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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유니버스 Mar 31. 2022

칸트적인 삶은 어려워... ...

반복적인 일상에서 습관과 루틴을 바라보며

복장과 스타일이 매우 멋지나 약간 통통했던 보스 D. 가끔씩 맥주 한 잔, 위스키 한 잔 기울이며, 회사 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다. 코로나로 인해 함께 하는 자리가 줄고 약 1년 반여만에 그와 점심 식사를 같이 했다. 내 기억 속의 통통함은 사라지고 날씬하고 각잡힌 건강한 모습의 D가 있었다.


"20년에 건강검진했는데 성인병 관련해서 안 좋은 건 죄다 나왔어. 코로나라 좀 줄었지만 국내 영업 기본이 술이고, 실적 스트레스 이런 것 때문에. 근데 그냥 일에 치여서 그런가 보다 하다가 어느 날 새벽에 일찍 깬거야. 가만히 소파에서 멍~ 때리다 '그래. 한강을 한 번 달려보자.' 라고 생각을 했어."


"D, 그런데 달리기 안 좋아하시잖아요?"


"그렇지. 그래서 처음엔 그냥 집에서 대충 입는 트레이닝복에 신발장에 있는 운동화를 신고 나갔어. 물론 처음엔 안 뛰었..아니 못 뛰었지. 그렇게 1시간 정도 뛰다 서다 걷다 노래듣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출근을 하는데 갑자기 좀 뿌듯하더라."


"뿌듯이요?"


"음, 뭐랄까? 하루를 굉장히 잘 시작했다는 느낌이 들었고 사무실에서 받던 짜증과 스트레스도 없이 좀 평온해져서 출근을 했다 해야 하나, 암튼 그런 기분. 그래서 그 날은 생산성이 굉장히 좋았어"


"아... 그 뒤로 어떻게 됐어요?"


"지금 1년 6개월째 운동하고 있고, 신발장에 조깅화만 벌써 몇 켤레인지 몰라. 그런데 신기한 건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비가 오나 맑으나 달리다 보니 그 시간대에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이 보이더라고. 처음엔 서로 데면데면했는데 이제는 서로 인사도 하고, 안부를 묻기도 하고 어쩌다 안 보이면 무슨 일일까 궁금하기도 하다니까."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산책해서 사람들이 그를 보고 시간을 알았다던 칸트처럼, 같은 시간에 지속적으로 같은 일을 하느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매일 루틴을 가지고 조깅이나 수영을 하고, 원고지 약 20매의 글을 일과처럼 쓰는 하루키가 그래서 대단한 것 같다.



매일 지하철을 타고 출근한다. 커다란 베낭에 다이어리, 책, 전자책을 넣어서 다닌다. 출근길 지하철은 몇 시에 타느냐에 따라 쾌적함이 달라진다. 5분 정도 차이로 지하철의 혼잡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내가 타는 곳은 출퇴근 시간엔 앉아서 오기는 불가능하다. 기대하는 것은 5개 정도 역을 지나 있는 환승역에서 내리는 사람의 자리이다. 덜컹 덜컹 서서 가는 지하철에서 내 앞에 앉은 누군가가 환승역에서 일어나면 그렇게 기쁠 수 없다.


그래서 가급적 같은 칸, 같은 위치에서 같은 시간대의 지하철을 타서 관찰을 하기 시작했다. 칸트적인 마음으로.. 같은 시간, 같은 칸에 늘 앉아서 타고 가다가 환승역에서 내리는 사람이 누군인지... 그렇게 1~2주일을 관찰해서 마침내 찾아냈다. 얇은 패딩을 입고 배낭을 무릎에 올려두고 앉아 계시는 아저씨.


그렇게 만원 지하철에서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았고, 아침 출근길에 편하게 책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아저씨도 100% 칸트도 아니었고, 나도 늦잠도 자기 때문에, 아저씨를 만나지 못하는 날에는 여전히 매의 눈으로 누가 내리나 서서 힘겹게 찾고 있다. 칸트적인, 하루키적인 삶이 이래서 어려운 거겠지만, GRIT 이라는 책에 나온 것처럼 '의식적인 연습' 또는 '의식적인 변화 추구'를 해야 나의 출근길은 더 편해질 것이다.


이래서 모름지기 직장인은 회사에서 가까이 사는 '직주접근'인가 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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