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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유니버스 Jul 30. 2023

두 명의 30년

어떤 회사생활이 좋은 것일까?

"6월 30일자로 나는 졸업한다. 남들은 퇴직이라고 얘기하지만... ...

지난 30년간 한 회사만을 쭉 다녔고, 그래서 정든 골목골목이 그리울 거 같긴 하다.

이제는 이 근방에 나올 일이 얼마나 있을지... ..."


30년 근속을 마치고 퇴직하는 선배와의 저녁 식사였다. 막판 1,2년 임원 승진이 되느냐 마느냐로 사투를 벌이지 않고 일찌감치 30년 근속 후 부장으로 퇴직을 결심했던 그였기에 얼굴도 평온해 보였다.


"한 두가지 아쉬운 점은 남아. 직장생활 하는 누구에게나 비슷할텐데 기회가 오거든. 나를 버리거나 희생하면 위로 올라갈 것만 같은 그런 기회. 나한테도 그런 타이밍이 있었는데... ... 나는 머 그냥 내 생긴대로 했다. 그러다 보니 혹시 만약 그 때 내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는 조금 생기더라. 그것도 최근에 시간이 많아져서 생각할 시간도 있고 하니 알게 된거야."


샤프함보다는 투박함이, 명석함보다는 꾸준함이 무기였던 그. 소주 몇 잔에 얼큰하게 취하고서는 두 손을 꼭 쥐고 이야기한다.


"이제 나는 인생의 2막이 곧 시작이야. 2막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는 가족, 특히 아내야. 둘이 대화도 많이 나누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도 잘 고민했다. 그래서 은퇴해도 별 걱정이 없어. 한가지 다행인 것은 승진이나 자리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내와 자식들이랑 관계가 좋다는 거지."


'평온하고 여유로운 것은 교육계에 근무중인 아내와 함께 30년간 차곡 차곡 연금을 모아서 노후가 걱정없기 때문에 그렇자나요.' 라는 사족은 굳이 덧붙일 필요도 없었다.


여전히 새 것 같지만, 이제는 직장인이 아니기에 활용도가 낮아 보이는 가죽 서류가방을 들고, 젊은 느낌이 나는 스니커즈를 신고 손을 흔들며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꽤 오랜 시간 지켜보았다. 자리와 승진에 연연하지 않고, 본인만의 페이스로 본인 스타일의 직장생활을 말 그대로 졸업한, 그의 모습을...




"XXX 상무님 자리가 이쪽인가요?"


쉬지 않고 화분들이 배달된다. 그를 아는 거래처, 중개사 등등에서 이어지는 축하인사 행렬이다.

어느새 그의 방 앞은 형형색색 리본이 달린 화분들로 가득하다.


직장인의 최고봉인 임원, 그 임원중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오른 그가 물었다.


"엠제이,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왔을까? 나도 잘 믿기지는 않는다."


자신감 가득한 그는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 비결 좀 알려주세요."


"음... 다른 건 모르겠는데 말이야. 엠제이. 넌 나랑 오래 일을 했으니 잘 알겠지만 나는... 모두가 안된다고 할 때 그걸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또 해내자나. 알지? 일이란 그런거야. 안되는 게 아니고 될 지 안 될 지 모르는 거지. 그리고 그걸 되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고. 난 그래서 그걸 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찾고, 또 그 사람과 그걸 하나씩 해본거지."


'매일 새벽 다섯시 전에 일어나 경영서적들을 읽고, 끊임없이 노트에 기록하고 무언가를 회사에 적용하려 하는 그. 보고서는 형식보다 내용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며 중요한 것들은 사소한 것까지 챙겨가시기도 하자나요.' 라고 혼자 생각도 했다.


여름엔 비즈니스 캐쥬얼을 다들 입지만, 하얀 와이셔츠를 고집하며 오늘도 손에 책을 들고 아침 8시부터 커피 원샷 때리는 그. 임원 방으로 환하게 웃으며 커피잔을 들고 들어가는 그. 임원은 임.시.직.원.의 약자라 하던데... 지금 저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해야 했던 것일까?  


"임원이 되고 나서 늘 바쁘기만 해서 잘 몰랐는데, 가족들이랑 여행 한 번 같이 간 적이 없더군.

가족사진도 아이들 갓난아기 때 말고 찍은 게 없어서 올해 찍었다니까..."


장마철, 갑자기 비가 쏟아지다 또 개이는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싱숭생숭한 인사철 즈음이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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