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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유니버스 Oct 29. 2023

잃어버린 생각...

가을은 독서의 계절인가...

도서관 앱의 알람이 온다.

"엠제이님, 대출도서 내일까지 반납하세요. 총 30권입니다."


책을 담아갈 카트를 꺼내고 한 권 한 권 담아본다. 책읽기를 권장하는 도서관은 친절하게도 빌릴 수 있는 권수를 늘려주었고, 우리집 거실책장에는 알차게 빌려온 30권의 책들이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책을 빌릴 때까지만 해도 당장이라도 읽을 기세였던 아이들이었는데, 과연 이 책들을 얼마나 읽었을까 싶다.


"이 책 읽었니? 이 책은, 저책은?'


이라는 질문이 내심 귀찮은지... 한사코 아이들은 답을 피한다. 책을 빌리고 일정대로 반납하는 것도 귀찮은 일이건만 이런 부모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 내심 서운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에 비하면 훨씬 책에 가깝고 책도 많이 읽는 아이들이기에 점점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집 책장에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와 '어린왕자', 그리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 세 권이 나란히 꽂혀 있었다. 인터넷은 물론이거니와 그 흔한 장난감도 별로 없었던 집인지라 심심한 시간을 떼우기 위해 3권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책장이 있던 방에는 작은 다락방도 있었다. 계단이 10개 정도 있고 그 위에는 창고처럼 안쓰는 물건들을 박스에 담아둔 그런 다락방이었다. 밖으로 난 작은 창이 있어서 낮시간 다락방에는 볕도 잘 들고, 무엇보다 조용히 숨어있는 비밀아지트와 같은 곳이었다.


과자, 토스트, 우유를 어른들 몰래 챙기고,다락방 구석에 안쓰는 작은 담요를 깔고 그 위에 누워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톰소여의 통나무집과 비슷한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저 3권의 책 내용이 도통 이해가 되질 않는 것이었다. 왜 제제는 그렇게 맞기만 하는지, 어린왕자는 왜 자꾸 무언가를 찾는지, 왜 나무는 소년에게 그렇게 아낌없이 베풀어주는 건지... 혼자 다락방에 뒹굴고 누우며 '생각'을 해봐도 잘 생각이 안 났다.


그 시절에는 학원도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대개 2시 너머 그 다락방에 올라가면, 저녁 먹을 때가 다 되어갈 6시까지는 꼼지락 거리며 책을 읽고 생각하고 상상도 해보고 그리고 또 상상도 해보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나이를 먹으며 자라가며 (어느 때부터인지 정확한 시점이나 계기는 기억이 안 나지만) 에 나온 내용들이 '상상은 현실이 된다'처럼 하나씩 삶에 다가오고 커가는 자식의 마음에서 이제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으로 생각과 행동이 자랐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이런 상상과 생각의 체험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나이를 먹어가며 읽는 책들은 어찌 된 건지 하나같이 돈버는 일, 부자되는 일, 자기계발 잘하는 일에 대한 것들이 많다. 헛헛한 마음이 들 때 한 번씩 소설을 읽는데, 최근에는 양들의 침묵을 집어들었다. 어려서 영화로 본 거 같은데 내용이 잘 기억이 안 났다. 조디포스터와 앤소니홉킨스의 얼굴만 아른거리고... ...


느낌인지 모르겠으나, 영화보다 소설이 훨씬 디테일한 것 같았다. 주인공들간의 대화, 사건묘사 등 하나하나가 디테일하면서도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상상력의 빈곤은 의외의 곳에서 나타났다. 여주인공이 연쇄살인마와 대면을 하고 그와 총격전을 벌이는 그 절정의 순간,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연쇄살인마의 집 모습과 해골거미 등의 모습이 잘 상상이 안 됐다. 자꾸 맥이 끊겼다. '이 문을 열었더니 실험실이 나오고 거기에 또 문이 있고, 지하에 우물이 있다고?' 그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자 몰입도가 확 떨어졌다.


결국 OTT를 열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연쇄살인마의 집 모습은 책의 그것과 비슷했다. '아...저런 모습이었구나.' 새삼 그런 모습을 상상하지도 못했던 나를 자책하게 됐다.



무엇인 문제일까? 아니 왜 나의 상상력은 이렇게 빈곤해진 것일까? 최근 읽은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책에서는 그 원인을 sns와 스마트폰으로 꼽는다.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아도 되고 궁금한 것들은 바로 바로 찾아볼 수 있는 시대. 오랜 기간 공들여 책을 읽고 상상하는 대신 수많은 숏츠들을 바로 볼 수 있고, 심지어 개인들의 일상도 SNS 로 공유되는 그런 시대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언급한 것처럼 그렇다고 해서 스마트폰을 안 쓰는 것만이 대안일 수는 없다. 기술개발은 기술개발대로, 삶은 삶대로 그대로 흘러가야 하기 때문이다. 조화롭게 잘 지내야 한다는 말이다,


학원 숙제를 태블릿으로 터치해가며 하는 아이들, 줌으로 영상을 봐가며 영어, 수학수업을 하는 아이들, 그럼에도 도서관에서 학습만화에 손때를 묻혀가며 열심히도 읽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의 미래 집중력과 생각능력은 어떨지 궁금해지는 아침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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