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엠제이유니버스 Oct 29. 2021

친절히 모셔야 하는 세상

치맥이냐, 파전의 막걸리냐 와도 같은 고민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가 스타벅스의 배경음악처럼 깔려있는 오전 사무실에 전화벨이 울린다. 네 자리 단축번호. 보스다. 어제 퇴근하며 이번 주에 심의해야 할 건의 Report를 전달했으니 아무래도 그 건인 것 같다.

"엠제이, VaR와 TVaR의 정의나 계산식이 report에 있나?"


금융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것도 극단의 변동성 또는 충격이 오냐 마냐에 따라 이익이냐 손실이냐가 결정되는 그런 회사. A와 B 두 개 중에 B가 왜 더 좋은 선택지인지를 이리 보고 저리 설명했던 Report라 그런 논리에 대한 질문/답변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용어의 개념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어진 보스의 이야기,

"우리는 심의하는 위원들과 같은 고객에게 주는 Report는 매우 매우 친절해야 해. 시작부터 끝까지......"


친절이라.... 보스와 같은 심의위원이자 젊고 친한 P팀장과 점심을 먹으며 오전 일을 이야기했다.

"음.. 너희 보스 말이 맞아.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가 편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결론을 내고 싶어 하지. 나도 세세하게 설명 듣고 질문/답변하기 전까지 늘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들이 있어."라는 명쾌한 해답.


함께 일하는 파트원들은 실무자의 눈으로 디테일하게 세세한 내용을 작성하고, 나는 파트장 정도의 시선으로 거기에 살을 얹거나 빼고 있었고, 이 정도면 훌륭한 뷔페 음식점처럼 잘 차려진 밥상이라 자평했다. 그러나 보스들은 심의위원회를 해야 하기에 그들의 시선과 방식으로 해석하고 결론을 내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뷔페에서 보스별로 가장 선호하는 한두 접시를 준비하는 센스가 없었던 것이다.


오늘 퇴근하고 다 같이 치맥 피맥 뭐가 좋을까를 고민하는 보스에게~ 뿌링클 치킨 교촌치킨 멕시칸 치킨, 아니면 요 근처 무명의 치킨집과 같은 디테일만 줄줄이 나열하고 있었으니 '친절'하지 못했음이다.


퇴근을 했다. 아들 녀석이 수학 문제집을 놓고 끙끙대고 있다. 도형 각도 문제인가 보다. 각도기를 이용하여 90도를 그려보라는 질문에, 손으로 대~ 충 두 선을 교차하게 그려놓고 그 옆에 "요 정도?"라고 답을 써놓았다.

초 대략 난감. 문제집의 맨 앞부분 설명부터 찬찬히 읽고 하나씩 짚어갔다. 아이의 방에서 각도기, 스네이크 큐

브, 네모 블록 등등 총동원해서 한참을 이것저것 만들어보고, 이리 비틀어보고 저리 돌려보고 하더니 그제야 문제집의 문제들을 휙휙 풀어제낀다.


"아. 역시 아빠는 친절해요. 아빠랑 공부해서 이제 다 알았어요." 란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움직일 사람들의 눈높이에 철저히 맞춰야 하는 것이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친절히 모셔야 하나 보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미래를 걷는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