일찌감치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으면 샐러드도 하나 먹고 사무실 갈 텐데... ... 규칙적인 것이 깨지니...배고픔과 졸음이 몰려온다. 얼른 정신차리고 다시 아쿠아맨으로 되살아나자 !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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