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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유니버스 Jan 04. 2022

올해는 달라질 수 있을까?

나는 하루키처럼 오래 꾸준히 달릴 수 있을까? 

평년보다 그다지 즐겁지 않고, 그런데 이런 저런 일이 많았던 21년 12월을 보냈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며 그래도 책을 조금씩이라도 읽어보자는 생각을 하니 어느새 사무실, 집 책상 옆에는 늘 책 두어권이 중간쯤 읽힌 채로 덮어져 있다. 주로 경영/경제서적을 많이 읽지만, 12월에는 문득 하루키의 책을 읽고 싶어졌다. 


소설보다 달리는 그의 등짝이 궁금해서 읽게 된 책 (by 커피와 책 취향노트 블로그에서 퍼옴) 


한 7~8년전 쯤인가? 지금은 회사를 떠나 미국에서 일을 하고 있는 P가 있었다. 그나 나나 직장인 표준체형으로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4-5시쯤 과자와 초코렛을 찾는 그런 아재들이었다. 그런 P가 어느 날 이 책을 건네주었다. 


"엠제이, 나 얼마 전부터 달려서 출근하고 있어. 힘은 좀 든데 서울이 은근 달리기가 좋네." 


라는 말을 남기며. 매년 새해마다 하는 New Year's Resolution인가 보다 하고, 그가 준 책도, 그의 달리기도 별 관심없이 1월이 지나갔다. 그런데 P는 3월이 되어도, 여름이 되어도 계속 달리고 있었고 양복바지가 점점 헐렁해지고 있었다. 그런 P가 또 어느 날...


"엠제이, 난 회사 휴직하고 미쿡으로 공부하러 갈거야. 행운을 빌어줘" 


라는 폭탄선언을 했다. P의 명석함과 자유분방함이 회사와 맞지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런 식의 떠남일 줄이야. 그렇게 P가 떠나고 책꽂이에 저 책이 그대로 있었다. 뭔가 달리고 싶은 유혹을 하는 하루키의 등짝과 함께



1978년 4월 1일 오후 1시반 전후 (날짜와 시간을 기억하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진구 구장의 외야석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며 야구를 보다가, 1회말 선두타자가 좌측방향으로 안타를 치고 2루를 밟았을 때 '그렇지, 소설을 써보자.' 라는 생각을 떠올렸다는 하루키. 소설가가 되어야지 하는 야심보다는 뭔가를 써야겠다 라고 생각했던 그의 삶이 바뀐 것은 그 선택 이후부터였을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쓰게 된 하루키가 달리기까지 하는 것은 글쓰기를 규칙적으로 하려면 건강함과 규칙적인 운동이 필요했기 때문이며, 달리기가 가장 주변에서 쉽게, 이런 저런 장비없이도 할 수 있는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키의 삶에 달리기 (한 동안은 철인 3종 경기)가 스며들어, 그는 마라톤의 발원지인 그리스의 그 마라톤 경로를 한여름의 뙤약볕에서 완주하기도 하고, 묘비명으로 작가(그리고 러너)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라고 할 정도로 그의 삶과 달리기는 궤적을 같이 하게 된다. 


21년 겨울, 각종 경영경제서적, 자기계발서들 뒤에 있던 이 책을 책꽂이에서 왜 꺼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갑자기 P가 그리워서도, 달리기를 하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매일 매일 별 거 없는 내 일상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자각인지, 아니면 한계를 뛰어넘어 목표를 하나씩 올려가는 인간 하루키의 어떤 '끈기'를 배우고 싶었는지 다시금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다. 그렇게 12월 출퇴근 길에 읽고 줄도 치고, 또 읽어보고는 했다. 


그렇게 22년, 검은 호랑이 해가 밝았고..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진작에 다 읽었지만, 내가 22년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계속 곱씹게 되었다. 


매년 새해 다짐에 빠지지 않는 것이, 올해는 0키로 살을 빼자. 책을 0권 읽자..이런 거였는데... ... 올해는 거기서 더 나가서 실제 행동들 위주로 생각을 해봤다. 살을 빼긴 위한 루틴 또는 습관으로, 간헐적 단식과 회사에서 계단 걸어 오르기, 공복에 아침운동 등등 말이다. 12월에 책을 한참 읽으며 생각하고, 하나씩 루틴으로 추가하다 보니 그래도 나름 균형잡힌 하루를 보내는 느낌이다. 


아직은 달리기보다는 수영이나 농구가 좋고, 한계를 뛰어넘기보다는 느긋히 주변 풍경을 보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먼가 올해는 달라질 거 같은 느낌이다. 지금도 미국에서 검게 그을린 얼굴에 달리기를 즐기는 P 를 다시 만날 때에 나도 그에 못지 않은 어떤 인간이 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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