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는 아직 할 수 있는 것들은 무한이고, 체력도 열정도 많이 남은 거 같은데~ 정말 꺾였구나 싶었다.
55세로 명퇴를 하고 업계의 관련회사에서 새로 일자리를 잡은 선배와 점심을 했다.
"엠제이, 임원되지 못한 건 아쉽지만 내가 살 집 대출없이 한 채 있고, 아들한테도 줄 거 좀 있고...
명퇴금이랑 연금 가지고 노후생활 할 수 있으니~ 별 걱정은 없어."
대출없이 집 한채가 있고, 아이들한테 줄 것도 있다는 거 자체가 대단한 거예요 보스 라는 말이 맴돌았지만 차마 얘기할 수는 없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나도 무지하게 벌어야 한다. 아내랑 실거주할 집 한 채, 아이들 결혼자금 겸 1채씩, 그리고 연금을 포함한 노후 현금흐름까지... ... 10년 남은 직장생활에서 딱히 큰 변수는 없다는 가정 하에 무난하고 안정적으로 현금이 늘어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만원 한장 (아니다, 생각해보니 매매도 되지 않는 시골도시의 상가와 땅이 있었다) 물려받지 못한 나. 20대 S은행을 다니며 뻔질나게 힘들다고 남산을 걸어 올라갔었는데, 그 때마다 서울이란 곳은 이렇게 밤에도 밝게 빛이 나고 집도, 아파트도 많은데, 나는 왜 아무것도 없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그 때에 비해서는 매우 좋아졌지만 여전히 서울, 그리고 강남이라는 벽은 여전히 높다.
회사에는 부장으로 마무리를 하지만, 원베일리, 올림픽파크포레온 등의 아파트를 퇴직 무렵에 대출없이 현금으로 완납하고 자가입주를 하면서, 노후도 준비가 탄탄히 된, 그래서 제2의 인생에도 자신감이 넘치는 선배도 있다.
한편 회사에서는 임원으로 마무리를 했지만 재테크를 신경안썼는지, 아직 자가가 완벽하게 준비되지 못했고, 임원으로 퇴임했음에도 여전히 일거리를 찾는 선배도 있다. 물론 임원이면서 재테크도 성공해서 여유넘치는 선배도 있다.
문득 10년 뒤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이 들면서 서늘한 두려움과 긴장감이 같이 몰려왔다. worst는 부장으로 회사를 마무리하며 노후가 준비 안된 것이고, Best는 임원을 하고 노후도 탄탄한 것일 것이다. 회사에서 임원이 된다는 것은 업무능력과 또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내 노력으로 일굴 수 있는 것은 노후를 탄탄하게 준비하는 것이다. 2nd Best는 부장으로 은퇴하지만 노후가 탄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서늘한 긴장감 때문인지 아침 지하철에서도 잠이 오질 않는다. 밀리의 서재를 열어 '배당주 투자의 정석'이라는 책을 정독했다. 직장인으로 현금흐름이 있을 때 자금을 불려주는 최선은 주식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엠제이, 지난 주말에 사전점검 갔는데 아내가 너무 좋아하더라고. 그래서 가구, 가전 싹 바꾼다길래 그냥 카드 줬더니 몇 천만원을 막 쓰네. 이제 어디 이사가지도 못하겠어."
라며 쿨하게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완샷 때리고 사무실로 가시는 은퇴한 부장님의 뒷모습이 왠지 가볍게 느껴졌다. 그리고 돌아서며 남몰래 '화이팅 엠제이'를 외치게 되었다. 여전히 우리 팀은 연중 바쁜 팀 답게 바쁘게 돌아가지만, 일에 파묻혀서 나를 놓치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을 계속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