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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유니버스 Dec 30. 2021

미래를 걷는 아이

현재에 충실할까? 미래를 준비할까?

주말 아침 식탁에 온 가족이 오랜만에 모였다. 주말이면 더 일찍 일어나는 아이들과 냉장고 털기를 하며, 각종 식자재와 평일에 남은 음식들이 식탁에 오른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근데 우리 오늘 점심은 뭐 먹어요?"


아내는 이런 아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제 아침을 막 먹었고, 배도 부를 텐데 웬 점심 걱정이냐며 핀잔을 준다. 하지만 그런 아이를 나는 이해할 수 있다. 아침을 먹었으니 이제 점심, 저녁이 고민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에 살지만, 늘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녀석과 밖으로 나간다. 자전거를 엘리베이터로 끌고 오더니 문이 열리면 뒷바퀴부터 밀어서 탈 준비를 한다.


"아빠, 왜 내가 자전거를 뒤부터 타는지 알아요? 이따 내릴 때 앞으로 편하게 내리려고 그래요."


오~ 어린 녀석이 이런 치밀함을 갖추고 있다니, 여전히 아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뿌듯하면서도 대견하다.


식당, 마트, 상점 등을 방문할 때 주차를 여간 신경 쓰는 게 아니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이기도 하고 주차도 중요하지만, 쇼핑을 하거나 식사를 마치고 편하게 차를 빼서 집에 가는 것이 빨리 입장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쉽게 머리를 디밀어 전면 주차하기보다 그래서 조금 불편하더라도 후면 주차를 하고, 후면 주차 때도 나가기 편한 곳을 굳이 찾아서 한다.



당장 눈앞의 현실보다, 다가올 미래를 고민하고 걱정하고 준비하는 것은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늘 무언가 고민하고 계획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닭고기를 먹었으니, 점심에는 야채를 많이 먹어야겠다느니, 마트에 가면 지하 3층 G 구역이 주차 및 짐 싣고 나가기 편하며, 혹시 거기가 만차인 경우는 그 옆 S19나 X19 구역으로 가야 편하다는 둥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한 불편함과 생각들이 많아진다.


'아 몰라. 우선 그냥 지금 편한 대로 해야지.'


라고 휙 지나칠 수도 있는데 나와 아이는 왜 그런 것일까? 태생의 어떤 불안함이 내재되어 있는 것일까?

매우 아름답게 이걸 포장하자면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을 싫어해서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자세하지는 않지만 결과에 대한 불안감을 많이 가지고 살았던 것 같다. 그래 봤자 주로 성적이겠지만.. 그런 탓일까? 현재가 조금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얼마 뒤 또는 미래에 벌어질 일들이 '예정된 결말'로 이어지는 선택을 많이 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성향이 더 강해진 것은 매우 보수적이고 작은 실수도 잘 용납되지 않았던 어떤 부대의 지휘통제실에서 군생활을 했기 때문이기도 한 거 같다. 업을 훈련으로 삼았던 부대이다 보니 횟수는 엄청 많았고, 그러다 보니 이른바 시뮬레이션도 무지하게 했다. A일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A' 일 때는? 그러다 B가 되면? '예정된 결과'가 좋기를 늘 맘 졸이며 있다 보니 지금이 조금 불편한 건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느꼈던 듯하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도 지금에도 아내로부터 자주 듣는 말은,


"현재를 오롯하게 즐기지 못해."


무엇이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에 에너지를 쏟을 것인가, 곧 벌어질 미래의 어떤 일에 대해 미리부터 걱정하고 준비하느라 현재의 즐거움의 힘을 조금 아낄 것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21년의 12월 마지막 즈음의 추운 어느 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오늘을 살지 못하고 다가오는 22년의 첫날이자 주말인 1월 1일에... 아침 일출을 보러 가야 하나? 추운데 그냥 영상으로 더 이쁜 일출을 볼까 고민하고 있는 나를 보니, 내 안에는 이미 정답은 있는 거 같다. 굳이 나를 바꾸려고 애쓰지는 말아야겠다.


지금 이런저런 고민이 많지만, 아이들도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미래에서 온 아이처럼 의연하고 능숙하게 대처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 같다. 아내는 여전히 동의하지 않겠지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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