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엠제이유니버스 Sep 14. 2023

참깨라면의 비밀..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아침부터 이메일과 메신저가 바쁘다. 일이 몰려온다는 이야기다. 

많은 수의 블록이 떨어지는 테트리스나 구조가 복잡한 레고블록을 조립하는 마음이다. 


'요건 요렇게, 저건 저렇게... '


시간은 순삭되어 벌써 점심시간이다. 팀원들과의 점심.. 식당도 이미 예약되어 있다. 

머릿속에 뭔가 일이 남아 있어 그런지 점심시간도 유쾌하지만은 않다. 


오후도 바쁘다. 전화도 여기저기서 오고, 그냥 일이 많다. 

사무실 책상에는 읽으려고 꺼내놓은 책이 며칠째 그냥 누워만 있다. 


Boss들은 오늘따라 유달리 성격이 급해 100미터 러너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엠제이, 아직 안됐어?"


라는 말을 외치면서... ...



오후에도 여전히 부산하다. 


잠시 커피를 내리러 칸틴으로 가다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다. 


'휴, 이렇게 비오는 날엔 컵라면에 만화책인데... '


라면이 먹고 싶어졌다. 다시 자리로 와서 일을 하다 보니 책상 위에 

커피를 마셨던 빈 종이컵, 탄산수를 마셨던 캔, 그리고 매일 차를 마시는 텀블러가 놓여있다. 

생각해보니 점심도 제대로 안 먹었는데, 배가 고프면서 라면이 먹고 싶어졌다. 


Boss들과 오후 늦게 미팅을 하고 이거 저거 논의를 하고 결론을 지었다. 

회의실에서 바라본 하늘은 여전히 시커멓고 빗줄기도 그대로다. 

마음은 혼란스럽고 머리도 복잡하나, 그래도 중요하게 해결할 것들은 해결했다. 



그리고 그렇게 직장인의 하루가 갔다. 내리는 빗속에서 우산을 들고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

우산을 쓰고 발이 젖을까 조심하며 집으로 가는 길에 편의점이 나를 환하게 반긴다. 


'아, 맞다. 라면먹고 싶었지. 참깨라면 먹고 싶다.'


지쳤던 하루가 갑자기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 컵라면을 후후 불며 만화책을 읽던 기억을 되살리며

호기롭게 참깨라면 하나를 계산하고 집으로 왔다. 


"어, 아빠 ! 라면 먹어요? 와 부럽다."


아이들에게는 저녁 대신 컵라면을 먹는 아빠가 생소한가보다. 

경건한 마음으로 끓는 물을 붓고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고 식은 밥도 조금 준비한다. 



어렸을 때 친구들이랑 술 한 잔 하고 편의점에서 밤늦게 먹던 참깨라면, 

만화책을 읽으며 후후 불면서 먹었던 참깨라면...그 맛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느낌은 알고 있다. 

그런데 오늘 먹은 라면은 그 때의 참깨라면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매웠고, 생각보다 양도 적었다. 


오후 나절부터 라면을 먹고 싶어서 귀하디 귀한 저녁에 라면에 할애한 것인데... 그 맛이 예전같지 않다. 

라면 맛이 변한 것일까? 아니면 내 입맛과 취향이 바뀐 것일까? 지쳤던 하루에 무언가 위로가 되기를 바랬던 

마음이 무너진 것 같았다. 


'엠제이, 니가 어려서 먹던 맛있는 컵라면의 맛은 이제 회사와 스트레스에 찌든 너에게는 없어.'


참깨라면의 노란 용기는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라면 하나에 무슨 인생을 논하는 것이냐 싶다가도 찬찬히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것은 나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침부터 내가 바쁘고 정신없었으니 Boss들도 바쁘고 성격급한 사람들로 보였고, 

내 마음이 어수선하니 (하루 종일이긴 하지만) 왕창 내리진 않는 비가 더욱 세차게 느껴졌음을... ...

참깨라면은 늘 그 자리에서 그 맛을 내고 있었는데도 음울한 내 기분이 그 맛을 못 느꼈으리라.


그렇게 며칠이 지난 주말에... 이런 내 마음의 어리석음이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어 등산 가방에 참깨라면을 다시 챙겨갔다. 역시 등산 후 정상에서 먹는 참깨라면의 맛은 며칠 전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은 내 마음에서 오는 것이 맞았다. 


[1줄 요약 :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운수좋은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