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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유니버스 Nov 29. 2021

모든 것엔 '순서'가 있었다.

요리를 하며,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느낀 것

주말이면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아빠 레스토랑의 VIP가 된다. TV 속엔 백종원, 이연복이 '요리 참 쉽죠잉~~~' 하면서 어려운 요리들을 뚝딱뚝딱 만들어 낸다. 자연스레 출퇴근하며 보는 유튜브 구독 채널에 요리 관련 채널이 그래서 한 두 개씩 늘어난다.


"이번 주는 이연복 채널에서 본 자장면과 김치볶음밥입니다."


기세 좋게 선언을 하고 재료들을 하나씩 준비한다. 양파, 호박, 파, 당근, 잘 익은 김치, 돼지고기 목살, 그리고  마트에서 파는 자장라면. 레시피를 다시 한번 찬찬히 영상으로 보며 공격과 수비를 겸비한 멀티 플레이처럼 두 개 요리를 준비한다.


상상 속에서 요리를 시작해 본다. 맨 처음 파 기름을 내서 볶다가, 양파와 돼지고기를 잘 구워준다. 생각보다 식용유가 충분히 들어가야 프라이팬에 들러붙지 않고 나중에 면과도 잘 비벼진다. 고기가 어느 정도 익었을 때 호박, 당근을 넣어 휙휙 잘 볶아준다.


'자장면은 이렇게 잘 삶은 면발을 볶아진 고기/야채에 넣고, 자장소스를 풀어 비벼주면 끝나는데, 김치볶음밥 은?'이라는 생각에 잠시 머뭇한다. 볶아진 고기/야채를 접시에 약간 덜어두고, 김치를 먼저 볶고 밥을 넣고 야채와 또 볶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아 라면 삶을 물을 먼저 끓여야 하나? 아니면 볶음밥을 먼저 하고 나중에 면을 삶아야 하나?' "아빠 배고파요!"라는 VIP 님들의 응원을 받으며 시뮬레이션을 마무리하고 다시금 순서를 생각한다.

 

다시 곱씹어보니 물을 먼저 끓였다면 볶음밥이 되기 전에 자장 라면만 되고, 아이들은 먹고 있겠지만 나는 화구 앞에서 땀을 흘리고 있을 뻔했다. 나의 자장 라면은 전날 과음한 내 얼굴처럼 퉁퉁 불은 면과 차갑게 식은 고깃덩어리를 나에게 내어줬을 것이다. 고기와 채소를 먼저 다 볶고, 붉은 김치가 먹기 좋게 알맞게 익어갈 즈음 물을 끓여 나도 VIP도 행복한 식사시간이 되도록 자장 라면과 볶음밥을 같이 완성시킨다.  


깨끗하게 비워진 자장 라면 그릇과 "아빠 짱!"이라는 아이들의 칭찬에 괜히 흐뭇하고, 시뮬레이션을 해보며 요리 순서를 바꾼 내가 요리에 감각이 좋은 건가, 요령이 좋은 건가~ 어쨌든 뿌듯하다. 옆에서 아내는 "아, 그렇게 간단한 거 하면서 뭔 이런 소란이냐?"라고 하지만 어쨌든 해낸 거다.

 


금융회사라 '보안'이 매우 매우 중요하다. 아침에 사무실 자리에 앉아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컴퓨터를 켜고 보안 비밀번호 또는 안면인식을 통해 로그인을 하면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컴퓨터가 켜진다. 그 뒤 인터넷에 접속하고 사내 인트라넷망에 접속하기 위해 또다시 아이디/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핸드폰으로 오는 승인 문자에도 답을 한다. 그렇게 지난한 로그인 과정을 거치면 인트라넷 망에 접속을 하고, 인트라넷에서 업무용 폴더에 접속하기 위한 비밀번호와 몇 가지 보안 프로그램들에 다 접속을 해야, 마침내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이처럼 보안이 곳곳에 있으니, 간혹 사내 인트라넷에서 작업한 PPT 파일을 옮겨야 할 때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사내 인트라넷에서 작업한 모든 파일은 보안 파일로 저장이 된다. 보안 프로그램이 깔려있지 않은 인터넷 컴퓨터에서는 아예 파일이 열리지 않는다.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컴퓨터에서 줌을 이용해 외부 클라이언트와 화상회의를 하기로 했다. 예전 같으면 회의실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잘 출력된 자료를 놓고 조금 서늘한 오후에 온기를 불어넣어 줄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같이 들이키며 면담을 했을 텐데, 코로나 19 이후로는 서로를 위해 '가상'으로 만난다.


'사내 인트라넷 PC에서 만든 PPT 파일을 화상회의를 하며 같이 보면 되겠네.'라고 매우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인트라넷에서 만든 파일을 인터넷에서 보려면 우선 보안을 해제해야 하며, 이는 보안담당자에게 구구절절이 설명하여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 뒤 보안이 해제된 파일을 파일 전송 시스템 승인을 통해 외부 반출을 해야 한다. 이 역시 보스급의 사전승인이 필요하다.


처음 몇 번은 파일 전송 시스템에서 승인을 받고 외부로 보내면 보안이 해제되는 줄 알았으나, 순서가 틀렸다. 외부로 나온 그 파일은 보안 파일이라 열리지 않는 자물쇠일 뿐이다. 그래서 순서와 시뮬레이션이 중요하다. 마침 보안담당자와 보스가 주변에 있어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시간 안에 파일을 무사히 팝업 하고, 클라이언트와의 미팅도 무사히 마쳤다.




존경하는 CEO가 예전 술자리에서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려운 상대를 만나는 미팅 자리나 중요한 발표가 있으면, 며칠 전부터 그 미팅과 발표장을 시뮬레이션해본다. 눈을 감고 미팅 장소의 탁자, 발표자의 발표자 마이크의 차가운 감촉까지 미리 생각해본다. 그리고 내가 준비한 자료를 하나씩 풀어가며 이야기 예행연습을 해봐.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서야. 모든 것이 계획대로 물 흘러가듯이 잘 진행되고, 그 속에서 나는 원하는 것들을 다 얻어가는 그런 순서 말이야. 그런 순서가 잘 서있어야 일의 끝이 보이고, 그 속에서 '자신감'있게 일을 마무리한 내가 있지."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되게 되어 있어!"


오늘도 나는 좋은 직장인, 좋은 아빠라고 생각하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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