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탓인지 잠이 잘 안 깬다. 어렵게 몸을 일으키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수영장 갈 준비를 한다.
거실 창문을 잠시 활짝 열었다. 하늘에 구름은 잔뜩이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다.
사무실에는 우산이 하나 있고, 수요일 저녁 스터디를 참석했다가 지난주에 놓고 온 우산도 스터디룸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족들이 깰까 조심스럽게 우산장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수영장까지 걸어가는 길 10분 정도, 수영장에서 지하철역까지 5분, 광화문역에서 회사까지 5분... ... 이 20분만 비가 안 오면 우산을 들고 다니는 번거로움도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오는 찰나의 순간, 살짜기 불안한 느낌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수영장가는 길에는 가로수가 울창하고, 사무실로 가는 길에는 건물들이 많아 비가 오더라도 피할 곳이 많지 않은가?'라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사무실에도, 스터디룸에도 우산이 있는데 또 들고 가는 건 불필요하다고 세뇌했다. 수영장 가는 길에 GS편의점의 불빛이 오늘따라 밝아 보였지만, 과감히 지나쳤다.
수영장 입구에 도착했을 즈음, 빗방울이 몇 개 떨어졌다. 후다닥 자리를 피하며 '뭐... 한 시간 뒤에는 안 오겠지.' 라며 유유히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한 시간 가량 운동 후 몸과 마음을 깨끗히 정제하고 수영장 밖으로 나왔더니 헬게이트가 오픈되어 있었다. 가로수로 피할 수 있을 정도의 비가 아니라, 그냥 막 쏟아지고 있었다. 아뿔싸. 베낭을 머리에 이고 비를 피해 지하철역으로 달린다. 이미 옷과 머리는 젖은 수준을 넘어 쫄딱 젖은 생쥐 모양새다. 수영용품 가방을 열어 수건을 꺼내 잽싸게 닦는다. 몸이 축축하다.
광화문역에서 내리면 괜찮아지겠지? 라는 생각은 역시나 안일하다. 빗발은 더 굵어져 있었다. 지하철역 바로 앞 편의점에서 '결국' 우산을 구입했다. '아, 이럴 거면 집에서부터 가져오거나, 아까 수영장 가는 길 GS에서 살걸.' 이라는 후회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너무 쫄딱 젖어서인지 으슬으슬 감기기운까지 있다. 따뜻한 차를 홀짝이며 오늘 나의 어리석음을 반성했다.
세 번의 걷는 길 (집->수영장, 수영장->지하철역, 지하철역->회사)에서...
적어도 한 번은 비올 확률은 모두 87.5%이고, 3번 모두 비가 안 올 확률은 12.5%였다. 12.5%라는 낮은 확률과 먹구름을 봤더라면 우산없이 돌아다니는 무모한 배팅을 하지는 않았을텐데 ... ... 후회하며 타이핑을 치는 머리젖은 생쥐의 모습이 모니터에 비친다. 깨닫고 바뀌는 게 하나라도 있어야 나아진다. 불안한 시그널이 있거나 확률적으로 낮은 승률일 때는 몸을 낮추고 대비해야 한다. 날이 조금 흐리거나 미심쩍은 날 점심약속 때는 늘 우산을 가지고 다니셨던 예전 리스크관리 보스가 생각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