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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유니버스 Mar 16. 2022

뚱뚱함과의 결별

다시 날렵해질 수 있을까?

"키 184, 몸무게 82, 현역 임관 가능."


ROTC 4학년을 마칠 무렵, 장교로 임관하기 전 마지막 신체검사에서 받은 기록표였다. 고등학교 때 무척 좋아해서 교과서나 학습지는 구석에 쳐박아도 절대 책장의 한가운데를 놓치지 않았던 슬램덩크, 그 속의 캐릭터 중 한 선수의 키 184에 몸무게 78, 그리고 구리빛 검은피부를 닮고 싶어했다. 미대를 희망하는 고등학교 친구에게 반팔 체육복을 건네주며 등판에 그의 캐릭터를 매직으로 멋지게 그려달라 했고, 그걸 입고 운동을 했다. 체육복에 낙서했다고 선생님들께 꿀밤도 몇 대 맞았지만 괜찮았다. 비록 꿀밤을 맞았지만 나도 슬램덩크 속 그 캐릭터처럼 뛰고 더 높이 뛸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체중이 82 정도였고, 그 몸무게는 신기하게도 대학교 졸업 때까지 유지되었다.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그래도 양구보다는 낫자나...라고 불리우는 그 곳 양구에서의 군생활 중에도 역시 살이 찔 틈은 없었다. 야근도 많고 앉아있는 시간도 많았지만, 이 놈의 양구의 부대는 거의 매주 야외로 훈련을 나갔기 때문이다. 


물오른 복어처럼 살이 오른 것은 첫 직장인 은행원 시절. 오전 8시가 조금 넘으면 출근해서 빨라야 저녁 7시,8시까지 거의 12시간을 앉아 일하는 행원. 가끔 청경과 외부의 CD기에 현금을 넣고 가지러 가는 것이 유일한 운동이었고, 야근을 하면 야근한다고 밥을 시켜먹고, 어쩌다 일찍 일이 끝나면 일찍 끝났다고 선배들과 술한잔하고, 거래처랑 약속이 잡히면 또 회식하고... ... 


그래도 그 시절 살이 덜 찐 건, 아마도 사무실이 있던 서대문에서 청계천을 지나 집이 있던 동대문 부근까지 왠만하면 걸어서 퇴근했기 때문이리라. 그냥 그렇게 걸어서라도 퇴근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단 생각이 그냥 들었던 거 같다. 막 정비되었던 당시 청계천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아무 생각없는 직장인이 걷기에 최적이었다. 


그렇게 2년 여의 행원생활을 마무리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용기였는지, 사표를 쓰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지갑은 가벼워졌지만 태어나서 수학공부를 고3때보다 열심히 하고, 하~ 필 2008년 금융위기를 그대로 뒤집어쓰면서 살이 찔 틈이 없었다. 밤을 세서 퀴즈공부하고, 떨어지는 주식에 상심하던 힘든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은행 그만뒀어요?"

"네, 은행은 금융을 배우고 쓰기 위해서 갔는데, 매일 펀드, 보험, 카드가 저라는 실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들들이 퇴사한 이유랑 같네요. 정직한 답변 감사합니다"


막상 글로 적고 보니 온화하지만, 지금 회사 면접 당시는 그렇게 부드럽지만은 않았다. 첫 취업 당시 꽤 괜찮은 대우와 주변의 좋은 평가가 있던 은행을 퇴사하고 다른 회사로 가는 만큼 타 금융회사에서 나를 보는 시선은 수가 틀어지면 또 그만둘 것 같은 사람이지 않았을까 싶다. 심지어 대졸 공채가 대다수인데, 거의 4년여 경력이 있는 늙은 신입이었기 때문에 더욱 고민했을 거 같다. 


그렇게 입사를 하고, 무얼했는지 2010년대는 순삭돼고, 2020년 가을 건강검진 결과를 보니~ 키 186 몸무게 88~ 근육은 줄었는데 지방이 그 자리를 차지한 순대같은 몸이 되어 있었다. 아몰랑. 밤늦게 맥주 한 캔에 영화도 보고, 좋아하는 꽃게랑도 아이들이랑 먹으니 21년 가을에는 태어나서 처음 본 90 이상의 수치...거울 속의 나는 턱살과 늘어진 뱃살로 후덕한 아저씨의 전형이었다. 정장 바지를 입어도 나온 배 때문에 아래로 흘러내리는 그런 ㅠ


'이건 코로나 때문일거야. 못 움직였으니 당연하지.'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에 나는 이미 뚱뚱했다. 그런데 마트 행사에서 쟁여놓은 와인 한 잔은 여전히 달콤했고, 꽃게랑은 너무 맛있었다. 


"엠제이, 오랜만에 봤는데 얼굴 좋아졌네. 요즘 일할만한가보지?"


라는 보스들의 말들도 자극이었지만, 살을 빼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그것은 아니었다. 


21년 12월 7일, 거리두기로 인해 정말 오랜만의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했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간헐적 단식을 한 번 해볼까? 16:8 이면 저녁 8시까지만 뭘 먹고 낮 12시까지 안 먹으면 되는 건데, 아침은 샌드위치를 주로 먹으니, 그거만 참아보면 가능하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탁 위 반쯤 남은 와인병과 서랍장 속의 과자들이 날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단호한 결의나 '그래 결심했어'같은 비장함은 우선 없었다. 


그냥 굉장히 담백하게 내일부터는 아침을 먹지 말자가 시작이었다. 여기저기 인터넷 서치를 해보니 공복 기간 중엔 0칼로리의 아메리카노와 보이차 정도는 괜찮다고 했다. 이럴 때를 위해 갖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사무실 내 책상엔 보이차 세트가 있었다. 예전 보스가 보이차를 좋아해서 선물해준 그것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는 '아 배고픈데' 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보이차를 홀짝 거렸다. 칼같이 지킨 건 저녁 8시 이후 금식이었다. 대신 점심과 이른 저녁은 별 제약없이 먹고 싶은 거 다 먹었다. 8시부터는 못 먹는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점심 저녁을 먹으니 버틸만 했다. 


코로나가 재확산되며 저녁 약속도 거의 없거나 매우 간단히 진행되었기에 8시면 사라질 나의 먹깨비 시계는 정상 작동에도 무리가 없었다. 간헐적 단식하는 티를 내지 않아도 8시 이전이면 '먹음'이라는 행동은 끝났기 때문이다.  와인도 맥주도 며칠 손대지 않으니, 밤 8시 이후에도 먹고 싶은 욕구가 별로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졸음이 몰려와 아이들과 함께 일찍 자게 되고, 그 덕에 새벽 5시면 일어나게 되었다. 


빈 속에 커피를 마시면 안된다는 생각에 디카페인 커피를 새벽마다 내려 마시고 일찍 일어난 김에 책도 보고 하루를 길게 보냈다. 예전처럼 농구를 몇 시간씩 한다거나, 런닝머신을 한시간씩 뛴다거나 하는 특별함 없이 2개월이 흘러갔음에도, 나도 못 느끼는 사이 체중은 84까지 내려왔다. 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인 건 아침 출근시, 사무실에서 오전/오후 1번씩 계단을 10개층 정도 걸어 올라간 정도였는데 신기했다. 그 덕에 벨트 맨 앞 칸에 겨우 끼워지던 뱃살들이 한 칸, 두 칸씩 뒤로 물러갔고. 아이들은 아빠가 턱선이 생겼다고도 한다. 


'오, 이게 정말 된다고? 되는구만.' 싶은 생각이 들며, 이제는 3월말까지 목표를 82키로로 잡았고 거~~~의 다 와간다. 그 다음은 몇으로 목표를 삼을까? 슬램덩크 캐릭터의 그 78키로에 한 번 도전해볼까? 인바디는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이제는 근육량을 좀 늘리고, 거북목을 교정하고 허리를 쭉 펴는 바른 자세를 만들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커다란 계기도 없었고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었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꾸준하면 된다.'이다. 내년 이맘때까지 잘 유지할 수 있겠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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