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제목과 밀리의 서재 소개화면을 보면 장인 할아버지가 한 분 나와서 방망이깎던 노인처럼 부자란 무엇인가를 설명해줄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처음 읽었을 때가 21년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어느 채널에서 소개하는 걸 듣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정말 가볍게 읽혔던 기억이 난다.
성실했던 은행원인 주인공이, 창업 컨설턴트인 친구와 주먹밥 레시피를 개발한 요리사 직원과 의기투합하여 '주먹밥' 가게를 오픈하고, 프랜차이즈로 확장을 노렸으나 실패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처음 가게를 오픈할 때는 자기자본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주먹밥 연구에도 6개월이 넘는 시간 공을 들였던 주인공이다. 하지만 1호점이 성공을 이루고 동업자의 제안을 받아 2호점을 확장하여 매출, 수익을 더 늘리게 되었고, 이에 창업컨설턴트인 동업자는 확장을 위해 편의점과 콜라보를 제안한다. 하지만 레시피를 개발했던 요리사 직원이 이를 적극 반대하고, 주인공 역시 반대하여 결국 콜라보는 무산이 되었으나, 주인공은 편의점과 콜라보 대신 본인 스스로 3호점, 4호점 등의 무리한 확장을 한다. 동시에 주먹밥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던 '밥'도 외주를 주며, 은행에 대출도 받는 등 초기의 모습과 달라진다. 그리고 실패한다.
(물론 소설이니 노인의 도움(?)을 받아 재기하는 해피엔딩이다)
책의 내용은 조커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노인(부자)과 주인공의 대화로 이루어지며, 부자의 그릇이란 무엇일까를 두 번째 읽으며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고, 오디오북으로 들으면서는 내 그릇을 키우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를 거듭 생각해보게 되었다.
은행에 근무하며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습관은 지폐를 매우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특히 지갑에 돈을 넣을 때는 권종과 화폐의 방향까지 모두 일렬 종대로 맞춰 소중하게 넣어놓는다. 돈이 구겨지거나 위아래가 뒤집히는 모습은 이상하게 견디기 어렵다. 책 속의 노인은,
"돈은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내 신용이 어느 정도인지를 비춰주는 거울과 같다." 라고 표현을 한다. 금융권에 취업을 하고 일을 한지 20년 가까이 되는데, 얼마 전에는 아내가 내가 찍힌 사진을 보더니 '금융인'의 얼굴같다는 말을 남겼다. 금융인의 얼굴이란 무엇일까? 어렸을 때는 금융, 돈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이진 않았다. 돈은 많으면 더 가지려고 분란과 욕심을 일으키는 것이라는 생각이 많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사회가 불공평한 것은 일부 재벌들이 부를 독점하고 세습했기 때문이다라고도 생각했다.
그런 '돈'에 대한 생각은 은행에서 일을 배운 2년여의 기간동안 많이 바뀌었다. 돈이 많은 것은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돈을 버는 것만큼 지키고 세금을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깨달음만 있을 뿐, 나의 돈 그릇은 큰 돈을 담을만큼 크지 못했던 것 같다.
책 속에서는 끊임없이 돈에 대해 이야기한다. 돈이 거울이며,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되고, 내가 돈을 담을 그릇이 되면 그 돈만큼이 그릇에 들어오게 돼고 다루게 된다는 말이다. 비슷한 예가 생각났다. 시골에서 가문에서 오랜기간 보유한 농지를 경작하던 농부가 있었다. 그런데 농지가 신도시 개발지역이 되며 그는 막대한 보상금을 받게 되었다. 금융기관의 PB들이 상담도 해주고 관리를 해주었지만, 농부의 재산은 자식, 가족들에게 일부 전해지고, 농부는 여기저기 투자를 하게 되며... 결국은 토지보상금의 상당부분이 사라졌다는 새드엔딩이다. 돈의 그릇이란 내가 그 정도 규모의 돈에 대해 속속들이 이해하고, 자신있게 관리할 수 있느냐를 의미한다고 책을 읽고 정의해봤다. 돈에 대해 이해하고, 관리한다는 것은 그 돈이 언제, 어떻게 움직여 나의 부를 늘려갈 것이냐와 일맥상통한다 생각한다.
1,000만원의 투자원금으로 10%를 얻으면, 세금도 신경쓸 게 없고(미미하기 때문에) 수익인 100만원을 재투자하거나 소비를 하여도 큰 차이가 없다. 사회초년생 시절 내 모습이다. 은행에서 일하며 펀드를 판매하기도 했고, 개별 종목을 직접 투자하기도 했다. 매달 3~40만원씩 적립식 투자를 하기도 하고, 때때로 들어오는 상여금 3~5백만원을 일시에 투자하기도 했다. 투자금액이 적다 보니 수익도 많아야 100만원 정도였고, 복리의 효과를 누리기는 커녕 얕은 수익에 취해 소비를 하기도 일쑤였다. 당시 나의 그릇은 1,000만원이었나보다.
금융위기를 겪고 취업, 결혼을 하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지출을 줄이고 대출을 갚고, 시드를 키우는 것에 집중했다. 그러나 일확천금을 노리며 투자했던 것들의 성과가 미미하여 늘 제자리걸음이다. 매월 모으는 돈이 어느 정도 되니 그릇도 덩달아 커진 것 같지만 여전히 내 그릇은 1억을 넘지는 못하는 거 같다.
부동산 거래를 위해 퇴직연금을 중도해지했고, 통장잔고가 난생 처음 보는 수준까지 올라간 날이 있었다. 물론 며칠 뒤에 모두 이체도 하고 해야 할 돈이었지만, '아 이 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드니 새삼 '물가상승률에도 못 따라가지만 그래도 원금보장이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으로는 가치투자 책을 보고, 부자는 어떤 투자를 하는지 읽고 생각하지만, 나는 아직 그 단계가 아니구나 싶었다. 그릇이 한참 멀었네 라는 생각이 들 때쯤 책 속의 문구들과 태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 실패를 하고 그 과정에서 배운 뒤에 다음 번 도전에는 그 실패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작은 일, 큰 일 가리지 않고 매사에 정성과 완벽을 다해야 한다."
책장을 덮으며 스스로에게 되새긴 말이다. 야심차게 분석도 하고 투자했던 종목의 수익률이 처참해지면, 실패를 복기하고 손절도 하고 들여다보고 대응하고 반성을 해야 하는데, 그냥 버티기만 한 실수를 하기도 한다. 매사 100% 완성을 생각하기 보다 90% 이상이 만족스럽거나 맞으면 거기서 멈춰버린다. 100장 짜리 문제집을 공부하며 90점을 목표로 모르는 몇 문제를 대충 넘어가는 것이 90과 100의 경계선인 것을 왜 몰랐을까?
그 경계선을 뛰어 넘는 것은 어떤 불굴의 의지나 미친 정신력이 아니다. 루틴이나 습관의 힘이다. 우선은 그냥 버티고 보는 데서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두 권의 책을 모두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느낌으로 읽었던 '숙향'님과 우연히 만나고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본인은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표현하시지만, 종목 하나하나를 매일 들여다 보고 재무제표도 분석하고, 또 매주/매월 투자일기를 그렇게 성실하게 쓰는 것만으로도 그는 성공을 위한 도전을 하고, 또 정성과 완벽을 다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유라는 것도 거기서 나온다는 것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