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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유니버스 Mar 28. 2022

비밀번호가 말해주는 것

생활 속 작은 것부터 목표에 집중하기

바야흐로 골프 시즌이 시작되었다. 잔디가 초록초록하진 않지만 기온도 적당하고, 그린도 녹아서 공도 통통 튀지 않는, 그래서 운동할 조건이 되는 그런 시즌이 되었다. 동계훈련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겨울 열심히 운동을 했다 (생각해보니 이게 살이 빠진 이유일지도 모른다) 일주일에 4,5번 단지 안 골프연습장이 문을 여는 6시에 줄을 서서 한 시간 조금 안되게 연습을 하고, 집에 와서 씻고 출근을 하는 겨울 생활이었다.


"근데 아빠 골프 선수 될 거예요?"


라는 아이의 허를 찌르는 질문. 거실 한 구석의 스윙연습기, 퍼팅매트 등 장비가 하나 둘 들어올 때마다 아내와 아이들은 한심하다는 듯 시선이 느껴졌다. 긴 겨울동안 이른 아침의 골프연습, 가족들이 잠들고 난 뒤 거실에서의 빈스윙은 일종의 도피처였다. 회사 일이 힘들고 때론 짜증나도 골프만 집중하는 그 시간은 재미있었기 때문에... ...


회사에서 보스, 동료들도 겨우내 잠시 하고 멈출 줄 알았던 운동을 계속 하는 내가 신기했던 모양이다. 늘 일에 치이고 보스들의 많은 요구에 허덕이지만, 이번 겨울은 그래도 운동을 하며 버텼던 거 같기도 하다.


"오, 엠제이, 겨울에 운동 열심히 했다며? 운동 한 번 가야지?"


라는 보스, 동료들의 친절한 오프에 내심 기분도 좋으면서, 걱정이 큰 게 사실이었다.

'긴 겨울 동안 연습을 했다면서 왜 이렇게 못 치는거야?' 라는 평가를 받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22년의 첫 라운딩은 그렇게 실패와 긴장, 그에 따른 좌절로 이어졌다. 대체 난 뭘 연습할걸까?

지난 주 내내 아이언을 연습하고 나왔는데, 아이언샷이 이리 망하면 어떡하라는거냐?


첫 라운딩을 마치고, 동반자였던 고수에게 물어봤다. 무엇이 문제인 거 같냐고... ...


"음, 빈스윙은 매우 좋던데, 막상 공을 칠 때 힘을 너무 뽝 주던데!! 그거 되려면 몇 년 걸린다.

욕심부리지 말고 그냥 니 스윙 템포만 믿고 스윙해봐."


생각해보니 그랬다. 나는 샷이 잘 안 될 거 같은 걱정이 앞섰지, 연습 때 꽤나 잘 쳤던 좋은 스윙들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있었다. 생각하는대로, 말하는대로 되는 거라는데, 안 맞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하니 안 맞는거다.

내가 갑자기 필드에 나가서 프로처럼 매우 잘 치는 스윙을 할 리는 만무하고, 나는 지금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샷을 치는 것이 나의 베스트였던 거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를 늘 그리면서 스윙을 했어야 했다.



안 될 것에 대한 걱정보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의 Best Shot ! 그게 바로 내가 노릴 것이었다. 인터넷에 유명한 한 부자는 자신의 단기목표를 이룰 때까지 본인의 집중력을 거기에 쏟고, 그래서 모든 비밀번호도 목표에 집중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12월까지 70Kg의 몸무게가 목표라면 비밀번호가 1270. 달성될 때까지 그 번호를 쓴다고 한다. 그리고 그 번호를 누를 때마다 목표를 상기하며 그 목표를 이루는 아름다운 결말이다.


올해 두번째 라운딩, 긴장되기는 매한가지였으나 저번보다는 마음이 차분한 상태다.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챙기며 락카 앞에서 네 자리 비밀번호를 누르려는데 문득 부자의 생각이 났다. 평소에는 내 생일, 아이 생일, 아내 생일 등등 상상력을 발휘했으나, 오늘은 내가 이루고 싶은 스코어의 목표를 넣어보기로 했다.


목표는 원대하게, 꿈은 크게가 정석이나 현실성있게 하고 싶다. 18홀에 매우 매우 잘 친다면 85타. 싱글 플레이어들이 보기엔 우스운 스코어겠지만 백돌이 초보에게는 꿈의 숫자이다. 조심스레 그러면서도 야무지게 1885를 비밀번호로 입력하고 스스로 파이팅을 외쳐본다.


85타 이하를 쳐서 '정말 생각하고 말하는대로 되잖아.' 라는 해피엔딩이었으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현실에는 그런 영화적인 요소가 별로 없었다. 비록 스코어는 딱 90이었지만 달라진 것은 샷 하나 하나를 대하는 태도라고 할까? 스스로 스코어에 당당해지고 싶기에 치기 어려운 러프여도 그 상태로 치고, 샷 하나에 집중력이 올라간 기분이었다. 드라이버도, 아이언도, 퍼터도 모두 '연습때처럼 잘 치고 잘 될꺼야' 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


꽃피는 봄날의 라운딩에는 1884, 1883 점점 비밀번호가 작아지면 좋겠다. 당분간 1888을 깨는 것에 최선을 다해보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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