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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유니버스 Aug 14. 2023

노노갈등...

이번 한 주는 이상했다.

겨울 무렵 보스의 모친상에 조문을 갔다.


"노인들이 몸이 약해져서인지 겨울이나 여름에 많이들 돌아가시는 거 같다."


요양병원에서 마지막을 준비하셨던 노모를 보내서인지 보스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겨울에는 히터가, 여름에는 에어컨이 병원에 있을텐데 왜 노인들이 여름, 겨울에 몸이 약해지실까?'


그냥 지나가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여름이 되었다. 폭우에 이은 폭염. 말 그대로 뜨거운 여름이었다. 정말 올해같은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부고를 접했다. 고객사 분들의 가족에서부터 오랜 투병 생활을 하셨던 지인, 그리고 지난 겨울 보스의 모친처럼 요양병원에 계셨던 지인의 할머니까지... ...


폭염 속에 다가오는 태풍까지 있어 반팔티를 입어도 더울 것 같은 하루 하루였지만, 거의 매일 와이셔츠를 입고 때로는 넥타이와 자켓까지 걸치고, 장례식장들을 방문하게 되었다.


지인의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유럽 단체여행을 주선하는 한 여행사에 95살 먹은 할아버지가 예약자 명단에 있어서 여행이 가능한지 확인차 전화를 드렸대. 할아버지께 건강상태는 어떠신지 걸을 수 있는지 등등을 여쭤보는데 할아버지가 버럭 화를 내시더래."


"어..왜요? 나 정정한데 왜 그러냐는 거예요.?"


"아니. 내가 힘들어도 내 아들이 나를 모시고 가는데 왜 여행사에서 그리 걱정하냐는 거지. 그래서 여행사에서 죄송하다고 얘기드리며 아드님 정보를 확인해보니 글쎄 아들이 74살인가 그랬다는데... 노인이 노인을 모시고 여행을 하는 거지."


"74살 어른이 95살 어른의 보호자로 여행을 가시다니... 근데 74살 어른도 유럽가시기 힘들지 않으실까요?"


"그러게 말이야. 여행을 잘 하셨는지 궁금하더라니까. 그나저나 요즘은 그래서 '노노갈등'이라는 새로운 게 나왔대 엠제이."


"노노갈등이요?"


"응. 노인과 노인의 갈등 말이야. 당장 오늘 장례식을 봐봐. 돌아가신 할머니는 94살이시고, 그 보호자가 74살. 그 분도 할머니셔. 노인이 노인을 모시고 살아가야 하는 그런 갈등 말이야. 사실 74살 노인분이 젊어서 부동산 투자도 잘 하시고 연금도 잘 마련해두셨으면 본인 여생은 편하게 그래도 지내실텐데 90이 넘은 노인의 보호자로 병원비며 각종 수발이며 참 만만치 않았을거야."


그래서 그렇게 느껴졌던 것일까? 74살의 상주에게서는 94살의 노모가 돌아가셨다는 슬픔과 함께 본인이 져야 할 삶에서의 큰 짐을 하나 내려놓았다는 일종의 후련함 같은 것도 보였다.


상주의 친구분들로 보이는 사람들의 덕담도 '그동안 고생많았소. 이제부터 당신 여생을 즐기시오.' 라고 할 정도이니 보스의 이야기가 틀린 것은 아닌가 보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몇 년 전쯤 아이가 다녔던 어린이집과 그 옆의 영어유치원이 모두 문을 닫아 있었다. 그래도 나름 체계도 있고 우리도 어렵게 대기를 뚫고 갔던 곳인데 어찌 된 노릇인가 싶어 아내에게 물어봤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지 않으니 문닫은 거 같다. 학교도 정원이 매년 줄어들잖아."


일주일 내 땀을 흠뻑 적시며 입었던 와이셔츠들을 세탁하고 탈탈 털어 간만에 좋은 햇살 아래 말리며 생각을 했다.


'그래. 우리 아이들과 아내에게 내가 짐이 되지 않으려면 연금과 투자를 더욱 열심히 하고, 운동도 지금보다 더 빡시게 해야겠다.'


아내에게 장례식장에서 들은 노노갈등을 설명해주는데 옆에서 듣던 아이들은 NoNo 갈등이 뭐냐고 캐묻는다. 아빠가 나중에 늙어서 너네들이랑 갈등이 하나도 없는 걸 NoNo갈등이야 라고 하니 꺄르르 웃는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2040년-50년이 되면 인간의 신체는 140살까지 유지할 수 있게 된다는데 나의 늙음은 어떤 모습일까?궁금하면서도 걱정된다.


#라라크루 1-6 #라이트 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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