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알고리즘에 뜬 한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읽어도 좋을 소설들을 소개했고 메모장에 저장을 했다. 다음날 출근하며 밀리의 서재로 책을 읽다가 불현듯 그 리스트들이 생각나서 책들을 검색해봤고 '스토너'라는 소설이 거기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회사 동료와 커피를 마시다
"엠제이, 난 이번 여름휴가에 부산 다녀오느라 통 쉬지를 못했어. 비가 와서 힘도 들었고,엠제이는 뭐해?"
"음... 아이들과 물놀이도 하고 좀 쉬려 하는데, 맘 먹은 김에 책 한 권은 꼭 읽어보려구요."
"무슨 책?"
"스토너요. 소설책이예요. 아직 추천만 받고 안 읽어서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구요."
그렇게 밀리의 서재의 스토너 첫 페이지를 펼치게 되었다. 소설이 맞나 싶었다. 역사 속의 인물을 무미건조하게 소개하듯 스토너라는 인물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책을 소개했던 유튜브 채널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원래 미국에서 출판되었다가 1쇄도 다 판매되지 못하고 절판되었다가 아주 우연치 않게 영국의 한 출판사 편집장이 이 책을 읽고 너무 맘에 들어 다시 출판을 했고, 그 책이 유명해졌다라고 한다. 읽는 내내 그 생각이 들었다. 왜 이 책이 두 번째 출판해서야 유명해졌을까?
미주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평범하게 살다가, 농사를 잘 배우기 위해 농과대학에 갔으나 영문학의 매력에 빠져 과를 바꾸고, 셰익스피어의 어떤 목소리에 끌려 영문학자의 길로 들어선 스토너. 한 여인에게 놀랍고 차갑게 빠져 그 여인과 결혼을 했으나,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 알았고, 그 아내는 딸마저도 사랑하지 않았다. 대학에서도 그는 조교수가 되었으나 정치적이지도 사교적이지도 친화적이지도 못해서 그냥 평범한 교수였으며, 로랜스라는 동료 교수에게 미움(?)을 평생 받아 그로 인해 학교에서 수많은 복수와 희생을 강요당한다.
그런데 스토너는 가정생활도 학교생활도 그저 견뎌낸다. 묵묵하리만큼 본인의 페이스대로... ... 아내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고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하고, 로랜스 교수가 괴롭히는 것을 받아주면서도 또 본인의 공부에 심취하면서 말이다.
그런 그에게 젊은 여교수와 학문에서부터 싹튼 진정한 사랑이 다가왔으나 시대상이 허락하지 않는 불륜이라는 것 때문에 또 가정과 학교에서 그를 압박했고 그는 헤어졌다. 그리고 정년을 앞둔 즈음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암과 맞서며 조용히 숨을 거둔다.
'나는 무엇을 기대하였을까?' 그가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에 본인의 삶을 되돌아보며 되내인 말이다.
꼭 나에게 던지는 말같았다. 이른 아침 가족들이 모두 잠들어 있던 산 속의 숙소에서 혼자 숨죽여 책을 읽고 책장을 덮었다. 맺음말까지도 여운이 남았다.
'나는 나의 삶에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회사생활을 시작하고, 결혼하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는 나의 삶에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나 싶은 생각을 해보니 스토너의 삶이 불행했구나 하는 마음이 사치인 듯 내 삶은 어디로 떠가는가 싶었다.
때마침 전해왔던 지인의 부고 소식. 아이 두 명과 아내를 두고 전도유망한 대기업의 최연소 임원으로 승승장구하던 그. 바쁘면서도 일과 가정 모두에서 중심을 잘 잡고 환한 웃음에 열정을 보였던 그. 그런 그는 갑작스런 수술을 하고 중환자실에서 결국 회복을 하지 못해 아내와 아이들에게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이런 그의 마지막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휴가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기 전, '성지'를 한 곳 방문했다. 봉쇄수녀원이 있는 곳이었다. 그 곳의 수녀님들은 30년간 그 곳에서만 생활하신다고 한다. 12시 미시가 조금 전 끝났는지 수녀원 내부에서는 식사를 준비하며 왁자지껄 수녀님들의 목소리와 웃음이 들렸다. 조용히 기도만 하고 있으리라는 내 기대와는 달랐지만, 저런 모습이 우리가 인생에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