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엠제이유니버스 Aug 05. 2023

성급하게 일반적이 되지 말자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도 바라보기

사무실에서는 늘 그렇지만 피곤하다. 특히 오랜 시간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앉아 있노라면 눈이 특히나 피곤하다. 안과를 찾아도 뾰족한 수는 없다.


"인공눈물 자주 넣으시구요. 조명도 좀 어둡게 하시고 가습기도 틀어놓으시면 좋아요."


라는 의사선생님의 조언. 여름이고 겨울이고, 비가 오나 맑으나.. 사무실의 가습기를 늘상 틀어놓고 지낸다. 사무실용 가습기는 용량이 큰 녀석도 있고, 디자인이 이쁘거나 불이 들어오는 녀석도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관리가 편하고 물도 많이 들어가고 사용이 편한 게 장땡.


그렇게 만난 지금의 가습기. 얼핏 보면 무식하고 무자비하게 생겼으나 물청소하기도 편하고 물도 많이 들어가는 게 아주 장땡이다. 청소하고 관리하기도 겁나 편하다. 그런데 이 녀석이 며칠 전부터 말썽이다. 초록불이 들어오면 불을 내뿜는 용처럼 수증기를 배출하는데, 자꾸 접촉불량인지 빨간불 초록불이 왔다 갔다 하며 수증기도 안 나오고 말썽이다.


설명서를 꺼내 거기 나온 조치방법을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봤다. 안된다. 설명서 뒤에 보니 고객센터 번호가 있다. 070으로 시작하는... ...


'음... 오늘 중에 통화를 하거나 AS를 받을 수나 있을까?요즘 시대에 왠 070..' 하는 부정적인 마음으로 일단 전화를 걸어본다.


나의 우려와 달리 한 번에 통화가 된다. ARS를 오래 거치고, 번호를 여러 번 누르지도 않고 단번에. 증상을 설명한다. 제품에서 이런 류의 결함이 자주 있는지 상담사는 친절하게도 몇 가지 자체 해결 옵션을 설명해 주었으나 이 역시 실패다.


다시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어 자체해결옵션도 안돼요 라는 말이 떨어지자 마자

"우체국 택배로 수거해서 고쳐서 다시 보내드릴테니, 박스 포장만 좀 해주세요." 라고 한다.


"저희가 고쳐는 드리지만 부품비용이 발생할 수도 있구요. 왕복배송비가 있어요." 가 많은 회사들의 프로토콜이라 생각했기에 조금은 당황스러웠으나, 속으로는 '오 이 회사 서비스 짱이구만.'이라 생각했다.


가습기 사이즈가 맞는 박스를 찾고 정성들여 포장을 한 뒤 곰곰히 생각해보니 지금 이 회사의 대응이 맞는 것이고 내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프로토콜이 잘못된 거 아닐까라는 의문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소비자가격을 지불하고 정품을 구매했고, 자신있게 판매한 상품의 하자가 생기면 마땅히 물건을 수거해서 고쳐주고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해야 하는 건데... 왜 많은 회사들은 고객이 불편비용까지 지불하게 할까?'


물건을 인터넷으로 편하게 사고 반품하고 컴플레인도 할 수 있는 요즘. 어찌 보면 당연한 제조사의 서비스에이렇게 깜짝 반응하는 나도 신기하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제조사의 서비스라는 것도 선입견이구나 싶다.


정확히 2일이 지나자 다시금 우체국 택배 아저씨가 아침 일찍 회사로 박스를 하나 들고 찾아오셨다. 새 거처럼 고쳐지고 깨끗하게 청소까지 되어 포장된 녀석을 보니 다시금 '이 회사 서비스 짱이구만.' 싶다.


그 날 저녁 아이가 물었다.

"아빠 오늘 좋았던 일 뭐예요?"

"음... 아빠가 회사에서 쓰는 가습기가 고장났는데,

완전 완전 잘 고쳐서 다시 쓰게 된 거."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 당연하지 않게도 바라봐보고, 흔한 것을 흔하지 않게도 바라봐봐야겠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매거진의 이전글 두 명의 30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